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영화제 ‘피움’의 여덟 번째 질주
여성인권영화제 ‘피움’의 여덟 번째 질주
여성인권영화제 ‘피움’의 여덟 번째 질주
2014.09.24 09:30 by 권보람
http://youtu.be/GrkDEtIMiys

더 이상 한 걸음도 뗄 수 없을 것만 같은 순간이 있다. 그 때 문득 뒤를 돌아보면 알 수 있는 것 하나, 우리는 분명 출발점으로부터 어떤 거리를 지나왔다는 것이다. 세상은 보잘 것 없는 족적에 박수를 쳐주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나온 시간과 거리에 상관없이 우리는 그 움직임을 ‘질주’라 부른다.

제8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FIWOM)’이 ‘질주’를 테마로 25일부터 28일까지 아리랑시네미디어센터에서 개최된다. 개막을 사흘 앞둔 오후, 피움의 송란희 수석 프로그래머를 만나 지난 8년간 쉼 없이 달려온 피움의 질주를 되짚었다.

  | 인권, ‘영화’로 감수성을 두드리다  

피움을 주최하는 한국여성의전화는1983년 설립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여성인권단체 중 하나다. 오랜 시간 성평등과 폭력 추방을 위해 노력해온 만큼 이들의 방식은 ‘안 되는 것 빼고 다 해 봤다’고 말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결과가 언제나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어떻게 하면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2010년 무렵부터 방법론에 대한 내부 논의 끝에 이들은 영화라는 새로운 매체를 선택하게 됐다.

 



 

“길에서 인권상담이나 폭력 추방에 대한 홍보물을 나눠주면 저 멀리서부터 인파가 갈라져요. 폭력사례 사진 전시회를 열면 ‘나는 저 정도로 심각하지 않은데’라면서 자기 피해를 축소하거나 피해자를 대상화하는 역효과가 나기도 하고요. 외부 강의는 시간과 인력 문제로 전달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어요. 하지만 영화는 달랐습니다. 매체 특성상 각자의 관점과 감정으로 이슈를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었죠.”

송 프로그래머는 “몇 시간의 인권교육보다 한 편의 영화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마음으로 영화제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개인적 경험을 보편적 감정으로 담아내는 영화 특유의 문법이 사회문제에 대한 개개인의 감수성을 키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피움에는 상영작을 텍스트로 인권 전문가와 대화해 보는 ‘피움톡톡’을 비롯해 서명운동·퀴즈 프로그램 등 관객의 능동적 참여를 유도하는 여러 부대행사가 마련돼 있다. 남의 일처럼 느껴지는 인권 문제를 내 주변의 일로 만드는 피움만의 노하우다.

이들의 의도에 맞게 매년 점점 더 많은 관객이 영화제를 찾고 있다. 끼니도 거르고 하루종일 객석을 지키는 60대 여성, 알음알음 소문을 듣고 찾아온 외국인, 크레딧이 올라간 후 남몰래 눈물을 훔치는 넥타이 부대까지. 해를 더할수록 두텁게 쌓여가는 관객은 피움의 지난 8년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 준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상영 횟수를 6회나 늘였음에도 예매 시작 첫 주에 일부 영화가 매진되는 등 이미 70% 정도의 좌석이 채워진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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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문제에 대한 젊은이들의 관심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불평등은 과거의 이슈’라는 생각 때문이죠. 그런데 저희 영화제 관객의 80%가 2030 세대예요. 인권문제에 방관자적 자세를 취하던 분들이 영화를 통해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는 모습을 볼 때면 정말 뿌듯합니다. 저희 영화제가 본래의 목적을 잘 수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피움은 여성인권영화제를 표방하고 있지만 주민번호 뒷자리가 2, 4번인 ‘여성’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올해의 테마 ‘질주’는, 힘들었지만 삶을 멈추지 않았던 이들에 대한 헌정이다. 여성뿐만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권 문제에 폭넓은 관심과 애정을 갖다는 얘기다.  1회부터 7회까지 꾸준히 군대 내 폭력을 다뤄온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일부 관객들은 ‘여성인권영화제에서 왜 소수자 이슈를 다룰까’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고 나아가 구조적 문제로 번지곤 하지요. 피움을 찾는 관객 분들이 여성인권을 이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 위로가 되는 영화제 ‘피움’ 제대로 보기  

