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없는 사진찍는, 색깔있는 포토그래퍼
색깔없는 사진찍는, 색깔있는 포토그래퍼
2016.07.19 16:09 by 김석준

기술의 발전은 TV 브라운관에 갇혔던 포켓몬을 속초로 끄집어냈다. 스마트폰과 노트북 등 액정이 달린 기계는 하나같이 강렬한 색을 뽐낸다. 우리는 모두 더 정확하고 더 화려한 색을 지향하는 길 위를 걷고 있다. 하지만 정반대로 걸어가는 포토그래퍼가 있다. 흑백 사진만 찍는 길거리 포토그래퍼, 배인기(26)씨. 그는 왜 흑백으로만 찍을까, 왜 길거리에서만 찍을까. 지난 13일, ‘폭염주의’를 알리는 스마트폰의 맹렬한 진동을 무시한 채, 그를 만나러 대전으로 향했다.

전문 작가인줄 알았다

아니다. 대학생이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했지만 언제나 취미일 뿐이다. 심지어 회계학 전공에, 대학원은 철학으로 준비하고 있으니 현재도, 그리고 미래에도 전문 작가와는 무관하다.(웃음)

배인기 포토그래퍼(사진)는 인스타그램에서 kibnw라는 ID로 활동하고 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아버지 친구 분이 여행을 가면서 아버지께 카메라를 맡기고 가셨다. 여행 가면서 왜 카메라를 맡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때 아버지가 ‘너 좀 써봐라’하시며 카메라를 빌려주었다. 생애 처음 카메라를 만진 순간이다. 기종은 니콘 D80이었다.

배인기씨의 소지품 일순위는 언제나 카메라다.

그때부터 흑백사진은 찍은 건 아닐 텐데

맞다. 사실 얼마 안됐다. 올해 2월부터 찍었다. 길거리에서 사진을 찍고 나중에 컴퓨터로 사진을 보는데 색이 아쉬운 사진들이 있었다. 흑백으로 한번 바꿔 봤는데, 훨씬 멋있는 사진이 됐다. 그 후에는 대부분 흑백으로만 찍고 있다. 흑백의 매력에 빠진 거다.

 

색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흑백의 매력이 뭔가

보통의 순간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아우라가 있다. 우리 삶 자체가 색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색을 빼면 특별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마치 흑백사진은 우리 삶이 아닌 동떨어진 세계 같은 느낌을 준다. 색에 대한 회의도 들었었다. 예전 철학자들도 그랬지만 색은 절대적인 게 아니다. 빛에 의해 만들어 질뿐. ‘내가 보고 있는 파란색은 진짜 파란색일까’라는 의심이 생긴 거다. 색을 없앨 수는 없지만 ‘최소한’으로 줄이자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마스이브의 지하철 1호선 풍경 사진.

이 사진을 한번 봐라. 흑백이기 때문에 훨씬 특별해지는 대표적인 예다. 크리스마스이브라면 모든 사람들이 들뜨고, 흥분될 것 같지만, 사진의 느낌은 전혀 그렇지 않다. 지하철 1호선의 지친 얼굴과 크리스마스이브, 그리고 서울이라는 도시의 배경을 알면 더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다.

배인기 포토그래퍼가 컬러 사진을 아예 안 찍는 건 아니다. 흑백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후보정을 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컬러 사진이 더 괜찮아 보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흑백에 맘을 빼앗겼을 때문일까, 인스타그램 컬러 계정도 있지만 방치 중이라고 한다. 마음에 안 들어서.

길거리 사진은 어떻게 찍게 됐나

유튜브에서 카메라 기종을 검색하면 카메라 리뷰가 나온다. 그런 리뷰 영상을 파도타기 하다가 길거리 포토그래퍼의 존재를 알게 됐다. 길을 걸어가면서 사람들을 찍는데 그 자체가 새로운 세계였다. 그 인상이 강렬하게 남았고 그때부터 길거리에서 사진을 찍게 됐다.

길거리 사진의 매력은 뭘까

길거리에 있는 불특정 다수는 다시는 모일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 만난 적  없는 사람들, 앞으로도 만날 가능성이 희박한 이들을 찍는다는 매력이랄까? 그래서 의도적인 사진은 더 기피하게 되는 것 같다. ‘자연스러움’은 길거리에서만 피는 꽃 같은 거라 믿는다.

행인을 맘대로 촬영해도 되나?

생각보다 거부감이 없다. 정확히는 거부감보다는 외면에 가깝긴 하다. 이 점이 슬프다. 도시 사람들의 속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나하나 걸고넘어지면 피곤하니까 아무 말도 안 하는 것 같다. ‘설마 나를 찍나’라는 의심을 하는데 그 ‘설마’에서 발을 못 떼는 것이다. 물론 지워달라고 하는 분도 있다. 그렇게 말하면 찍은 사진을 보여준다. 사진을 보고 마음이 바뀌는 경우도 많다. 적극적으로 돌변해 ‘한 번 더 찍자’는 분들도 있고(웃음). 그렇게 대화를 시작한다.

돈을 세는 할머니

이건 내가 작은 카메라(후지필름 X100T)를 산 첫날에 찍은 사진이다. 되게 나쁜 사진으로 보일 거다. 사진은 권력이라는 말이 있는데, 밀어붙이는 느낌이 들지 않나. 하지만 전혀 아니다.

