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하는 사회복지사들에게 브레이크를!
폭주하는 사회복지사들에게 브레이크를!
2016.08.15 14:16 by 윤민지

사회복지업무 종사자에게 있어 2013년은 암울했던 한 해 였습니다. 그해 상반기에만 사회복지공무원 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지요.

“일이 너무 많아 힘들다.” “하루하루를 견딘다는 건 괴물과의 사투보다 더 치열하다.” “아침이 오는 게 두렵다” 등 이들이 유서에 남긴 마지막 말은 사회복지업무 종사자가 처한 열악한 근무환경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됐습니다.

팟캐스트 방송 통해 사회복지사의 소진 이야기하는 ‘사소환 연구소’

여기, 일찌감치 사회복지사의 소진에 관심을 가졌던 네 남자가 있습니다. ‘사회복지사의 소진 환경을 연구’하는 ‘사소환 연구소’의 팀원들이죠. 홍봉기, 김우람, 이무건, 백경진 사회복지사는 팟캐스트(인터넷을 통해 오디오‧비디오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 사소환 연구소를 운영하며 사회복지업무 종사자의 소진에 대해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왼쪽부터 백경진 KT그룹 희망나눔재단 희망나눔팀 과장, 홍봉기 정릉종합사회복지관 서비스제공팀 팀장, 이무건 성북노인종합복지관 복지1과장, 김우람 성산종합사회복지관 서비스1팀 팀장

2012년에 결성된 사소환 연구소는 중부재단의 사회복지실무자 지식공유네트워크 지원사업 ‘이:룸’ 에 2013년부터 두 해 연속 선정될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중부재단은 사회복지실무자들이 자신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올해로 5회를 맞은 이:룸은 사회복지실무자들이 전문성을 높이고, 상호간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그림: https://www.facebook.com/radio.for.sw)

지난 2일, 서울 화양동에 사소환 연구소 팀원들이 모였는데요. 복지관에서의 야근을 끝마친 시각이었지요. 사회복지사의 소진을 말하는 사회복지사. 자신들도 격무에 시달리면서 짬을 내 사회복지사의 소진에 대해서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동료 중 하나가 엄청난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감정을 받게 되는 사태까지 갔어요. 그 때 ‘이건 아닌데…’란 생각이 들었어요. 사회복지 현장의 여러 어려움을 공유하고 알리면 문제를 예방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죠. 또한, 그 당시 저 역시도 소진된 상태였어요.이야기할 곳이 절실했죠.” (홍봉기 사회복지사)

홍봉기 정릉종합사회복지관 서비스제공팀 팀장

사회복지업무 종사자의 ‘소진(burnout)’

일을 할 의욕도, 동기도 잃어버린 극단적인 스트레스 상태 ‘소진’. 심리학에서는 ‘자기 혐오감, 무기력증, 불만, 비관, 무관심 등이 극도로 커진 상태’를 뜻한다고 합니다.

매일 어려운 상황에 처한 클라이언트를 상대해야 하는 사회복지업무 종사자에게 ‘소진’은 쉽게 볼 일이 아닙니다. 이들이 소진될수록 사회복지서비스의 질은 낮아질 수밖에 없으며, 이 여파는 클라이언트에게 고스란히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사회복지사, 사회복지공무원 등은 과도한 업무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사회복지 대상자(클라이언트)의 폭언‧폭행에까지 노출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상담 중 클라이언트가 휘두른 흉기에 찔리거나 둔기로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진 적도 있었지요. 앞서 자살한 사회복지공무원 중에선 혼자서 3000여 명의 클라이언트를 담당했던 경우도 있었다 합니다.

사회복지직의 65%가 우울증을 앓고 있으며, 29.2%가 자살충동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에서 노동환경건강연구소와 함께 실시한 사회복지직 노동조건 실태조사(2013년)에 따르면 사회복지직의 65%가 우울증을 앓고 있으며, 29.2%가 자살충동을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실제 사회복지공무원의 평균 주당 노동시간은 51.8시간으로 주당 노동시간이 길수록 우울증도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죠.

“저는 노인복지관에서 근무하는데요. 간혹 어르신들이 사회복지사에게 폭언, 반말을 하실 때가 있어요. 사회복지공무원들이 민원인들에게 폭행당하거나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앞으로의 제 일 같기도 했어요.”(이무건 사회복지사)

이무건 성북노인종합복지관 복지1과장

스마트폰 하나로 시작한 사회복지사들의 외침

“처음에는 사회복지사 소진에 대한 책을 쓰려고 했어요. 하지만 출판보다 비용도 적게 들고 파급력이 큰 팟캐스트를 선택했죠.”(홍봉기 사회복지사)

사소환 연구소가 갓 선을 보였을 때를 회상하는 홍봉기 사회복지사에게서 아직도 그때의 흥분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정말 신나게 준비했다"며 만면에 미소가 번집니다. 홍 사회복지사는 서울특별시사회복지사협회 축구모임과 SNS에서 알게 된 사람들을 일일이 만났습니다. 사회복지사 소진을 터놓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절실한 설득에 김우람, 이무건, 백경진 사회복지사가 힘을 합했죠.

