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따뜻한 음식마저 괴롭고
나는 따뜻한 음식마저 괴롭고
2016.12.06 13:58 by 오휘명
(사진:lchumpitaz/shutterstock.com)

꾸역꾸역 돌아다니고, 꾸역꾸역 살아낸다는 것은 참 괴롭다.

글쎄, 괴롭다는 감각을 처음 느끼게 된 때가 언제였을까, 그저께쯤 통조림의 날카로운 부분을 핥다가 혀를 다쳤을 때? 어느 가을날 술에 취한 남자에게 배를 걷어차였을 때? 아니면 아스팔트 위에서 지옥 같은 여름 날씨를 처음 겪었던 날? 그것도 아니면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였을까. 나는 나의 부모를 모른다. 아마 나를 낳고는 또다시 어딘가를 떠돌기 시작했을지도, 이미 죽어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괴롭다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편해지고 싶다’일 것이다. 편해지는 방법은 간단하다. 하루아침에 사랑스러운 겉모습을 지니게 돼서, 어떤 인간의 집에 세 들어 살게 되는 것, 그렇지만 이건 가능성이 희박하다. 여기, 조금 더 간편하면서도 가능성이 높은 방법이 있다. 삶을 포기하는 것.

그렇지만 나는 똑똑하지도 않은 데다가 겁도 많아서, 오늘도 이렇게 하루라도 살아보겠다고 길거리를 떠돌고 있는 것이다. 나의 턱은 날이 추워질수록 달그락거림이 더 심해지곤 했는데, 오늘은 시도 때도 없이 턱이 덜덜 떨리는 걸 보니 제법 추운 하루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국밥집의 뒤편에는 매일 세 시쯤 음식물 쓰레기가 흩뿌려진다. 그 집 사장에겐 뭐든지 대충대충 하려는 습성이 있는 건지, 하루도 깔끔하게 쓰레기를 처리하는 법이 없었다. 물론, 길거리의 동물들은 그의 그러한 성격 덕분에 조금의 음식이나마 주워 먹을 수가 있었다. 우리는 ‘개’라는 종족의 특성상 짠맛을 잘 느끼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짠맛이 느껴지는 것을 보면 국밥집의 쓰레기들은 여간 짠 편이 아닌 것 같았다. 언젠가 십 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살아남은, 골목의 터줏대감 황구 선생님이 하셨던 말을 기억한다. 오래 살고 싶으면 최대한 짠 것을 피하거라.

그래, 오래 사는 것도 누군가에겐 염원일 수 있겠다. 그렇지만 지금이 어디 짠 밥 안 짠 밥 가릴 때인가. 겨울이면 길거리의 여러 동물이 죽곤 했었고, 나는 괴로움에 온몸을 떨면서도, 삶에 대해 온갖 환멸을 느끼면서도 조금이라도 더 살겠다고 이렇게 짠 음식들을 핥아대고 있는 것이다.

*

물론 길거리의 개들에게도 즐거운 시간은 분명 있다. 이를테면 늘 봐오던 나뭇잎과 돌멩이, 쓰레기가 아닌 난생처음 보는 흥미로운 물건을 가지고 놀 때, 그럴 때면 혹여 그 물건의 주인이 나타나진 않을까 온통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지만, 그럼에도 참을 수 없이 그것을 갖고 노는 게 재미있었다. 며칠 전엔 건드릴 때마다 ‘삑삑’ 소리가 나는 작고 푸른 공을 주웠었는데, 나는 실제로는 빨간 건지 정말 녹색인 건지 모를 그것을 온종일 물고, 발로 차고 다니느라 지루함을 잊었었다.

그리고 어린 인간과 함께 뛰어놀 때, 우리는 우리조차 어린 존재가 된 것처럼 신이 나곤 했다. 그 천진한 손길과 편안한 눈높이, 꼬물거리는 작은 손에 쥐고 있던 먹을 것을 나눠주는 따뜻함. 나는 그럴 때면 팔자라도 펴진 듯, 그래서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집 강아지라도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물론, 언젠간 아이의 부모가 아이들을 찾아왔고,

“저런 거 만지지 마, 세균이 얼마나 많은데.”

라는 식으로 우리를 쏘아봤지만.

어린 인간에게서는 오직 순수한 마음만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만일 그들에게서 다른 의도가 보였다거나, 그들이 나를 해할 만큼 위협적인 자세를 취했다면 우리는 그들 역시 경계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린이들의 눈에서는 우리를 향한 흥미, 우리를 걱정하는 다정함, 아주 약간의 두려움만 찾아볼 수 있었다. 거리 위의 다 큰 어른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

그나마 바람이 적게 맴도는 골목에서 눈을 떴을 때, 내 턱은 유난히 덜그럭거리고 있었다. 겨울이 점점 짙어진다는 뜻이겠지.

옆 동네를 두어 바퀴쯤 돌면 꼭 보이곤 했던 녀석이 며칠 전부터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가 같은 유기견으로서 무탈하길 바라는 마음 반, 끔찍한 일을 당했으리라고 체념하는 마음 반으로 오늘도 하루를 보내고 있다. 덩치가 큰 그와 함께라면 걷어차일 일도 없었고, 먹이를 구하지 못했어도 길동무가 함께여서 배고프지 않았다.

