‘헤비(Heavy)’한 ‘하비(Hobby)’
‘헤비(Heavy)’한 ‘하비(Hobby)’
2016.04.22 14:06 by 시골교사

“축구를 가르쳐보면 어떨까요?”

한나의 엄마가 뜻밖의 제안을 했다. 한나는 큰 아이와 유치원을 함께 다닌 친구였는데, 매사에 소극적이고 쉽게 포기하는 성향을 보였다. 그런 한나의 성격을 맘껏 뛰놀 수 있는 축구를 통해 개선하고자 했고, 곁에서 지지할 친구가 필요했기에 우리에게도 제안을 한 것이다.

소극적인 소녀, 축구는 좋은 처방이 될 수 있을까? (사진:Dmitri Ma/shutterstock.com)

사실 별로 내키지 않는 제안이었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운동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여자 아이에게 축구를? 구미가 당기지 않는 일이다. 망설임이 길어졌지만 한나 엄마 역시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우리 집의 두 아이도 함께 해보기로 했다. 축구교실이 집 근처 학교 운동장인데다, 가격도 월 2만 원 정도로 그리 부담스럽지 않다는 점이 결심에 도움을 줬다.

본격적으로 축구를 배운 지 두어 달 지났을 무렵, 이 선택은 ‘신의 한수’가 됐다. ‘가르치길 참 잘했다’라는 생각을 넘어, ‘왜 좀 더 일찍 시작하지 않았을까’라는 후회까지 들 정도로.

축구교실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사진:Fotokostic/shutterstock.com)

 

| 내뿜는 에너지, 몸도 마음도 쑥쑥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마음껏 에너지를 발산했다. 큰아이는 열심히 기술을 배우고, 익힌 기술을 써먹어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아직 요령이 부족해 연신 헛발질을 하고, 힘과 기술이 없어 공이 원하는 곳으로 잘 가지도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몸도 마음도 단련되는 걸 느꼈다. 팀에서 가장 어렸던 작은 아이는 (본인 성격대로) 언니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공을 쫓아 다녔다.

드넓은 운동장에서 공을 쫓아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아이들의 모습은 참으로 건강해 보였다. 넘치는 에너지를 운동장에서 저렇게 마음껏 뿜어댄다면, 아이들은 심신이 두루 건강하게 잘 자라줄 것이란 믿음이 들었다. 그동안 은근히 공부에만 급한 마음을 먹고 아이들을 그쪽으로 몰아 세웠던 내 자신이 후회스러웠다. 몸이 약한 큰 아이와, 에너지 넘치는 작은 아이에게 축구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축구를 배우고 있는 아이들(사진:시골교사 제공)

아이들이 축구와 친해지며 얻는 또 하나의 성과는 ‘대화’다. 언제부터인가 밥상머리에 축구가 대화의 화제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경기 규칙부터 시작해, 독일의 축구스타 발락, 슈바인슈타이거, 크로제에 대한 이야기, 프로축구팀에 대한 정보까지, 아이들과 남편 간에 새로운 화제가 되었다. 아이들이 축구를 배우면서 나 또한 축구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것은 물론, 어느새 독일과 유럽축구팀의 팬이 되어 가고 있었다.

사실 예전엔 축구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한 골 넣자고 그 넓은 운동장을 죽기 살기로 내달리는 모습이 측은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젠 조금은 안다. 이곳 사람들이 왜 그렇게 축구를 좋아하고 열광하는지 말이다.

날 좋은 일요일 오후면 남편은 공 하나 들고 아이들과 함께 학교 운동장으로 나가기도 한다. 늘 집안에 여자만 많다며 남자로서의 외로움을 은근히 비쳤던 남편에게, 아이들의 축구사랑은 더할 수 없는 기쁨일 것이다.

 

| 취미활동에 바쁜 부모와 아이들

한나와 우리 아이들이 축구를 배운 것처럼, 여기 아이들은 다양한 취미에 도전하고 그 속에서 흥미를 발견해 나간다.

이곳에선 초등학교가 11시 반~12시 반, 중학교는 1시~2시, 고등학교는 4시면 정규과정이 모두 끝난다. 그 이후에는? 그야말로 자유다. 나머지는 부모와 아이들의 몫이다. 초등학생의 경우는 주로 놀이와 취미활동으로 바쁘다. 어떤 아이는 매일 그저 친구와 오가며 놀기도 하지만, 어떤 아이들은 주말을 제외한 요일마다 색다른 취미활동, 예를 들어 월요일은 플롯레슨, 화요일은 승마, 수요일은 발레, 목요일을 댄스, 금요일은 수영 등으로 한 주 내내 바쁘게 지내는 경우도 있다.