2012년 의기투합한 이들은 2013년 3월, 홍봉기 사회복지사의 자취방에서 아이폰을 놓고 첫 시그널을 내보냅니다. 과도한 업무, 직장 내 갈등, 부적절한 수퍼비전과 리더십, 급여, 사회복지기관 평가, 사회복지공무원 자살 등 방송에서 다룬 주제도 다양했습니다. 시간을 쪼개 주말에 기획회의 및 방송 녹음을 마쳤고, 2014년에는 전주・대구・부산・제주 등 전국 투어 방송도 다닐 정도로 이름이 알려졌죠. 사회복지사협회 선거가 치러질 때는 생방송으로 중계까지 했습니다. 예비 사회복지사와의 만남, 언론과의 인터뷰 등 바쁜 나날이 이어졌죠. 이후 2015년 8월까지 총23회의 방송이 청취자들을 만났습니다.

2013년 사소환 연구소 팟캐스트 방송 중 (사진: 사소환 연구소)

“주변에서 사소환 연구소에 거는 기대가 컸어요. 사회복지기관 관장님들도 섭외했죠. 사소환 연구소는 누군가를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 후배들의 소진 환경을 바꿔주기 위한 활동이라는 점을 설득했고, 출연도 약속하셨죠. 하지만 일정상의 문제로 방송 출연이 성사되지는 못했어요. 그 점이 아쉬워요.”(홍봉기 사회복지사)

이들이 2013년 ‘이:룸’에 선정된 후 찾아온 변화도 컸습니다.

“먼저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었어요. 모여서 회의, 녹음 하다보면 식사도 하게 되는데 이:룸 전에는 풍족하게 먹을 수 없었거든요.(웃음) 또 공신력을 얻게 됐어요. 사회복지사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전개하고 있는 중부재단에서 지원받았다고 하면 사람들이 더 신뢰하는 걸 알았지요. 전국투어를 진행할 때 특히 그 점을 많이 느꼈습니다.”(백경진 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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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환 연구소 팟캐스트 녹음 현장 모습들 (사진: 사소환 연구소)

팟캐스트 방송을 시작한 후 청취자들의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네 팀원들의 거침없는 입담과 날카로운 비판에 “속 시원하다”부터 “다음 방송은 언제 하냐”까지…. 사소환 연구소는 예비 사회복지사, 현업에서 활동하는 사회복지사 할 것 없이 관심 있는 사람들이 두루 찾는 ‘사회복지계의 대안언론’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지요.

“저는 사회복지 분야에서 벌어지는 불합리한 문제들을 공론화 하고 싶었어요. 언론에서 기업비리, 사회문제를 고발하듯이 사소환 연구소도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대안언론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불합리를 말했다고 해서 불이익을 준다면, 불이익을 준 쪽이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백경진 사회복지사)

백경진 KT그룹 희망나눔재단 희망나눔팀 과장

소진을 말하며 성장하다

네 팀원들은 사회복지업무 종사자의 소진을 공론화하기 위해 사소환 연구소를 시작했지만, 방송을 계속할수록 소진이 사라진 건 오히려 자신들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불합리한 점들을 못 본 척하고 넘어갈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누군가는 사회복지사들의 소진에 대해 말해야 했고, 후배들은 다른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죠. 하지만 그렇게 시작한 사소환 연구소가 오히려 저희 소진을 사라지게 할 정도로 에너지를 줬어요.”(홍봉기 사회복지사)

“전 사소환 연구소를 통해서 업무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학생 시절 실습할 때부터 노인 관련 기관에만 있었어요. 사소환 연구소에서 장애인복지관, 종합사회복지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한쪽만 보고 있었단 걸 깨달았죠. 시야가 확실히 넓어졌어요.”(이무건 사회복지사)

우리의 목소리가 구석구석 닿을 때까지

팀원들의 개인 사정으로 방송은 잠시 중단됐지만, 올 하반기에 다시 청취자들을 찾아올 예정이라는 사소환 연구소. 언제든지 새 멤버를 환영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죠. 자격조건은 ‘열정과 열린 마음의 소유자’라고 합니다.

“전 팀원들과 사소환 연구소를 함께 하며 슬픔, 기쁨을 같이 하는 사이가 됐습니다. 정말 감사해요. 새로 들어오실 팀원도 저희와 함께 오랫동안 사회복지 문제를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홍봉기 사회복지사)

“방송은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지금처럼 저희가 방송 하고 싶을 때 재미있게 했으면 좋겠어요. 지금처럼이면 언제까지고 주욱 함께 갈 것 같아요. 참여를 원하신다면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내주세요!”(김우람 사회복지사)

김우람 성산종합사회복지관 서비스1팀 팀장

단순히 같은 일을 하는 사이를 넘어,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걷는 동반자가 된 사소환 연구소 팀원들. “자녀들과 함께 예순살까지 함께 하자”는 이무건 사회복지사의 말처럼 평생을 함께 하는 동지이자 가족으로서 언제까지고 사회복지업무 종사자들의 시원한 창구가 되어주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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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소환 연구소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radio.for.sw 

▶ 사소환 연구소 팟캐스트 듣기(추천 방송 – 7회 ‘우리는 왜 사회복지사가 되었는가)  
http://www.podbbang.com/ch/9578?e=21759067 

/사진: 윤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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