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피지의 내일을 이야기할 그날까지
건강한 피지의 내일을 이야기할 그날까지
건강한 피지의 내일을 이야기할 그날까지
2016.07.20 13:40 by 이자영

170720kakao

 

 

제 경험에 바탕을 두기 때문에 유니세프 그리고 홍보부서 전체의 지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피지로 통하는 문을 열자마자 마주한 것이 사이클론 '윈스턴'이었다는 이야기, 지난 글을 통해 들려드렸는데요. 사실 그 강도가 남반구 역사상 최대였다는 것 외에도 특이한 점이 있었습니다. 한 번 지나갔던 사이클론이 갑자기 후진을 하면서 진행 루트를 바꿔 피지를 강타했다는 것과 최대 강도인 카테고리 5로 발달하는 속도가 무척 빨랐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한 해에 한 차례 정도에 그치던 사이클론이 올해는 이례적으로 두 번이나 오면서 피해 규모를 더 키웠습니다.

화살표를 따라 가보면 진행방향을 바꾸는 사이클론의 경로를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피지를 강타하기 이틀 전의 상황이었죠.(사진: Fiji Sun, 2016-02-18, ‘Critical Weather Watch Today on TC Winston’)

피지에서는 그 해에 사이클론 시즌을 따로 정할만큼 자연재해가 일상적입니다. 거기에 엘니뇨현상 등으로 인해 그 양상을 종잡을 수 없어 더욱 중요한 이슈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비단 사이클론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피지, 바누아투, 통가 등 대부분의 태평양 도서국들이 태평양 연안 지역을 잇는 고리 모양의 지진‧화산대, 즉 ‘불의 고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일례로 올해 4월 피지 옆 나라 바누아투에서 무려 7차례 연달아 지진이 발생하면서 윈스턴의 피해에서 벗어나지 못한 피지 사람들의 마음을 섬뜩하게 만들었습니다.

기금 모금을 주 활동으로 하고 있는 한국 유니세프위원회에서도 기후변화와 태풍의 이슈를 다루고 있습니다. 모든 국가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오늘날, 피해국과 주변국이 아닌 곳의 관심도 요구됩니다. (사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홈페이지)

매해 비슷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이 혹독한 운명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개인, 국가의 노력뿐 아니라 외부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 때 내부와 외부의 소통이 원활하도록 돕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유니세프 태평양 사무소(UNICEF Pacific, 이하 유니세프)의 홍보부서(Communication Unit)입니다. 피해를 입은 아이들의 상황을 파악‧포착하고 알려서 사람들의 관심이 끊어지지 않도록, 문제를 해결하는 데 충분한 펀딩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아픈 아이들의 모습으로 ‘좋은’ 콘텐츠를 만든다는 것

이번 사이클론 윈스턴처럼 피해규모가 큰 경우 사무실 전체가 비상체제로 전환되는데, 이때 특히 홍보부서가 전선에 나서면서 ‘소통 창구’로서의 중책을 맡게 됩니다. 때문에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Joe의 경우 사이클론이 지나간 바로 다음날 가장 피해가 컸던 코로섬을 방문해 사진을 찍고 인터뷰해야 했습니다. 폐허가 된 지역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내면서 ‘나는 지금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니 울지 말자, 울지 말자’고 수없이 되뇌었다고 합니다.

보다 빠르게 더 많은 지역에서 콘텐츠를 수집하기 위해 사진작가를 고용하기도 합니다. 당시 사진작가는 이 사진 안에 어떤 이야기를 담아 왔을까요? 궁금하시다면 페이스북 페이지를 방문해보세요! (사진: UNICEF Pacific 페이스북 페이지_2016_Vlad Sokhin)

그렇게 힘들게 모은 콘텐츠를 전부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호소력 있고,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는 것들을 선별해야 합니다. 이후에는 선별된 콘텐츠들을 규격화 된 포맷에 맞게 정리하고, 뉴욕 본부는 물론 공여국인 호주‧뉴질랜드 유니세프 위원회 등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공유해야 합니다. 이 일을 제가 맡게 되면서 그 누구보다 피해 지역에서 온 비디오, 오디오 그리고 사진들을 먼저 볼 수 있었습니다.

어떤 원조 단체로부터 도움을 받아 일을 하는지 보여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가시성을 통해 책무성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유니세프‧원조단체에 대한 효과적인 브랜딩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 UNICEF Pacific 페이스북 페이지)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 사람들의 어려움을 ‘홍보하기 좋은’ 콘텐츠로 만드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에 대해 저의 수퍼바이저는 다음과 같이 말해주었고, 이후 조금 더 진지한 태도로 콘텐츠를 대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요. 좋지 않은 상황을 알리면서 그것은 ‘좋은’ 스토리라고 부르는 것이 조금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만 조금 더 크게 보면 유니세프 홍보부서의 궁극적인 목표는 어린이들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아서, 혹은 들리지 않아서 알려지지 않는 아이들의 입장을 알림으로써 그들의 권리가 지켜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스토리를 만들 때 그 존엄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고려하고, 사소한 것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 과정과 결과 모두 충분히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요?”