‘바쁘다 바뻐’ 취미활동!(사진:Pressmaster/shutterstock.com)

초등학교 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오후시간은 자녀들의 다양한 취미활동과 놀이로 상당히 버겁다. 한국처럼 집 앞에 하나 걸러 하나씩 학원이 있는 것이 아닌데다, 아이들을 태워가는 학원 버스조차 아예 없기 때문이다. 각 분야별 취미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소까지 데려다 주고 데려오는 일, 모두 부모가 해야 한다. 아이들이 중학생 정도만 되어도 혼자 버스나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있지만, 그전까지는 부모가 이 부분에 대해 모든 책임을 진다. 이런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은 자녀들의 욕구충족과 건강하고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해 자녀와 함께 오후시간을 바쁘게 보낸다.

반면, 그런 번거로움 때문에 취미활동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내 경우엔 발레가 그랬다. 예전부터 딸을 낳으면 발레를 시켜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다행히 독일은 발레를 배우기 쉬운 환경이었다.

고등학교 때 발레 배우는 아이를 처음 봤다. 시골 출신의 나로서는 그때 그 아이의 걸음걸이는 야릇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이국적이고 멋있어 보였다. 그때 마음속으로 다짐 했다. ‘그래 여자 아이를 낳으면 발레를 시키는 거야’라고. (사진:Olga Savina/shutterstock.com)

발레 교습비는 주1회, 1시간 30분 기준으로 월 2만 원 정도. 그룹으로 배우기 때문에 비용이 다른 취미 활동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발레수업이 있는 학교까지 자전거로 족히 30분 이상은 걸린다. 그러다보니 아이의 발레 수업을 위해서 오가는 시간만 1시간, 거기다 대기시간 1시간 30분을 포함하면 족히 2시간 30분 정도가 깨지는 셈이다.

아이를 학원과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데려오는 일이 거의 내 몫이다 보니, 내 공부시간은 항상 부족했다. 가뜩이나 없는 시간을 다시 아이들의 발레수업을 위해 쪼개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나의 로망이던 발레교육을, 눈물을 머금고 포기해야 했던 이유다.

 

 

시골교사_2_이모저모

독일교육 이모저모

'모두가 다 피아노를 쳐야 하는 건 아닙니다.'

독일 사람들은 음악을 참 좋아합니다. 오페라를 사랑하는 민족이죠. 내가 사는 도시에는 매 달 한번, 극장에서 오페라가 공연되고 그것을 감상하기 위한 사람들로 티켓은 매번 빠르게 매진됩니다.

그런데 그런 음악적인 관심에 비해, 아이들의 음악교육에는 그다지 관심이 크지 않습니다. 취미활동에 열을 올리는 이곳의 문화를 감안하면 다소 이례적인 일이죠. 실제로 큰아이 반에서 악기를 배우는 학생 수는 전체 25명 중 6명 정도에 불과했어요.

수준이 조금 있는 집에서는 아이가 여섯, 일곱 살 정도 되면 악기를 배워보라고 시립음악학교에 보내기도 합니다. 음악학교에선 2년의 기초과정을 거친 후 아이의 관심에 따라 악기를 정하죠. 여자 아이라면, 일단 피아노부터 배우고 보는 우리완 많이 다른 풍경입니다.

처음부터 아이에게 획일적으로 피아노를 배우게 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연주를 듣고 악기를 실제 해보는 기회와 과정을 거친 후, 아이와 의견을 조율하여 배울 악기를 정하는 거죠. 또한 한번 시작한 악기에 대해 어느 정도 기본은 배워야 한다고 억지로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연습을 놓고 아이와 실랑이 하지도 않고요. 연습을 소홀히 하면 아이가 그 악기에 흥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가르치는 일을 쉽게 접습니다. 부모가 원하는 것과 아이의 원하는 것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일찌감치 인정하는 거죠.

커가면서 여가를 지루하지 않고 건강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며 미리 준비하되, 그것이 꼭 악기여야 한다고 고집하지 않습니다. 대신 축구, 수영, 승마, 현대 춤, 발레, 만들기 등 아이들이 원하는 다양한 흥미를 찾아 그 분야를 계발해 주는 거죠.

흠. 피아노는 나랑 좀 안 맞는 듯!(사진:Dainis/shutterst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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