나는 혹시라도 그가 죽었다면, 그래서 어떤 미화원에 의해 치워지거나 묻어지거나, 불태워졌다면, 그래서 그가 저세상으로 떠나갔다면, 다음 생에는 꼭 사람과 함께 사는 개가 됐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다. 개의 신이시여, 아니, 인간의 신이셔도 좋습니다. 부디 내 친구를 인간의 곁에 두소서. 그래서 일생을 추위와 배고픔에 떨 걱정 없이 보내게 해주소서.

기도를 함과 동시에 온갖 불길한 생각들이 나를 덮쳐오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이 주변의 건물들이니 공원들이 과하게 깔끔해지는 중이었다. 언젠가 들었던 괴담을 기억한다, 도시가 유난히 깨끗해지는 시기를 조심하라는.

도시가 깨끗하게 탈바꿈한다는 것은, 그 도시가 ‘인간들이 살기에’ 더 좋아지는 곳이 된다는 뜻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길거리의 짐승들이 살기에는 힘들어진다는 말이었다. 인간들의 입장에서 거리의 미관을 해치는 우리들은 주요 정리 대상이었고, 거리를 정리하라는 임무를 받은 이들의 눈에 띄기라도 하는 날이면, 우리는 ‘보호소’라는 곳으로 끌려간다고 했다. ‘보호소’라는 말에는 어딘지 모르게 따뜻하고 마음이 놓이는 느낌이 있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았다. 보호소라는 곳에서 무사히 열흘을 넘기는 개는 없었고, 어떤 주사를 맞아서 강제로 죽음을 맞는다느니,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진다느니 하는 흉흉한 말들만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옆 동네의 녀석이 부디 보호소라는 곳에 갇히지 않았길 빌었다. 거긴 너를 보호해주지 않는다고, 친구야. 뉘엿뉘엿 해가 지는 골목에서 그렇게 미련을 섞어 길게 울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누군가가 뭐라 뭐라 소리를 질렀다. 아마 시끄럽다고, 그만 좀 울라는 뜻이었을까. 보호소 쪽에서 나온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하루라도 더 살아보겠다고, 비겁하도록 입을 다물었다. 추웠다.

*

한 달 중에 두 번쯤, 국밥집이 영업하지 않는 날이 있었다. 정확히 그 날짜를 파악하고 있진 않았는데, 아뿔싸, 오늘이 그 날이었나 보다. 추운 날씨 탓에 더더욱 배고파진 나는 온종일 문을 열지 않을 국밥집의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차도 건너편의 한 가게에서 내 쪽으로 어른 여자 하나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손에는 작은 그릇 같은 것을 들고 있었다.

“배가 고파 보이네. 딱해라. 이 집 사장님이 먹이를 주셨었나 보지? 자, 오늘은 이거라도 먹어. 입에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여자는 그렇게 말하더니, 손에 들고 있던 그릇을 내 앞에 내려놓았다. 그릇에는 잘 씻긴 돼지고기와 익힌 콩 같은 것들이 들어있었다. 나는 금방이라도 그것들을 삼키고 싶었지만, 앞에 다 자란 인간을 두고서 그토록 마음 놓고 그것들을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빨을 보이며 무서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여자는 그것에도 아랑곳없이 계속해서 활짝 웃어 보이는 것이었다.

“너, 내가 낯설어서 그러는구나. 알았어. 안 보이는 곳에 있을게. 먹고 가렴.”

그녀는 그렇게 말하더니 그릇을 두고 어딘가로 떠나갔다. 나는 그제야 허겁지겁 음식들을 해치웠다.

텅 비워진 그릇 앞에 앉아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 보니, 나는 문득 나의 처지가 참 초라하다고 생각했다. 꼴에 먹이를 준 것이 또 고맙기는 고맙다고, 한 번이라도 고마운 표정을 지어 보이겠다고 이곳에 버티고 있는 것이다. 조금 전에는 그렇게나 사나운 표정을 지었으면서.

음식은 정성스럽게 익히고 씻었는지, 하나같이 씹기에도 좋고 짜지 않았다. 오랜만에 배 속이 든든하면서도 편안했다. 그렇지만 나는 또다시 ‘괴로움’을 느꼈다.

산다는 건 무엇이기에 믿으면 배신당하고 안 믿으면 미안함을 느끼게 되는 걸까. 나는 도대체 어떻게 돼먹은 녀석이기에 순수하고 따뜻한 온정마저 뿌리치려 하는 걸까. 만약 그녀가 정말 좋은 사람이라면, 그녀와 함께 지내고 그녀의 집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도 참 좋을 텐데. 여러 마음들이 들쑥날쑥 속을 뒤집고 있었고, 나는 어느새 턱을 덜덜 떨며 허망한 표정만을 짓고 있었다.

 길 건너 그분들의 사연  세상의 모든 존재들, 나와 나의 주변 ‘것’들이 각자 간직한 마음과 사연. 그 사연들을 손 편지처럼 꾹꾹 눌러 담아 쓴 초단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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