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서울아이 시집감수다
프롤로그: 서울아이 시집감수다
2016.10.19 20:36 by 이도원

꽃신을 신었다. 한복도 입었다.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옷이다. 내 옆엔 세상 어색한 표정을 짓는 한 남자가 서 있다. 내 남편 ‘제남’(제주 남자를 줄인 가명입니다.)이다.

우리는 조용한 듯 활기찬 곳으로 들어선다. 매우 어색하게. 낯선 사람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를 아는 투다. 모두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한 손으로 야무지게 한복 치마를 잡은 후, 마치 풍선 위에 앉는 듯이 자리에 앉았다. 엄마가 알려준 그대로.

“도원아~ 나도 20년 전에 너처럼 섬으로 시집 왔다~ 벌써 20년이 지났네.”

음식들을 챙겨 놓아주던 한 어머님의 말에, 묘한 동질감마저 느낀다.

우리 결혼했어요!

그날은 결혼 전야였다. 다시 말해 잔칫날이다. 날이 날이니만큼 시종일관 활짝 웃으며 인사했지만, 사실 난 이들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그저 같은 표정만 짓고 있었다. 입에 경련이 일어날 정도로 말이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이게 말로만 듣던, 달라도 뭔가 다른 섬마을의 잔칫집 풍경인가.

여긴 어디? 나는 누구?

그렇다. 올해 초 난 제주도로 시집을 왔다. 결혼 전에는 경기도 주민이었다. ‘많이 다를 거야’라는 말은 들었지만, 시작부터 이럴 줄은 몰랐다.

왁자지껄했던 결혼 전날이 지나자, 내겐 더 익숙한 결혼식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재밌는 건 전날 잔칫날에 비하면 결혼식은 아주 조촐하게 진행된다는 점이다. 제주도에서 결혼식 당일에는 아주 가까운 친인척들과 친구들만 참석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달랐다. 제주도로 시집을 온다는 것은.

모두들 제주 남자와 결혼하여 제주에 살게 된다는 걸 부러워했다. 나 또한 조금은 그런 기대를 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육지와 제주의 거리만큼이나 서로 다른 것들이 많았다.

제주도에서는 신랑 신부 외에도 ‘부신랑’, ‘부신부’라는 게 있다. 신랑과 신부가 각각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을 정하여 함께 결혼 관련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이들의 역할은 매우 크다. 답례품, 차량, 축의금 관리 등 아주 많은 것들을 준비한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놀란 건… 부신랑과 부신부가 결혼 전 잔칫날과 식 당일 가방을 메고 다니며 축의금을 걷는 모습이었다. 식장 앞에 축의금과 식권을 주고받는 육지에서 풍경과는 달라도 참 다른 모습이다.

제주도에선 결혼식 당일에 아주 가까운 친인척들과 친구들만 참석한다.

앞서 살짝 얘기했듯이, 제주도는 결혼식 전 날 잔치라는 걸 연다. 소위 ‘손님 받는 날’ 이라고 한다. 특이한 건, 이런 잔치가 도내 신문이나 동사무소, 읍사무소 홈페이지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무조건 아는 사람만이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결혼을 축하해주고 싶다면 모두 한 끼 식사하며 즐기다 갈 수 있는 문화다.

육지에서는 식권을 주지만, 잔칫집에서는 그런 것 없이 축하 말 한마디만으로도 충분하다. 예전에는 이 잔치를 집에서 며칠에 걸쳐 열었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선 주변의 도움이 필수였다. 식기구도 빌려야 했고, 일손도 필요했다. 사회 책에서만 보던 ‘품앗이’ 문화인 셈이다. 이번 우리 ‘잔치’는 시대가 변한만큼 하루로 줄여 진행되었지만, 아는 이들의 도움이 총동원됐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결혼 당일 풍경도 많이 다르다. 신랑과 신부가 타는 1호차, 신랑 부모님이 타시는 2호차, 신부 부모님이 타시는 3호차 이렇게 총 3대의 차량으로 이동을 한다. 모든 차량의 운전수는 따로 배정되는데, 특히 1호차는 후진이나 유턴을 해서는 안 된다. 신랑 신부의 앞날에 후진이나 유턴이 없어야 한다는 염원이 담긴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1호차 운전사는 그 전날 신랑 신부의 출발점에서 식장까지 정확하고 안전한 길을 머릿속에 새겨 넣어야 한다.

우리의 결혼생활엔 후진도 유턴도 없다.

육지에서 각박한 회사 생활에 지쳐 여유로움을 찾고자 내려온 제주 생활도 아니며, 그 누구 아는 이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시간이 가면서 자연스럽게 찾아온 고민의 끝에 고향에 내려가야 했던 사람과 함께 내려와 살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한 편으로는 나를 걱정한다. “적응이 힘들지는 않냐”면서. 당연히 힘들었던 점도 있었고, 앞으로도 힘든 일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디인지 보다, 누구와 함께인가가 중요하다. 앞으로도 내 제주 라이프는 즐거운 일들로만 채워질 것이다.

 

/사진: 이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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