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들의 계곡, 고대 이집트인들의 영혼, 그리고 미이라
왕들의 계곡, 고대 이집트인들의 영혼, 그리고 미이라
2016.06.16 17:52 by 곽민수

망자들의 땅, ‘왕들의 계곡’. 뜨거운 태양과 황량한 바위산 이외에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는 이곳은 살아있는 자들의 세계로부터 완전히 격리되어 있는 세계입니다. 이곳을 휘어 감는 극한의 적막함과 고독, 끊임없이 계속되는 메마른 땅의 풍광은 죽은 자들에게 더 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립니다.

서쪽으로는 계속되는 죽음의 대지

고고학자와 죽은 자들의 안신처

이 황량한 장소를 자신의 영원한 안식처로 처음 선택한 인물은 18왕조 시대의 파라오 투트모스 1세 (Thutmose I, 1506-1493 BC)였습니다. 황량한 경관 속에서 우뚝 솟아 있는 피라미드 모양의 봉우리를 (과거 선조들이 힘겹게 건설하던) 피라미드 대신 사용할 의도도 있었겠지만, 그 보다는 삶의 공간과는 분명하게 단절된 이곳에서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영원한 안식을 취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고학자들은 죄인이기도 합니다. 고고학자들은 언제나 오래도록 잊혀져 있던 무덤들을 발견하여 면밀히 조사한 뒤 세상에 널리 알리곤 합니다. 도굴꾼들과는 다르게 개인의 영리가 아니라 공공성을 띄고 있는 학술의지를 갖고 행해지는 작업이라곤 하지만, 이 역시도 파라오들의 안식을 방해하는 파괴 행위인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이곳 왕들의 계곡에서 고고학자들이 파라오의 안식을 방해할 수 있었던 경우는 투탕카멘 무덤 발굴을 비롯한 겨우 몇 차례 뿐입니다. 대부분의 무덤들은 고고학자들이 학술적인 조사를 시작하기 이미 오래 전에 철저하게 도굴되어 버렸기 때문에 고고학자들은 파라오들의 영원한 안식을 방해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카이로의 이집트 박물관에서 소중하게 보관되고 있는 상당수의 파라오 미이라들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하는 의문이 생기실 겁니다. 오늘날 우리가 카이로 박물관에서 만나볼 수 있는 여러 파라오의 미아라들은 대부분 그들 무덤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고대 시절, 끊임없이 행해지는 도굴을 염려한 한 신관은 파라오들의 미이라를 각자의 무덤에서 꺼내어 몇몇 비밀스러운 장소에 함께 모셔두었는데요. 이를 훗날 고고학자들이 발견해 내어 박물관으로 옮긴 것이죠. 이런 면에서 고고학자들은 면죄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옛사람들의 무덤을 발굴하며 그들의 안식을 방해할 때는 언제나 망자들에 존경심과 경건한 마음이 필요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피라미드 모양의 봉우리: 이 봉우리는 파라오들이 이곳에 무덤을 만들기 시작했던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벼랑을 따라 쭉 나있는 길

이집트인들의 영혼과 미이라

망자들의 땅에 들어섰으니 이쯤에서 미이라에 관한 이야기를 잠깐 해볼까 합니다. 미이라는 고대 이집트 문명이 남겨놓은 여러 가지 산물들 가운데 가장 많은 대중의 관심과 흥미를 끄는 대상입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미이라를 제작해 시신이 오래도록 썩지 않는 상태로 보존하려고 한 것은 그들이 지녔던 사후세계관과 관련이 깊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사후세계 관에 대하여 이야기하자면 책 한 권의 분량도 모자랄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이야기를 빼먹을 수는 없는 노릇인 만큼 최대한 간단하게 해보도록 합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오늘날의 우리들과는 크게 다른 영혼관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영혼이 바(Ba)와 카(Ka)로 나뉜다고 믿었습니다. 바는 사람의 머리를 갖고 있는 새의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보통은 우리말로는 ‘영(soul)'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번역 역시 완벽한 번역은 아닌 만큼 여기에서는 그냥 계속 ‘바’라고 부르겠습니다.

