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한 혹은 수수한
우수한 혹은 수수한
2016.09.01 16:59 by 시골교사

한 남자가 강의실 앞쪽에 등장했다. ‘드디어 시작인가?’ 긴장 반, 설렘 반으로 첫 강의를 기다리던 나는 자세를 고쳐 잡았다. 하지만 이내 다시 느슨해진다. 빛바랜 청바지에 허름한 후드 티셔츠 차림으로 마이크를 이리저리 점검하던 그의 행색 때문이었다. ‘아, 교수님은 언제 오시지….’ 수업 개시를 기다리는 시간이 슬슬 지루해졌다.

“안녕하세요. 이 강의를 맡게 된 사회정책학 교수입니다.”

잠시 멍 때리던 찰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까 그 허름한 후드 티셔츠였다.

‘뭐라고, 저 분이 교수라고???’

내 수업 방식이 맘에 안 들면 나가시고.(사진:Ollyy/shutterstock.com)

 

| 교수는 원래 연구하는 직업입니다

내 전공은 계량경제학. 당연히 통계, 경제 관련 분야의 비중이 높다. 생소하고 어려운 분야였지만, 열정 넘치는 교수님들을 만난 덕분에 잘 마칠 수 있었다. 그들 중에는 학계에서 명망 높기로 유명한 분들도 많았다.

연산계산(Operationsrechnumg) 과목 교수님은 독일 경제학계에서 10위 안에 들 정도로 유명한 분인데, 강의 내용도 신선하고 늘 열강을 펼치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인기가 참 많았다. 정원이 500명이나 되는 수업인데도, 조금만 늦게 가면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야 수업을 들어야 할 정도.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던 교수님도 있었다. 독일 경제학의 저명인사였던 룩스(T. Lux) 교수였다. 이 분 수업은 항상 영어로 진행됐는데, 워낙 내용이 어려워 살아남는 학생은 늘 소수였다.

거시경제(Makro) 과목 교수님은 살아있는 수면제였다. 항상 기계를 틀어놓은 것 같은 (고저구분 없는) 일관된 톤으로, 농담 한 마디 없이 그 긴 수업시간을 가득 채웠다. 학생 수는 별로 줄지 않았지만, 앞의 두‧세 줄을 제외하고는 꾸벅꾸벅 조는 학생이 대부분이었다.

강의 시간 풍경(사진: 시골교사)

큰아이와 인연이 닿아 알게 된 한 교수님이 계셨는데, 늘 자전거로 아이와 함께 출근하고, 저녁 7시가 넘어야 퇴근했다. 주말도 없었다. 주말에도 늘 학교에서 생활한다. 한번은 사석에서 그에게 이런 질문을 해보았다.

“교수님! 혹시 주말까지 학교에 출근하는 이유가 아이들 때문인가요?”

그는 얼마 전 태어난 갓난아기를 포함해 세 아이를 두고 있었기에, 집에 있는 것 보다 한적한 연구실이 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던진 질문. 하지만 대답은 의외였다.

"학문 세계에도 경쟁이 심해요. 연구하지 않으면 낙오됩니다."

그의 말대로 이곳 교수들은 수업준비 뿐만 아니라 연구에도 몰입한다. 그 연구 성과물을 학기마다 또는 해마다 다양한 국내·외 학술지에 기고하는 것이 그들의 성과요, 기쁨이다. 독일에서 연구하지 않는 교수는 생명력 없는 직업인일 뿐이다.

교수의 생명력은 그 밑에서 공부하는 박사과정 학생 수가 말해준다. 연구하는 교수 밑에는 제자들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아는 박사과정 선배는 독일 교수 연구실에 불이 꺼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학문적 성과가 있어야 더 높은 연봉 제의를 받을 수 있고, 학문적 업적이 인정되면 나중에 명예교수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해줬다.

