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그 자체의 아름다움, 영도 흰여울 문화마을
삶 그 자체의 아름다움, 영도 흰여울 문화마을
2016.11.25 17:38 by 이한나

당연한 얘기지만, 부산은 바다의 도시다. 그런 부산에서도 바다와 유독 밀접한 지역이 있으니, 바로 ‘영도구’다. 이름처럼 '영도(影島)'는 섬이다. 대교를 건너야 들어갈 수 있고, 오륙도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태종대가 유명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도는 필자가 유년기를 오래 보냈던 곳이기도 하다. 마음의 고향 같은 동네랄까.

IMG_3676

내가 살던 곳은 '동삼동'이란 지역이다. 패총이 발견된 곳이라고 교과서에 종종 등장하기도 했었다. 가끔 ‘육지’로 나가기 위해 버스에 앉아 바다가 바로 보이는 영선동을 지날 때마다 ‘참 예쁜 거리’라고 생각했었다. ‘조금 더 크면 저길 혼자 걸어봐야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필자만 그랬던 건 아니었나보다. 몇 년 전부터 이곳은 ‘흰여울 문화마을’이라 불리며 관광 명소이자 인기 출사 장소로 인기를 얻고 있으니 말이다. 무려 <변호인>과 <범죄와의 전쟁>을 찍었던 영화 촬영지이자 MBC <무한도전>에도 등장한 장소다.

어릴 적에 걸으리라 다짐했던 그 길을 제대로 걷기 위해 남포동에서 6번 버스를 타고 흰여울 문화마을 정류장에 내렸다. 찾기 어려우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곳곳에 놓인 친절한 표지판에 안심이 됐다. 정류장에서 내리는 방향을 기준으로 오른쪽 길이 산책 코스의 시작이다. 흰여울길을 걷는 내내 여행자를 배려하는 갖가지 표지판과 지도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저 마음 놓고 걸으며 이 시간을 음미하면 되는 것이다.

IMG_3743

 

IMG_3742

흰여울길 산책은 맏머리계단에서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이름이 맏머리계단인가보다. 이 계단을 내려가면 곧장 갈맷길의 한 코스인 ‘절영해안산책로'로 이어진다. 내려가서 해안산책로를 즐긴 후 흰여울길의 반대편 끝에서 다시 올라와도 문제될 것이 없다. 나는 맏머리계단을 남겨두고 흰여울길을 먼저 만나는 방법을 택했다.

맏머리계단이 보이는 곳에 서면 바다의 오른쪽으로 웅장하게 서 있는 남항대교도 함께 볼 수 있다. 최근에 지어진 남항대교는 부산의 남항(南港)과 영도를 한 번에 이어주는 긴 다리다. 특이한 것은 다리에 너비 3m의 산책로를 설치하여 행인들이 오가며 남항 일대의 경관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도록 한 점이다. 송도 해수욕장에서도 남항대교는 무척 잘 보이는데, 그 반대편에서 바라보는 다리의 모습도 참 아름다웠다.

IMG_3680

흰여울이라, 그러고 보니 이름이 참 예쁘다. 봉래산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바다로 빠르게 굽이치는 모습이 마치 흰 눈이 내리는 것 같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란다. 이름에서 느껴지는 소박한 정서는 이 마을 전체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맏머리계단, 무지개골목, 도돌이계단… 단아한 한글의 아름다움을 새삼 느끼게 되는 이름들이다.

IMG_3686

길은 사람들이 실제로 살고 있는 집을 쉴 새 없이 잇는다. 왼편에는 집들이 골목을 형성하며 복잡하게 엮여 있고, 오른편에는 그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탁 트인 부산 바다가 있다. 영도의 바다는 해수욕장의 친숙함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과 약간의 위압감, 그리고 여기저기 떠있는 큰 선박들이 지금 ‘해양도시’ 부산에 있음을 알려준다.

IMG_3698 보정

이런 풍경을 매일 보며 사시는 분들이 부럽기도 하지만, 그것이 삶이 되면 그다지 낭만적이지만은 않을 것 같다. 흰여울 문화마을처럼 관광지가 되어버린 주택가라면 더더욱 그러할 터. 그래서 최대한 조용히, 조심히 걷기 위해 노력했다. 다행스럽게도 필자가 갔던 날은 평일이라 그런지 평화로운 침묵이 이어졌다. 그 편이 산책하는 사람들과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에게 더 좋을 것이다.