사람의 머리를 갖고 있는 이 새의 모습은 이집트 곳곳의 벽화나 파피루스의 그림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바는 사람들 개개인의 인격과 관련이 깊은데, 그렇기 때문에 바는 사람들의 외모를 결정합니다. 바는 원래 저 세상에 속한 것으로 여겨졌는데,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사망할 경우 사라져 버리지는 않지만 육신과는 분리되어 새의 모습으로 햇빛을 거슬러 하늘로 오른다고 믿어졌습니다. 다시 말해 사람이 사망하면 바는 육신과는 분리된다고 믿어졌던 것이지요. 파라오나 귀족들의 무덤에서 벽화로 자주 그려져 있는 ‘입을 여는 의식’은 바로 임종 시 육신에서 분리된 바가 천상으로 오를 수 있게 하는 의식이었습니다. 이 ‘입을 여는 의식’은 파라오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시신을 무덤에 안치시키기 직전에 (우리들이 이전에 둘러보았던) 장례신전 ‘메디넷 하부’나 ‘라메세움’에서 실제로 행해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Ba)(좌측)와 카(Ka)(우측)의 신성문자

반면 카(Ka)라는 것도 있습니다. 보통은 혼(spirit) 혹은 혼의 본질(spiritual essence)이라고 번역됩니다. 카는 바와는 달리 이 세상에 속하는 것으로 사망 후에도 육신에서 완전히 분리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죽게 되면 카는 일단 육신에서 분리되기는 하지만 이것은 일시적인 분리일 뿐 카는 훗날 다시 육신을 찾아오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부활인 셈이지요.

이집트인들이 그렇게나 공을 들여 미이라를 만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카가 돌아와 제대로 부활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온전한 육신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또한 망자에게 끊임없이 음식을 제물로 바치고, 실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물품들을 무덤에 넣어두는 것은 바로 이 카에게 생명력을 제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육신과 혼이 모두 온전하게 유지되어야 사후 세계에서도 부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죠.

바. 헝가리 부다페스트 국립 미술관 소장. 말기 시대.
카. 이집트 카이로 박물관 소장. 13왕조, 기원전 1770년 경.  (사진: Wikimedia)

사실 언제부터 고대 이집트에서 미이라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는지는 아직까지 정확히 알려지진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4왕조 시대, 그러니깐 대략 기원전 2500년 경부터는 파라오나 상류계층들의 시신이 완벽한 미이라로 만들어졌던 것 같고, 초기왕조 시대에도 시신을 미이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보통 사람들의 시신은 극단적으로 건조한 이집트의 기후를 토대로 자연적으로 미이라화 되었습니다. 이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는 미이라는 선사시대부터 나타납니다. 사람들은 그저 시신을 땅 속에 매장했을 뿐인데 건조한 이집트의 토양이 시신들을 미이라로 만들었기 때문이지요. 인공적인 미이라는 오히려 훗날 무덤을 제대로 만들게 되면서 시신이 더 이상 땅과 직접 접촉하지 않게 되어 탄생하게 된 것이고요.

일명 게벨레인의 남자(Gebelein Man)라고 불리는 자연 건조된 시신. 영국 박물관 소장. 선왕조 시대, 기원전 4000-3500년 경.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집트인들은 그들의 미이라 제조법에 관하여 특별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무척이나 공을 들여서 만든 미이라의 제조에 관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합니다. 미이라 뿐만 아니라 피라미드의 경우에도 제작기법에 관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데, 고대 이집트인들은 자신들이 잘 하고 잘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성향이 있었던 것일까요? 아무튼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미이라의 제조에 관하여 참고할 수 있는 문헌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 (484-425 BC)의 기록뿐입니다. 헤로도토스가 귀한 기록을 남기기는 했지만 그의 시대는 고대 이집트 문명의 전성기와는 좀 차이가 있고, 또 작가 자신이 과장하는 것을 좋아하는 허풍쟁이 성향이 좀 강했기 때문에 그의 말을 전적으로 다 믿을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기록 이외에는 딱히 참고할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일단은 그에게 의지해보도록 합시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미이라의 제조방법은 신분에 따라 세 가지 등급으로 나누어집니다. 일반적으로 지위가 낮은 사람들의 미이라는 시신만 건조시키는 방식으로 간단하게 만들었지만, 파라오나 귀족, 고위 사제 등 상류층의 미이라는 상당히 복잡한 방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미이라를 만드는 첫 번째 방법은 가장 비용도 많이 들고 복잡한 방법입니다. 이 방법에 따르면 먼저 시신에서 내장과 뇌를 제거해야 합니다. 조금 끔찍한 방법이긴 하지만 끝이 갈고리 모양으로 생긴 쇠꼬챙이를 콧구멍으로 집어넣어 뇌를 다 부수어 액체로 만들어 몸 속에서 흘러나오게 합니다.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했던 이 과정은 능숙한 장인만이 해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뇌를 꺼낸 후엔 칼을 사용해 겨드랑이 아래쪽을 갈라 위, 장, 간 그리고 폐를 모두 꺼냅니다. 꺼내어진 장기는 최고급 기름으로 씻은 다음 향료와 방부제로 채워집니다. 그리고 시신에서 제거된 장기들은 고급재료로 만들어진 네 개의 항아리에 별도로 보관됩니다. ‘카노푸스’라고 불리는 이 네 개의 항아리는 각각 사람, 개, 원숭이, 매의 머리를 한 뚜껑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미이라 제작을 담당하는 호루스 신의 아들로 간주되는데, 각각 암세트, 두아무테프, 하피, 퀘베세누프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고, 이들은 각각 간, 위, 폐, 장을 지키는 것으로 믿어졌습니다.