유니세프 텐트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을 만나러 가서 찍은 사진입니다. 이 아이들의 웃음이 계속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해야 할, 되어야 할 일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사진: 이자영)

홍보부서의 C4D‧S4D, 윈스턴으로 상처받은 피지 아이들을 대하는 방법

홍보 부서는 피지 내부와의 소통에도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그 예가 C4D(Communication for Development)와 S4D(Sports for Development)라는 프로그램인데요.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각각 커뮤니케이션과 스포츠라는 수단을 통해 피지 사람들 및 커뮤니티의 (행동)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으로, 최근에는 윈스턴으로 인한 피해복구(recovery)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저는 운 좋게도 두 영역 모두 조금씩 경험해볼 기회를 얻었습니다.

먼저 C4D와 교육부서(Education Unit)가 함께 주최했던 사회심리적 지원(psycho-social support) 워크숍을 소개합니다. 윈스턴 이후 중점사업 중 하나가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위한 사회심리적 지원이었는데, 이번에 유니세프가 해당 어린이들을 위해 선택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바로 ‘동화책’과 ‘포스터’였습니다.

동화책에 들어갈 그림을 그리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의 모습 (사진: UNICEF Pacific 페이스북 페이지)

이를 위해 정부, 학교 그리고 비정부기구에서 사람들이 모여 다함께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과 포스터를 제작했습니다. 그림과 이야기를 통해 지금 경험하고 있는 정서적 어려움을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해소할 수 있을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했습니다. 아이들의 관점도 반영하기 위해서 여러 학교를 방문해 1차 완성본에 대한 사전 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그에 대한 피드백을 바탕으로 수정이 이루어졌고, 현재 인쇄를 위한 마지막 점검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인쇄 후에는 피지 내 학교로 배포되어 교육용으로 사용될 예정입니다.

워크샵을 이끌어 준 유니세프 시니어 컨설턴트 'Barbara Kolucki'. 미국의 장수 어린이 프로그램 중 하나인 세서미 스트리트(Sesame Street)에도 관여했을 만큼 유아발달과 해당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야기 속에 메시지뿐 아니라 성 평등,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포용성 같은 가치를 어떻게 반영시킬 수 있는지 지도해주었습니다. (사진: UNICEF Pacific 페이스북 홈페이지)

S4D는 이 곳 유니세프의 특징이라고 봐도 될 것 같은데요. 스포츠를 이용한 활동에 성 평등, 위생, 협동 등 다양한 메시지를 주입하여 ‘Just Play’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건강해지는 것은 물론 배움까지 얻을 수 있으니, 아이들을 위한 일석이조의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왼쪽 그림은 스포츠를 이용한 활동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른쪽에는 진행 방식 & 결과적으로 배울 수 있는 메시지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습니다. (사진: Just Play Emergency Program 책자)

윈스턴 이후 피해지역을 위한 특별 커리큘럼이 제작되었고, 총 12개 지역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그 중 코로에서 하는 프로그램에 다녀왔고, 또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피드백을 준 사후보고 세션에도 참여했습니다. 아이들만을 위한 프로그램이 거의 처음이었다는 점, 때문에 아이들이 행복해했다는 점, 프로그램 진행 중 자원봉사자들로부터 교육을 받은 선생님들이 있으므로 어느 정도 지속가능성이 있다는 점, 육체적 활동이면서 교육의 효과도 있었다는 점 등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물론 개선해야할 점도 있었지만, 아이들과 소통하는 새로운 방식과 그의 잠재력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사후보고 세션. 이곳에서 받은 피드백을 바탕으로 더 나은 다음을 준비하게 될 것입니다(사진: 이자영)

아프니까 피지다?

아름다우니까 피지다!

올 상반기 유독 피지에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 어려움을 누구보다 함께 해오면서 유니세프 홍보부서는 ‘아프니까 피지다’라는 말을 해왔습니다. 지붕은 날아가고 문이 부서진 집, 사라진 학교, 불안정한 삶을 사는 아이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사이클론의 잔해의 모습을 전해주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더 많은 이야기를 하기 위한 도입부에 불과합니다. 폐허 속에서 오히려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새로운 내일을 위해 나아가는 피지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 그들 안에 깃들어있는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강인한 회복력(resilience)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정부, 비정부기구, 교회 등 다양한 주체들이 힘을 모으는 모습을 통해 피지 내에서 살아 움직이는 공동체 정신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외부에서 뻗어온 고마운 도움의 손길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자칫하면 문제해결 과정에서 소외되기 쉬운 어린이들을 위해 다양한 소통 창구를 활용하는 유니세프의 노력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돌아볼 때, 결국 홍보부서가 전하고자 한 것은 더 이상 아프지 않은 피지의 청사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아름다우니까 피지다’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저는 이 메시지가 일방적인 전달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소통이라는 것은 쌍방향이어야 합니다. 그 어떤 좋은 메시지를 말한다고 해도 그것을 들어주는 이가 없다면 무엇에 의미가 있을까요? 결국 ‘듣는 사람’ 즉 여러분이야말로 홍보부서의 일을 유의미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피지의 아름다움을 아름답게 하는 마지막 퍼즐조각 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진: UNICEF Pacific 페이스북 페이지_2016_Vlad Sokhin)

UN 희망원정대 네팔, 우즈베키스탄, 몽골, 가나, 피지, 스리랑카. 이 여섯 나라에서 활동하는 UN 봉사단 청년들이 현지에서의 활동과 생활을 고스란히 글과 사진에 담았습니다. 각자가 속한 UN 기구에서의 이야기와 함께 그곳의 사회와 문화, 여행정보 등 6개월 동안 보고 겪은 생생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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