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나라가 내게 허락한 유일한 마약(feat.떼창의 민족)
음악, 나라가 내게 허락한 유일한 마약(feat.떼창의 민족)
음악, 나라가 내게 허락한 유일한 마약(feat.떼창의 민족)
2016.09.29 13:00 by 황유영

참 슬픈 이야기지만, 나이를 먹고 경험치가 쌓여가면서 재미있는 일들은 더 적어지는 기분이다. 누군가 화두를 던졌을 때 A부터 Z까지 빠르게 머릿속에 그려지다 보니, 즐겁게 했던 일들도 이제는 퍽 시큰둥해진다. 꼭 일이 아니라 취미의 범주까지도. 그렇게 점점 더 집순이의 삶에 빠져만 가고, 견고한 우물을 만들어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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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내 가을은 페스티벌의 계절이었다. 늦여름부터 시작되는 페스티벌 일정으로 다이어리들이 꼬박꼬박 채워지던 시기가 있었다. 뚜벅이임에도 불구하고, 주위를 수소문해 페스티벌 장소까지 가는 차를 얻어 타기도 하고, 꽤 값이 나가는 페스티벌 전일권 티켓을 스스로에게 선물하기도 했었다. 그 구하기 어렵다는 초대권을 주위에 챙겨다줄 정도로 자주 다니고, 즐겼었더랬다. 일이 바빠지면서 부터였는지, 몸이 피곤해지면서부터였는지. 언제부턴가 흥미를 잃기 시작하더니, 공짜 표가 생겨도 흥이 나지 않는 지경에 이르게 됐었다. 공연 보고 맥주 마시다가 또 공연보고 맛없는 피자 한 조각을 사먹는 페스티벌 루틴이 지겨워진 탓이다. 

그게 벌써 3~4년이 지난 이야기. 이제는 페스티벌과 거리가 먼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불현 듯 지인이 페스티벌 티켓 하나가 생겼다며 내게 의향을 물어왔다. 양일권이기는 하나 지인들과 내가 갈 수 있는 날이 달라 혼자 가야만 하는 번거로운 일정. 평소의 나라면 단칼에 거절했을 상황이 분명한데, 왠지 모르겠지만 오기가 생겼다. 이렇게 구구절절 서론을 늘어놓는 까닭? 그래서 혼자 락페스티벌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다.

락페스티벌은 방구석에서부터

가기로 결정하고 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라인업 연구다. 누구보다 진지하게 작업에 돌입한다. 헤드라이너부터 살핀 후, 흥미가 돋는 라인업에 형광펜으로 밑줄 쫘악. 로맨틱 펀치, 계피, 술탄오브더디스코, 잔나비… 흥미로운 이름들이 꽤 보인다. 게다가 양 스테이지 헤드라이너는 이승환님과 국카스텐. 공연 자주 다니던, 그 혈기 왕성한 나이에 자주 봤던 가수들의 무대를 다시 보려니 설레기 시작한다. 대강 볼 공연들을 머릿속에 그리고 나면 동선이 정해진다. 매년 난지한강공원에서 열리는 페스티벌. 작년에 자전거를 타다 우연히 현장을 지났는데, 가을 한강바람을 맞으며 듣는 음악은 여간 잔망스러운 것이 아니어서 괜히 그 근처를 맴돌며 음악을 듣곤 했었다. 이리저리 라인업을 연구하다보니, 어머. 나 벌써 신났네.

공연장을 향해 걸어가는 길. 한강은 언제나 옳구나.

집에서 도보로 30분. 돗자리 하나만 들고 털레털레 걷기 시작하는데, 늦더위 덕분에 은근히 멀게 느껴진다. 내 여름을 책임졌던 난지한강공원 수영장을 지나 장소에 도착하니 벌써 세시다. 근처에 도착하자마자 둠둠둠둠 베이스 소리가 심장 박동처럼 울리기 시작한다. 지인에게 받은 티켓을 들고 팔찌 교환처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내심, 혼자는 처음 가보는 페스티벌에 긴장해 있었는데, 현장에 도착하니 특유의 분위기에 도취된다.

영롱한 입장팔찌, 오랜만이다.

음악 즐기는데 준비물은 필요없어!

