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락내리락’ 지퍼의 운명
‘오르락내리락’ 지퍼의 운명
2016.06.16 13:22 by 정원우

어느 날 외출준비를 할 때였다. 중요한 약속이라, 옷을 고르는 데만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입고 벗고를 반복하길 수차례, 시간은 어느덧 약속시간에 임박했다. 결국 가장 처음 골랐던, 깔끔한 셔츠와 청바지를 급히 다시 집어 든다.

시간은 째깍째깍 잘도 흐른다. 잠가야 할 셔츠의 단추 숫자가 ‘무한대’로 여겨질 지경. 이때 청바지의 지퍼는 참 고맙다. 가볍게 쓱 올리고 버클 하나 잠그면 그만이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려는데 이놈의 워커(walker) 끈은 또 뭐 이리 복잡한지….

신는 데만 (체감상) 한나절이다. (사진: Sergiy Kuzmin /shutterstock.com)

비슷한 경험은 군대에서도 했다. 갓 입대하고 아무 것도 모르던 훈련병에게 전투화, 소위 군화는 생소한 물건이다. 낯선 분위기, 낯선 물건에 채 적응도 하기 전인데 조교들은 자꾸 “빨리! 빨리!”만 외친다. 긴장하다 보니 손은 더디고 몸은 더 굼떠진다. ‘왜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어 놓은 거야? 옆에 지퍼 하나 달아놓으면 좋을 텐데.’라고 속으로 투정부렸던 게 생각난다.

“보채지 말지 말입니다” (사진: Syda Productions/shutterstock.com)

그런데 진짜 있었다고 한다. 지퍼 달린 군화 말이다. 1893년, 미국 시카고에 위드콤 저드슨(Whitcomb L. Judson)이라는 청년은 평상시 군화를 즐겨 신었는데, 너무 뚱뚱한 나머지 군화 끈을 매는 것이 힘들었다.(비슷한 체형의 남자들은 공감할 듯) 신발 끈과 씨름하느라 지각하기 일쑤였고, 회사에선 “매일 지각할거면 관두라”고 일갈했다.

시대의 용자 저드슨은 그 말에 진짜로 회사를 뛰쳐나왔다. 그리곤 군화의 불편함을 해결하는 것에 몰두했다. 나와 같은 생각을, 그는 실행으로 옮긴 것이다.(난 뚱뚱해서 불편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탄생한 게 ‘클래스프 락커'(Clasp-Locker)‘라는 이름의 초창기 지퍼다. 물론 현대의 그것과는 다른 모양이었고, 기계화가 어려워 대량 생산하기도 적합지 않았다. 당시 시카고 박람회에도 출품했지만 기대만큼 큰 흥미를 끌지 못했다고 한다. 1905년 기계화 생산에 적합한 형태로 변형시키긴 했지만, 역시 크게 주목받지 못하며 세상에서 사라져갈 위기에 놓였다.

군화에서 비롯된 지퍼, 반전의 계기 역시 군대에서 찾았다. 1913년 스웨덴 발명가 기드온 선드백은 지퍼를 군복에 사용했는데, 손쉽게 입고 벗을 수 있는 군복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사진: vvoe/shutterstock.com)

‘지퍼’라는 이름은 상품명에서 유래되었다. ‘굿 리치(Goodrich)’사는 지퍼를 단 신발을 선보였다. 초창기 이름은 ‘신비의 장화’였다. 그런데 굿 리치사의 대표가 “상품 이름에서 활력(Zip)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여 바뀐 이름이 바로 ‘지퍼(Zipper)’다.

지금 본인의 옷이든, 소품이든 지퍼를 들여다보라.

백이면 백 ‘YKK’라고 찍혀 있을 것이다. 이는 일본 요시다 공업 주식회사(이하 요시다)에서 만드는 지퍼란 표시인데, 이 회사는 세계 지퍼 생산량의 60%를 점유하고 있다. 요시다는 1945년 도쿄 대공습 이후, 도쿄에서 도야마현으로 회사를 옮겼는데, 이후 미국의 군 장류에 있는 지퍼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에서 자동 체인 제작설비 4대를 추가적으로 사들일 정도로 지퍼개선에 공을 들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지금 보시는 바와 같다.

세계 지퍼의 총본산, 일본 YKK사 (사진: TK Kurikawa/shutterst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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