IMG_2906

굽이굽이 이어진 길을 걷다 보면 길 한가운데에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작은 카페가 하나 있다. ‘흰여울점빵’. 이름도 재미있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 바다를 바라보며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찬 음료는 ‘찬 거’, 따뜻한 음료는 ‘뜨신 거’라고 쓰인 메뉴판이 무척 유머러스했다. 착한 가격에(2~3000원 대) 좋은 경관을 보며 지친 다리를 쉬일 수 있었다.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찾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IMG_3700 보정

흰여울 문화마을은 온갖 벽에 벽화들이 가득한 다른 문화마을들에 비해 무척 수수한 편이다. 형형색색의 그림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가장 마음을 잡아끄는 마을인 이유는, 삶을 미화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는 이 마을만의 독특한 소통방식 때문일 테다. 현관 앞 빨랫줄에 빨랫감들이 사이좋게 마르고 있고, 장을 봐 오셨는지 두 손 가득 무언가를 들고 집으로 향하시는 아주머니의 모습 속에 진짜 반짝거리는 아름다움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여기 와서야 깨닫게 된다.

길의 중간지점에 관광 안내소가 있다. 계단을 올라가니 안내자 분들께서 친절한 웃음으로 반겨주신다. 여기까지 오는 내내 벽에 붙어있는 지도를 많이 봤지만, 그래도 기념으로 지도를 한 장 챙겨본다. 내부에선 곧 완성될 그림책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이 건물은 예전에 가정집이었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방이었던 곳, 화장실이었던 곳, 주방이었던 곳… 이젠 모두 관광객들의 차지가 되었다.

IMG_2909

 

IMG_3721

이 부근에서 영화 <변호인>이 촬영되었다. 벽에 쓰인 영화 속 대사들이 낯설지 않다. 영화 속 변호사는 고문으로 거짓 자백을 해야 했던 한 학생의 변호를 맡으며 생의 극적 변화를 경험한다. 장면들이 생생히 살아나는 촬영지에 서있으니 그 때 당시의 암울했던 시대상과 지금이 오버랩 된다. 우리는 그때보다 더 나은 세상에 살고 있을까. 얼마나 더 나아졌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IMG_3719

 

IMG_3723

가파른 오르막과 함께 예쁘게 색칠된 공중화장실이 보인다면 길의 끝에 가까웠다는 뜻이다. 흰여울길의 끝에는 이송도 전망대가 있다.

IMG_2910

전망대에선 날씨가 좋으면 대마도도 보인다고 한다. 설치된 망원경으로 보려고 애를 썼으나 잘 보이진 않았다. 벤치가 놓여 있어 한 템포 쉬어가기 좋다.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도 이 정도 시점에서의 쉼은 필요하다. 갈맷길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무시무시한 계단을 내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IMG_3727 보정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갈맷길(절영해안산책로)은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 강아지를 산책시키시는 분들,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 등 인근 주민들의 쉼터로 유용하게 쓰이고 있었다. 이런 길 근처에 산다면 아마 매일 산책을 할 수 있을 텐데. 이렇게 한 시간 정도의 산책 후, 필자는 다시 영도의 주민이 되고 싶어졌다. 생활 속에서 즐기는 낭만… 하지만 이것이 가능할까? 역시 쉽진 않을 것 같다.

IMG_3739

 

TIPS!

영도와 가장 가까운 번화가는 남포동이다. 또한 남포동은 부산역과 무척 가깝다. 그러므로 타지역에서 방문하는 사람들의 경우 두 곳을 한꺼번에 들르는 것이 좋다. 이 지역은 해운대, 광안리와는 매우 멀다. 버스는 부산역이나 남포동에서 508번을 타고 '흰여울 문화마을' 정류소에 내리면 된다. 참고로 필자는 남포동에서 6번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정류소는 동일하다.맏머리계단에서 큰길쪽으로 나가는 방면에 '블루즈 홀릭'이라는 카페가 있다. 바다가 보이는 방면이라 역시 경치를 감상하며 차 한잔 하기 좋을 듯. 중간지점 즈음 '더 페이지'라는 게스트하우스도 하나 있는데, 조금 좁지만 하루 정도 자기에는 무리가 없으며 창 밖 풍경이 너무나 예쁘다고.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 (http://thepagegh.fortour.kr/) 참조. 


The First 추천 콘텐츠 더보기
  • ‘성장의 상징, 상장’…스타트업들의 도전사는 계속된다
    ‘성장의 상징, 상장’…스타트업들의 도전사는 계속된다

    자본과 인력, 인지도 부족으로 애를 먹는 스타트업에게 기업공개는 가장 확실한 대안이다. 단숨에 대규모 자본과 주목도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거래 파트너와 고객은 물론, 내부 이...

  •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이제 헤어 케어도 브랜딩이다!

  •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현시점에서 가장 기대되는 스타트업 30개 사는 어디일까?

  •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초개인화의 기치를 내건 스타트업들이 존재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관광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틈새에 대한 혁신적인 시도 돋보였다!

  •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기업의 공간, 자산 관리를 디지털 전환시킬 창업팀!

  •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의 등장!

  •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유망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 맞춤형으로 지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