독일 교수는 정치로 교수가 되고 살아남기 보다는 실력으로 평가받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해마다 전국 경제학 교수 랭킹 탑10에 들기 위해, 또 더 나아가 노벨상까지 꿈꾸며 연구실에 불을 밝히는 것이다.

아이들이 귀찮아 주말에 나와 있는 거 아니랍니닷!(사진:Mehendra_art/shutterstock.com)

 

| 청바지입고, 자전거로 출퇴근

학문적 권위는 뛰어나지만, 실생활은 오히려 굉장히 수수한 게 이곳 교수님들의 또 다른 특징이다. 어떤 교수들은 박사과정 학생들과 매일 학교식당에서 점심을 같이 하고, 식사 후에 그들과 어울려 애들처럼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지나가기도 한다.

가장 잘 드러나는 게 그들의 옷차림이다. 앞서 얘기한 사회정책학 교수님의 허름한 행색은 한 학기 내내 변함이 없었다. 어쩌다 한번 입는 청바지가 아니라 한 학기 내내 교복처럼 청바지를 입고 강단에 서는 모습은 나에게 충격이었다.

물론 고지식하게 양복을 고집하는 교수님들도 있었다. 하지만 40대 중반의 비교적 젊은 교수들은 자유분방했으며, 복장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여름이면 파란색 남방에 청바지를 고수하는 대머리의 통계학 교수님, 허름한 티셔츠에 색 바랜 청바지를 즐겨 입는 계량 경제학 교수님, 그리고 사회정책학 교수님이 바로 그런 부류였다.

그런 옷차림으로, 어깨엔 배낭, 머리엔 헬멧을 갖추고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굴리며 학교로 향하는 분들이 이곳 대학 교수님들이다. 50대 중반을 넘은 남편의 지도교수도 청년보다 더 힘차게 페달을 굴리며 매일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다.

아, 지각이다. 난 교순데…(사진: Microgen/shutterstock.com)

'이 분들은 왜 이리 체통 없이 청바지에 자전거로 출퇴근을 할까? 차비를 아끼려고? 아님 지구환경과 에너지를 생각해서?'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추측컨대, 연구할 시간도 부족한 그들에게 자전거는 하나의 운동일 것이다.

격식을 따지는 사람들은 어느 곳이나 있기 마련이지만, 그런 것에 매이지 않고 자기의 길을 열심히 걸어가는 교수님들이 멋져 보였다. 옷차림이나 출퇴근 도구는 실력 있는 그들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germany

적응되지 않는 호칭

 

남의 나라 말, 뭐하나 쉬운 게 있겠냐 만은 유독 적응되지 않는 호칭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두(Du‧너)'와 '지(Sie‧당신)'입니다. '두'는 나이와 상관없이 친한 사이에서 쓰는 호칭인데, 자녀가 부모에게, 손주가 할머니에게, 며느리가 시아버지에게, 아이가 친한 아저씨에게 쓸 수 있습니다. 반대로 처음 만난 사람이나, 몇 번 만났다고 해도 여전히 거리감이 남아 있거나, 혹은 아주 예의를 갖추어야 할 사람에겐 '지'라는 호칭을 씁니다. 역으로 얘기하면, 여러 번 만난 상대에게 계속 '지'라는 호칭을 쓰면 상대방은 '나는 여전히 당신과 거리감이 있어요' 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죠. 

개인적으론 이 '두'라는 호칭에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어요. 아이 친구 녀석들이 안면 좀 텄다고 나한테 '두'라고 할 때는 '어린 게 어디서 반말이야'싶어 괘씸하기까지 했죠. 반대로 내가 '두'라고 불러야 할 대상 앞에선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연세 좀 지긋한 독일 양반이 나에게 '두'라며 친근감을 표현할라 치면 '진짜 그렇게 불러도 되나'싶어 한참을 망설여야 했죠. 하지만 친한 사이에서 그런 존칭을 쓰지 않으면 그것 역시 예의에 벗어난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사진: Piotr Marcinski/shutterst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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