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방 안에 있다면, 주위를 한 번 둘러보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옷가지들도 있고, 옷걸이에 곱게 걸려 농 한 구석에 안착한 옷들도 있을 것이다.
그 안에 가장 값비싼 옷, 추억을 담은 옷, 중요한 날에만 입는 옷도 있다. 의류는 그만큼 상황, 장소, 시간에 구애를 받는다. 단 한 가지만 빼고 말이다.
그 어떤 상황에서든 무난하게 입을 수 있는 옷, 누구나 한 벌쯤 가지고 있는 그 녀석. 맞다. 바로 ‘청바지’다. 기본적으로 캐주얼룩이지만, 최근엔 ‘놈코어룩(Norm core look‧노멀(Normal)’과 ‘하드코어(hardcore)’의 합성어. 평범함을 표방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패션) 등이 유행하면서 다양하게 매치되기도 한다. 심지어 중요한 자리에서도 잘 입으면 “센스있다”는 말까지 듣는 게 바로 청바지다.
청바지 하면 딱 떠오르는 브랜드. ‘리바이스 (Levis)’다. 최초로 청바지를 제작한 브랜드로도 잘 알려져 있다. 독일 출신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1850년대 미국의 골드러시(gold rush‧금이 발견된 곳에 노동자들이 대거 이주한 현상)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했다.
당시 미국의 서부 캘리포니아에서 금 채굴이 성행하였는데, 너무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다 보니 주거지가 문제였다. 집이 부족해 천막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겼고, 자연스럽게 천막촌이 형성됐다.
천막용 천을 팔던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황금기’였다. 리바이도 그중 하나다. 승승장구할 무렵, 큰 거래 하나가 무산되는 일이 생겼다. 갑작스런 계약파기 탓에 한껏 끌어모았던 천막들을 재고가 될 형편에 놓였다.
그 일로 리바이는 큰 좌절을 겪었지만, 무너지지 않고 재기를 노렸다. 의식주 중 주거를 해결해주던 그가 이번엔 의(衣)에 집중한 것. 광부들의 작업은 굉장히 거칠었고, 당연히 그들의 옷은 금방 해지고 망가졌다.
구멍 난 곳을 몇 번이고 꿰매 고쳐 입는 광부들의 모습을 보면서 리바이는 고민했고, 오랜 고민의 결과, 질긴 천막용 천으로 바지를 만들어 팔았다. 이 바지는 광부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금방이라도 망할 위기에 있던 리바이 스트라우스가 금광 채굴자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다는 소문도 그때부터 나왔다.
흔히 청바지를 ‘데님’이라고도 부른다. 왜 그렇게 불리게 됐을까? 시작은 1880년 말부터다. 청바지의 인기가 많아지자 천이 부족한 지경에 이르렀다. 리바이는 프랑스 남부의 님(Niems) 지방에서 직물을 들여왔다. 그래서 불리게 된 게 ‘님 지방의 옷’(Serge de Nimes). 데님이란 명칭의 유래다.
광부들로 시작된 옷, 터프한 남자들의 상징이었던 청바지는 점점 성별을 가리지 않게 됐다. 여성 노동자들도 점차 늘었기 때문이다. 이후 작업복이 아닌 일상복 영역까지 들어왔다. 밑단의 폭은 줄기도 하고 늘기도 하며 유행에 맞춰 지속적으로 사랑받는다.
도서의 ‘베스트&스테디셀러’가 성경이라면, 의류계의 성경은 단연코 청바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