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 뺨치는 치료실 전쟁!
대치동 뺨치는 치료실 전쟁!
대치동 뺨치는 치료실 전쟁!
2016.11.23 18:08 by 류승연

사교육의 메카로 불리는 대치동 학원가. 아이를 저명한 학원에 입학시키기 위한 경쟁이 살벌할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주변을 통해 이런저런 얘기를 전해 듣는다. 대치동 엄마들은 어쩌고저쩌고…

그런 얘기를 들으면 나는 코웃음을 친다. 거드름이라도 피울 듯 몸을 뒤로 빼고 한쪽 팔을 의자에 걸친 채 느릿한 어조로 말을 한다.

“대치동 엄마들? 흥!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냐. 대치동 엄마들보다 더한 입시(?)경쟁에 시달리는 게 바로 우리 장애인 엄마들이랑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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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원하는 치료를 받기 위한 장애 아이들의 치료실 경쟁은 그야말로 전쟁을 방불케 한다. 대치동 학원가 입시경쟁이 아무리 치열한들 300대 1, 500대 1의 경쟁률만 하겠는가? 기본적으로 2년은 대기해야 입학 가능한 학원이 있으면 손 한 번 들어보시라!

서울 내 SKY 대학이나 미국 MBA 유학을 보내려는 게 아니다. 혼자 밥 먹고 옷 입고 도구를 사용하는 법, 말하는 법을 배우기 위한 치료실인데 경쟁이 너무나 치열하다.

그 최전방에 서 있는 게 작업치료다. 대다수의 장애 아이들이 받아야 할 필수코스이면서도 가장 문턱이 높다. 작업치료란 일상생활의 활동을 돕기 위한 치료다. 우리 아들의 경우를 예로 들면 손가락 소근육이 발달하지 못해 숟가락이나 연필도 제대로 쥐지 못하는데 그런 것을 놀이를 통해 훈련시키는 과목이다.

장애 아이들 치료 기관은 병원‧복지관이나 정부지원 센터, 사설 치료실 등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세 곳 모두에서 작업치료를 받을 수 있지만 엄마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은 병원이다. 의료보험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30분짜리 수업 1회당 작업치료 치료비가 병원은 6천 원 남짓, 복지관은 3만 원 안팎, 사설 치료실은 4~9만 원이다. 치료는 1주일에 한 번씩만 받는 게 아니라 연속성을 위해 같은 과목을 적어도 일주일에 2~3회 이상은 받아야 한다.

병원에서 받는 작업치료가 더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만 감각통합 치료란 것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감각통합은 작업치료의 한 과정인데, 배에서 일어나는 소화불량 같은 게 뇌에서 일어나 감각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장애아들의 감각훈련을 도와주는 치료라고 생각하면 된다. 보통의 사람들은 평범한 아동기를 거치며 자연스럽게 감각이 통합되지만, 우리 아들처럼 감각에 문제를 겪는 아이들은 그게 안 된단다. 감각이 따로 노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안 겪어본 나로서는 상상도 안 되는 일이다. 우리 아들이 머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제자리 뛰기를 하는 것도 자신에게 감각을 주려는 ‘상동행동’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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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감각통합은 특수 기구들이 맞춤 설계된 공간에서 받아야 하는데 일반적인 사설 치료실이나 복지관에는 감각통합실이 마련된 곳이 거의 없다. 해당 장비들을 유치하기 위한 초기 투자비가 비싸기 때문에 일반적인 수준의 작업치료만 진행하는 것이다. 

이렇듯 희소성이 최대 무기인 감각통합 치료를 받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2년 이상의 기다림을 견뎌내야 한다. 우리 아들은 3살 때 A병원에 감각통합 신청서를 넣은 뒤 2년간 대기시간을 거쳐 5살에야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러 환자를 받아야 하는 병원 사정상 외래환자의 치료 기간을 2년으로 못 박은 규정 때문에 7살이 되자 퇴소. 치료가 끝난 날부터 다시 신청서를 넣고 지금 2년째 기다리고 있다. 조금 전 병원에 전화해 문의하니 2년을 기다렸는데도 아직도 대기 순번이 199번이란다. 앞으로도 1~2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급하면 급한 대로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간혹 정신과 영역에서 감각통합 치료를 지원하는 병원이 있는데 그런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 대기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다. 가뿐히 몇 달만 기다리면 된다.

대신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은 치료를 받는데도 재활과 영역에선 의료보험 적용을 받던 감각통합이 정신과 영역에선 받을 수 없어 1회 치료비로 4만 원을 내야 한다. 일주일에 3번씩 한 달 12번. 계산해 보라. 보통 아이들의 한 과목 학원비보다 훠~얼씬 비싸다.