피움의 상영작은 8명의 프로그래머를 비롯해 약 10여 명의 기획팀이 직접 선정한다. 인권과 여성에 대한 이슈를 다루다보니 영어가 통하지 않는 소수어 국가 작품을 구하려 지인을 총동원한 ‘통역사 찾기 대작전’을 벌이기도 하고, 우편물 취급이 원활하지 않은 분쟁국가의 작품을 애타게 기다리는 등 에피소드가 많다. 작품 수급이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영화, 강한 색채를 갖고 있는 영화를 발굴함으로서 관객을 시선을 넓히고자 한다.

 

피움 줌아웃: 보통의 도전 부문 '할머니 배구단' 스틸컷


 

피움의 상영작은 폭력과 차별의 현실을 보여주는 ‘여전히 아무도 모른다(STILL NOBODY KNOWS)’와 이에 맞서는 움직임을 담은 ‘일상과 투쟁의 나날(DAYS OF ORDINARY AND STRUGGLE)’, 다른 이슈와의 연대와 대안을 담은 ‘그대 마음과 만나 피움(MEETING WITH YOUR HEART, FIWOM)' 총 세 가지 섹션으로 나뉜다.

보편적 인권문제를 개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 바라보는 ’피움 줌인‘과, 미시적 문제를 한 발자국 떨어져 구조적 시선에서 인식하도록 돕는 ’피움 줌아웃‘도 주목할 만하다. 특히 올해의 피움 줌인과 줌아웃은 각각 ’이어달리기‘와 ’보통의 도전‘이라는 소제목을 통해 세대를 잇는 경험과 개인의 성취로 인한 변화를 담을 예정이다.

 

개막작 '가볍게, 더 높이' 스틸컷


 

송 프로그래머가 ‘내가 정말 사랑하는 여자’라고 소개한 개막작 ‘가볍게, 더 높이(Light Fly, Fly High, 감독 베아테 호프세트·수잔 외스티고르)’는 인도 소녀 뚜라시가 신분의 벽을 깨고 자신의 꿈인 권투선수로의 삶을 위해 전진하는 모습을 담았다. 개막식에 이어 같은 날 오후 7시 30분, 27일 오전 10시 30분에 3관에서 상영된다.

“피움 영화제의 라인업은 대부분 다큐멘터리로서 실존 인물을 다루고 있습니다.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뭔가 해내는 모습이 누구에게나 큰 위로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아! 피움 줌아웃 파트의 ‘할머니 배구단(The Optimists, 감독 건힐드 웨스타겐 매그너)’는 조금 색다른 좌절감을 줄지도 모르겠네요. 98세 할머니가 비키니를 입고 비치발리볼을 하는 모습은 판타지로 보일만큼 멋지거든요.”

 

경쟁부문 피움 초이스에 선정된 '여자도둑(감독 신유정)' 스틸컷


 

매년 성별, 나이, 국적을 불문하고 여성인권과 사회구조적 문제를 담은 작품을 모집 중인 피움을 올해 역시 100여 편의 공모작 중 ‘반짝이는 박수소리(Glittering Hands, 감독 이길보라)’를 포함한 12편의 작품을 ‘피움초이스’로 선정했다. 역대 공모당선작 중 가장 많은 숫자다.

“피움의 소원 중 하나는 보다 많은 작품에게 관객과 만날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피움초이스’가 확대되면 당선 감독들의 장차 작품 활동에도 자신감이나 원동력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색다른 시선을 가진 작품들이 많다보니 벌써부터 관객 반응이 궁금해지네요. GV(Guest Visit·관객과의 대화)도 힘닿는 대로 준비했으니 관람 후 감독과의 생생한 대화도 마음껏 나눠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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