두 스테이지 사이의 거리가 꽤 멀어 한 곳에 올인하기로 결정하고 돗자리 자리 잡기에 나섰다. 매의 눈으로 살펴보지만 벌써 명당 자리는 만석. 무대 양 사이드를 공략하기로 하는데, 유레카! 지인들과 함께 왔다면 불가능했겠지만 혼자라면 충분한 공간이 눈에 띈다. 혼자 오길 잘했는데? 돗자리를 딱 절반만 펴 내 자리를 확보한 후 맥주를 사러 간다. 돗자리 위에 주변에서 주워온 박스를 던져두어 영역 표시는 꼭 해야 한다. 대부분의 페스티벌이 그러하지만, 페트병이나 병, 캔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 일회 용기 반입도 금지하기 때문에 미리 다회용기에 준비해 오지 않는다면 음식이나 맥주는 현장에서 구매해야 한다. 맥주는 무려 한 컵에 5천원. 이런 날강도들. 그러나 맥주 없이 즐기는 음악이란 박보검 없는 ‘구그달’(구름이 그린 달빛)과도 같은 것. 포기할 수 없기에 강도님들에게 만 원을 헌납하고 맥주 두 잔을 받아들었다. 절대 혼자 온 티를 내기 싫어서가 아니다. 다시 술을 사러 오기 귀찮았을 뿐.

맥주. 아름답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음악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돗자리에 앉아 맥주를 손에 들고 비트에 내 몸을 맡기기 시작했다. 드랍더비트! 돈스탑더뮤직!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 눈치도 보고, 약간의 쑥스러움을 느꼈지만 어느새 격렬하게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오늘만은 돗자리에서 고급지게 음악을 즐기려했건만, 술탄오브더디스코가 내가 사랑하는 ‘캐러밴’을 부르기 시작했을 때, 난 이미 무대 앞 슬램구역으로 돌진해 그들과 함께 춤을 추고 있었다.

프로흥유발러 술탄오브더디스코
슬램구역으로 난입 성공. 혼자도 즐겁다.

그렇게 즐기다 쉬다 맥주를 마시다, 늘 뻔하다 생각했던 페스티벌 루틴을 즐기고 있다보니 어느새 어둑어둑. 오늘의 주인공 국카스텐이 등장했다. 그리고 우리동네음악대장님은 무대를 뒤집어놓으셨다. 아는 노래가 좀 나오니 더 신나는 페스티벌. 마지막 앵콜과 여운까지 다 즐기고 걸어오는데, 옆 스테이지에서 아직도 환님께서 공연을 하고 계신다. 흥얼흥얼 노래를 따라부르며 집으로 걸어오는 길. 남은 흥을 주체할 수 없어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을 사서 마셨다. 역시 음악은 국가가 내게 허락한 유일한 마약~!!

무대를 뒤집어 놓으시고 계신 우리동네음악대장님. 사진을 못 찍은게 아니다. 그의 아우라를 카메라에 담을 수 없을 뿐.....

혼자레벨 ★★★

락페스티벌은 페스티벌 중에서도 혼자 오기 참 좋은 곳. 지인들과 함께 오더라도, 그들을 버리고 무대 앞으로 돌진해 모르는 사람 사이에 휩쓸리게 된다. 혼자 맥주를 마시거나 음식을 먹는 일이 초라해 보인다고 생각하지? 당신의 친구 음악이 함께라면 외롭지 않다구.(Feat.중2병, 홍대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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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TIP

어떻게 놀지 모르겠다면 라인업을 의지하자. 라인업이 당신을 인도하리니. 내가 다녀온 렛츠락페스티벌의 경우 스테이지가 두 개로 규모가 대형은 아니었지만, 3~4개만 넘어가도 현장에서 우왕좌왕, 제대로 즐기기 어렵다. 듣고 싶은 무대 위주로 동선을 짜면 즐겁게 즐길 수 있다.돗자리는 필수, 간이 의자는 선택. 장시간 진행되는 페스티벌의 특성상 아무리 체력 좋아도 모든 공연을 서서 볼 수는 없다. 돗자리를 펼 수 있는 구역에서 자리를 잡고 피크닉처럼 페스티벌을 즐겨보자.미리 음악을 듣고 가면 더 좋다. 아는 노래 따라 부르다 보면 뻘쭘할 틈이 없다.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떼창의 민족 아닙니까?다른 사람 눈치가 보이면 눈알이보이지 않는 선글라스를.

/사진: 황유영

혼자옵서예 1인 가구가 늘고 있다. 통계청이 집계한 1인 가구 수는 506만. TV에는 혼자 사는 연예인들의 평범하지만은 않은 일상이 등장하고, 혼밥, 혼술은 흔한 용어가 됐다. 그러나 여전히 혼자가 버거운 사람들이 있다. 혼자보다 여럿이 가능한 일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래서 한다. 혼자 먹고, 혼자 놀고, 혼자 즐기는 일을. 선뜻 내지 못했던 용기어린 도전이자, 대리만족이며, 불친절하지만 세심한 가이드다. 그리고 혼자서도 꿋꿋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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