이런 순간이 찍혀서 그렇지, ‘한번 찍어도 되겠냐’고 정중히 물어보고 찍었다. ‘왜 찍어, 찍지 마’ 느낌이 아니라 ‘에이, 뭘 이런 걸 찍어’ 느낌이다. 남들이 모르는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에 나한테는 이게 이야기가 있는 사진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에게 보이는 것과 내가 보는 것이 다른 사진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결과물이다.

 

얘기 좀 나눕시다.

사진을 통해서

어떤 식으로 촬영하는 건지 궁금하다

이 사람을 찍어야겠다고 생각이 들면 계속 기다린다. 기다리면서 상대가 한 번은 쳐다봐주길 바란다. 그렇게 나온 결과물은 다른 효과를 주지 않아도, 심지어 흑백으로 전환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강렬한 사진이 되곤 한다.

길거리에서 사진을 찍는 목적이 ‘내가 사진을 찍는다’도 있지만, 카메라를 듦으로써 상대방과 얘기할 수 있거나 소통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내가 지향하는 건 사진을 통해서 하나의 대화를 이뤄내는 거다. 그래서 더 눈 마주치기를 고대하고 기다리는 것 같다.

횡단보도 앞 여자아이

이 사진을 찍을 때는 횡단보도 앞에 여성 한 분이 나타나 주길 고대했다. 배경을 보면 성형외과에 산부인과에 옆쪽은 학원까지 있어서 단적으로 대한민국 여성의 미래나 현실과 관련되어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라고 하면 보통 미래가 창창하고 밝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반대로 이 사진에서는 아이를 통해서 암울한 미래가 떠오르기도 한다. 여성의 지위, 위치, 삶 같은 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는 경험을 준다.

 

1500_6

 

두려워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직접 얘기도 나눈다는 건가

오전에도 사진을 찍으면서 대전역에서 한 분과 대화를 나눴다. 의자에 한 남성분이 앉아있었다. 의자 아래로 바지는 있는데 다리가 없던 분이었다. 그 옆에는 휠체어가 있고 의족이 있었다. 이렇게 되신지 얼마나 됐냐고 하니까 자신의 얘기를 쭉 늘어놓더라. 이건 젊은 때 술 먹고 넘어지고 등등 더 자세한 얘기는 애써 안 들으려고 했다. 괜히 아픈 기억을 들추는 것 같아서. 사진 찍어도 되냐고 하니까 나쁜데 쓸 거 아니냐고 물으시더라. 아니면 얼굴 나와도 괜찮다고. 그분에게는 내가 하나의 특별함을 선사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사진을 찍겠다고 먼저 다가오는 경험은 흔치 않은데, 그런 경험을 선물한 셈이니까.

배인기 포토그래퍼는 카메라를 매개로 대화한다

어떤 게 좋은 사진일까

좋은 사진을 생각하기 전에 ‘어떻게 하면 사진을 좋아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좋아하니 그와 관련된 유명한 말을 빌리고 싶다.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은 영화를 사랑하는 방법으로 첫 번째, 영화를 두 번 보고 두 번째,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세 번째, 영화를 만들어보라고 했다. 난 그걸 오만하게 비틀어서 사진을 사랑하려면 첫 번째는 사진을 찍어보고 두 번째는 글을 써보고 세 번째는 두 번 보라고 하고 싶다. 왜냐하면, 사진을 찍으면 찍을수록 쌓여가기 때문에 같은 사진을 두 번 보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 번 더 보는데 많은 노력이 필요한 거다. 다음 사진이 그런 사진이다.

두 번 보니 좋아졌던 사진

2년 전에 찍은 사진인데 얼마 전 메모리를 돌리면서 확인하다가 ‘어? 이거 괜찮다’ 생각이 들었다. 사진을 찍었을 때는 ‘애들이 웃어주면 더 좋은 사진이 될 수 있었을 텐데’ 생각했었는데, 다시 보니 참 좋더라.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사진을 소개해 달라

웃지 않는 아이

캠퍼스 안에 박물관이 있어서 애들이 한 번씩 견학을 올 때가 있다. 애들이라 하면 항상 장난기가 많을 것 같은데, 애들이 무표정으로 있으니까 너무 이상하더라. 그래서 다가가서 사진을 찍었다. ‘안녕’하면서 인사했는데도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기억에 남는다. 유치원 버스였는데 아이가 아닌 어른들을 보는 것 같아서 슬펐다.

흑백에는 슬픔을 부각시키는 기능도 있는 것 같다

꼭 그렇지는 않다. 무채색 사진이 다 어두운 건 아니다. 밝은 사진도 있다. 색이 어둡다고 사진이 어두운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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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잘 찍고 싶다는 에디터의 말에 배인기 포토그래퍼는 ‘누구나 포토그래퍼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기가 있고 길거리에서 사진을 찍으면 모두 스트리트 포토그래퍼인 셈이다. 길거리에서 얻는 자유분방함과 스쳐 가는 것들 사이에 존재하는 사람 냄새, 그게 길거리의 매력이라고 하니, 어떻게 그 매력에 안 빠질 수 있을까. 이렇게 또 한 사람이 사진의 매력에 빠지고 말았다.

 

/사진: 배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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