치료실 경쟁은 작업치료 부문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전 영역에 걸쳐 고루 나타난다.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작업치료가 유난할 뿐 몇 달씩의 대기시간은 언어, 놀이, 심리, 인지, 재활, 음악 치료 등 모든 영역에서 필수적이다.

엄마아빠에게 돈 쓰는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었던 우리 아들은 돌이 갓 지난 두 살부터 치료실을 전전하기 시작했다.

당시는 장애가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고 단순히 늦은 아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다만 느려도 너무 느렸다. 돌이 될 때까지 뒤집기도 못했다. 머리가 큰 게 문제였다.

언젠가 TV에서 대두 카페 회원들이 나온 걸 본 적이 있는데 가입 조건이 머리 둘레 60cm 이상이었다. 우리 아들은 돌 즈음에 이미 머리 둘레가 57cm였다. 10kg 남짓한 작은 몸뚱이에 큰 머리를 달고 있으니 신체 움직임이 느릴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아~ 머리가 커서 장애가 왔나 봐요”. “노노. 아니예요. 머리가 큰 건 그냥 집안 유전이에요”.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표정이란.

어쨌든 큰 머리가 무거워 자신의 힘으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던 아들은 생후 1년부터 대학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2년이 지난 후 아이가 ‘벽 잡고 걷기’까지 성공하자 치료실에서는 퇴소를 권했다. 다음 단계인 ‘계단 오르기’로 넘어가야 하는데 아이가 계단을 오를 마음이 전혀 없어서 치료가 답보상태란다.

마침 그때쯤 아들이 정식으로 장애 판정을 받게 되었다. 본격적인 치료실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2년 동안 재활치료와 작업치료를 받던 대학병원과는 작별을 고했다. 집에서 가까운 곳부터 치료실을 뒤지기 시작했다.

가장 중점을 둔 건 언어치료였다. 네 살이 되어도 옹알이만 했기 때문에 마음이 조급했다. ‘어눌하더라도 말을 해야 사람 구실을 하고 살지’란 생각에 A병원과 사설 치료실 두 곳에서 언어치료를 병행하고 복지관에는 대기 신청을 걸어 놓았다.

사설 치료실은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바우처 카드를 사용했다. 나라에서는 발달지연이 있는 아동들에게 한 달 8번의 치료를 소득수준에 따라 4~8만 원만 내면 받을 수 있게 바우처 카드를 발급해준다. 치료 횟수를 늘리고 싶으면 나머지 수업에 대해 1회당 4만 원의 수업료를 자기 부담으로 더 내면 된다.

A병원에선 언어치료조차도 1년 이상을 대기한 다음에 간신히 받게 됐는데 여기에서는 한 번 치료에 4만 원씩 한 달 32만 원을 고스란히 냈다.

언어치료를 받는 시간은 1년, 2년, 3년 늘어 가는데 아들은 뜻 모를 외계어만 계속해서 중얼중얼. 사설 치료실에 대한 불만이 쌓여가던 중 복지관에서 연락이 왔다. 순서가 되었다고. 옳다구나 하고 옮겼다. 이젠 복지관에서 두 번, 병원에서 두 번. 그런데 복지관에 왔더니 담당 선생님이 너무나 잘 가르친다.

일주일에 두 번 받는 언어치료를 세 번으로 늘리고 싶어 2년 전부터 졸라왔지만, 아직도 그대로다. 대기 아동들이 많아 일주일에 한 타임 더 늘리는 게 지금까지도 성사되지 않은 것이다.

일일이 다 나열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 아들이 받아온 모든 치료가 다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작업치료와 언어치료 외에 재활, 심리, 놀이, 음악 치료 등도 병행했는데 그때마다 몇 달간의 기다림은 필수코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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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일이 생길까? 이유는 뻔하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늦은 결혼, 난임, 다태아 임신, 조산, 환경적 요인 등 시대적 흐름에 맞춰 장애 아동의 수 역시 나날이 늘어가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특수교육 부문에 대한 인식도, 기반도 턱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아이들은 많은데 치료받을 공간은 한정돼 있으니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장애 아이들이 대치동 학원가 뺨치는 입학 경쟁에 골머리를 앓게 된 것이다. 

언제쯤이면 대기하는 시간 없이 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이 적기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을까? 언제쯤이면 작업치료만이 아닌 모든 재활치료에 의료보험 혜택이 적용될까? 10년 뒤에는 가능할까? 아니 20년 뒤에라도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확신은 없지만, 그런 대한민국도 언젠가는 오지 않겠냐며 기대는 해본다.

/사진:류승연

동네 바보 형 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장애인 월드’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에피소드별로 전합니다. 모르면 오해지만, 알면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그런 비장애인들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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