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신나게, 더 부드럽게’ 2016년 집회의 패러다임이 바뀐다
‘더 신나게, 더 부드럽게’ 2016년 집회의 패러다임이 바뀐다
2016.12.29 15:15 by 스타트業캠퍼스

“잠시만요, 잠시만요.”

지난달 12일 오후, 서울 지하철 ‘왕십리’역 환승 구역, 한 무리의 청년들이 닫히는 열차문을 비집고 들어선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청년들의 행렬에 열차는 한참 동안 운행을 멈춘다. 해당 열차는 ‘시청행 내선순환’. 이미 열차 안은 발 디딜 틈 없이 꽉 차 있다.

“다음 정차역은 을지로 4가, 을지로 4가 역입니다.”

낯선 기관사의 목소리에 만원 승객이 술렁이나 싶더니, 이내 방송이 이어진다.

“현재 집회 관계로 승하차 인원이 많으니 타고 내리실 때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집회 참석을 위해 광화문역을 빠져나오는 시민들

같은 시각, 서울 광화문 일대는 100만 시민들을 맞이할 준비로 분주하다. 광화문 역 8번 출구 앞은 이미 노란 리본과 각양각색의 깃발이 물결친다. 이날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민중총궐기집회’(이하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만든 물결이다.

집회의 규모 자체는 이미 수차례 예고된 바와 같이 ‘역대급’이었다. 하지만 참가자의 면면만 보면 ‘전형적’인 시위·집회와 조금 달랐다. 한 손엔 유모차, 한 손엔 아장아장 걷는 아이의 손을 잡은 부모들, 교복을 입은 여고생 무리들, 데이트 복장으로 행렬 틈에 섞여있는 연인들까지… 다양한 연령, 다양한 계층이 한 자리에 모였다.

11월 12일, 오후 2시경의 광화문 일대 풍경

오후 3시 경, 세종문화회관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순신 동상 일대에 모인 사람들은 가지런히 열을 맞춰 앉아 있었다. 마치 공연 관람을 준비하는 듯 했다. 실제로 얼마 후 유명가수의 공연이 펼쳐지기도 했다. 평소 뉴스에서 보던 집회와는 확실히 다른 양상이었다.

같은 시각, 온라인에선 이런 집회의 풍경이 실시간으로 전파됐다. 정치인들의 페이스북 라이브, 유명 연예인들의 트위터, 인스타그램(이하 SNS)은 집회의 이모저모를 즉각적으로 실어 날랐다.

필자가 SNS에 통해 전달한 집회 현장

100만명의 스토리 역시 각양각색이다. 현재 호주에서 살고 있다는 이나형씨는 집안일로 잠시 귀국한 틈을 타 집회에 참석했다. 그녀의 왼손에는 쓰레기봉투가 들려있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궁리 끝에 쓰레기를 모아서 버리자고 마음먹었죠.”(이나형)

이날 현장에는 나형씨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손수 쓰레기봉투를 챙겨운 시민들은 물론, 본격적·조직적으로 쓰레기 정리에 나선 자원봉사자들도 눈에 띄었다.

쓰레기봉투를 손에 쥔 이나형씨. 봉투에 쓰여진 메시지가 인상적이다.

여기저기 ‘교복부대’도 눈에 띄었다. 여지민·김민지·김이안·황지윤(이하 안성가온고등학교 2학년)양은 “몇 시간 더 공부하는 것보다 학생으로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참여했다”면서 “주말이지만 굳이 교복을 입고 참여한 것도 그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과거 쇠파이프, 최루탄, 화염병이 난무하던 시위 문화 속에선 만날 수도, 기대할 수도 없는 풍경이다.

“뉴스에서 비폭력·평화시위라고해서 왔어요.”

날이 어두워질수록, 100만명이 운집한 광장은 축제의 장으로 변했다. 여러 가수들의 공연과 시민들의 목소리가 밤새 뒤섞여 울려 퍼졌다. 파도타기 함성과 촛불 파도타기 등은 이날 퍼포먼스의 백미였다.