카노푸스 단지, 좌측부터 하피, 두아무테프, 암세트, 퀘베세누프.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제 3 중간기.
카노푸스 단지, 좌측부터 퀘베세누프, 하피, 암세트, 두아무테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알라드피어슨 박물관 소장. 신왕국 시대.

이렇게 내장이 제거된 시신 내부는 송진을 바른 아마포로 채워집니다. 이후 정성스럽게 다시 꿰매어 외관상으로는 시신을 온전한 모습으로 보이게끔 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집트인들이 이브(ib)라고 불렀던 심장은 다른 내장들과 같이 제거하지 않고 몸 속에 그대로 남겨 놓습니다. 그것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심장을 인격의 정수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감정과 사고, 그리고 의지 같은 것들이 뇌가 아니라 심장을 통해서 발현된다고 믿었습니다. 이런 인격의 정수인 심장은 사후세계에서 그 무게를 재어서 죄의 양을 측정하게 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심장은 시신 속에 남겨져야 했던 것입니다.

내장이 제거된 시신은 70일에 이르는 긴 기간 동안 나트륨, 즉 소금으로 덮어 놓아야 합니다. 이러한 인위적 건조과정을 거치게 되면 시신은 모든 지방성분이 녹아 내리고 완전하게 건조됩니다. 건조된 시신을 각종 향료로 정성스럽게 닦아낸 뒤에, 송진을 발라서 린넨 그러니깐 하얀 아마포로 잘 감았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이 알고 있는 그 미이라의 모습이 완성됩니다.

두 번째 방법은 첫 번째 방법보다는 덜 복잡하고 비용도 적게 드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은 첫 번째 것과 동일하지만 뇌를 제거하지 않았습니다. 뇌를 제거하는 것이 가장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비용도 가장 많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뇌 이외의 내장은 제거되는데, 제거된 내장은 50여 일간 나르튬으로 건조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방법은 가장 간단하고 저렴한 방법입니다. 뇌를 제거하지 않는 것은 물론 내장도 제거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내장을 녹이기 위한 특수한 액체를 몸 속에 넣은 다음 50여 일간 나트륨으로 사체를 건조시켰습니다.

위에서 설명 드린 미이라 제작 방법은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남아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그것을 있는 그대로 신뢰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여태껏 이집트에서 발견된 미이라를 조사해본 결과에 따르면 미이라들 가운데 상당수가 그가 기록한 내용과 유사한 방법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에 그가 완전히 틀렸다고 볼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끝으로 미이라 사진을 몇 개 첨부하였습니다. 혹여 불쾌감을 느끼실 분들이 있으시다면 이 밑으로는 스크롤을 삼가해 주시기를!)

투탕카멘의 미이라  (사진: National Geographic)
티예의 미이라. 티예는 아멘호테프 3세의 왕비이자 투탕카멘의 할머니입니다.  (사진: National Geographic)
람세스 2세의 미이라.  (사진: wikipedia)
자신의 미이라와 같은 포즈로 누워있는 람세스 2세의 거상. 영원히 서 있을 것이라 믿으며 세웠던 거상이 쓰러진 모습을, 이 거상을 세우며 흡족해했을 한 사내가 본다면, 어쩐지 '인생이 무상하다'라는 말의 의미를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진:곽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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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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