 촛불 집회 파도타기 동영상

 

| ‘달라져도 참 달라진’ 집회현장 이모저모

2016년 11월 12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펼쳐진 집회는 국내·외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그날 광화문 광장과 서울 광장 인근 지하철역 12곳을 이용한 시민은 154만 7000여명(오후 11시 기준), 이는 지난해 11월 토요일 평균보다 약 80만명 증가한 수치다. 외신들도 앞다퉈 이날의 상황을 알렸다. 영국 BBC방송은 “만약 대통령이 청와대에 있었더라면 이들의 소리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참가자가 다양해진 만큼, 이들의 기호를 맞추려는 시도 역시 다양해졌다. 이날 ‘레미제라블 플래시몹’을 기획·진행했던 신유선(가명·24)씨는 “집회 참여 연령이 어려지면서 ‘지루하다’는 편견을 벗겨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심리적 장벽이 낮고 부담감이 덜한 노래를 함께 부르는 방식으로 기획했는데, 현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호응하고 격려해주는 모습에 큰 감동을 느꼈다”고 했다.

신유선(왼쪽)씨와 플래시몹 이벤트 포스터

이날 집회에 모인 인원은 대한민국 인구의 2%. 워낙 많은 사람들이 집결하다보니, 노점상들에겐 가히 ‘기회의 땅’이기도 했다. 평소 인천에서 꼬치 어묵 판매를 하는 김철민씨(55·인천광역시)는 “좋은 자리를 사수하기 위해 새벽 4시부터 광화문에서 준비했다”며 의욕을 불태웠다. 전 주 집회에 참가했던 우일국(48·서울 노량진)씨는 이날엔 특별히 양초와 종이컵 장사에 나섰다.

우씨는 “당일 천호동 시장에서 물량을 공수했는데, 집회 때문에 물량 자체가 모자라 더 사오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며 입맛을 다셨다. 이재민(48·서울 마포구)씨의 판매 아이템 역시 양초와 종이컵. 원래 소매가는 양초 6개에 2000원이었지만 이날 집회 때문에 2400원에 구입해왔다고 한다. “많이 파셨냐?”는 필자에 말에, 이씨는 “양초는 어둑어둑해질 무렵부터 불티나게 팔린다”고 귀띔했다. 평소 혜화동에서 푸드트럭을 운영하며 커피를 판매하는 소지은(여· 39·서울 서대문)씨는 이날 오후 1시 쯤 광화문 부근에 자리를 잡았다. 소씨는 “늦게 자리를 잡은 탓인지 목이 별로”라며 “지나다니는 사람은 많지만 구매하는 사람이 없다”며 울상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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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광화문 거리엔 양초, 꼬치, 음료 등을 파는 노점상들이 대거 집결했다.

 

| “조곤조곤 얘기해도 들려요” 집회의 이유 있는 변화

이날 집회는 공감과 소통을 주제로 한 이벤트이자 축제에 가까웠다. 집회 당일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촛불집회 관련 해시태그는 50만 건을 훌쩍 넘었고, 포털사이트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단어 역시 ‘촛불집회’였다. 아프리카TV와 유투브 등 개인 방송을 통해서는 10만명이 집회현장을 시청했고, 일본, 싱가폴, 미국 등지에 있는 재외동포들도 고국의 상황을 고스란히 접했다. 인터넷미디어 ‘판도라TV’에서 생중계한 촛불집회 채널은 무려 580만명이 방문했다.

이렇게 많은 시민들이 한 뜻으로 모였지만 큰 물리적 마찰은 없었다. 오히려 시민과 경찰이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촛불집회는 ‘촛불문화제’라는 이름으로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촛불문화제’는 야간시위를 금지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의 제약을 넘어서기 위해 주최 측에서 고안한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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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렇지 않아. 작은 촛불하나, 켜보면 달라지는 게 너무나도 많아. 아무것도 없다고 믿었던 내 주위엔 또 다른 초 하나가 놓여져 있었기에. 불을 밝히니 촛불이 두개가 되고 그 불빛으로 다른 초를 또 찾고 세 개가 되고 네 개가 되고 어둠은 사라져가고.(GOD의 ‘촛불하나’ 中에서)

새벽이 지나면서 시민들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성숙된 시민의식만은 그 자리에 남았다. 다음날 광화문 거리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청소 덕분에 말끔해진 모습이었다.

아이 세 명과 함께 집회를 찾았다는 한 어머님의 말은 이날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자식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고 싶어 나왔어요. 아이들에게 위험하거나 비교육적인 모습도 거의 없어졌다고 들었고요. 우리 아이들이 오늘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의사와 권리를 당당히 표현하는 어른으로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취재·사진·작성: 김영효·안재민·이종진·차문용·표동열(스타트업캠퍼스1기, Social Innovation L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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