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가 끝나고 난 뒤…
전투가 끝나고 난 뒤…
2016.12.23 14:09 by 곽민수

지난 화에서 람세스2세가 용맹함을 마음껏 뽐냈던 카데쉬 전투에 대한 얘기를 들려드렸죠. 람세스의 이집트와 무와탈리스의 히타이트는 카데쉬 전투 이후에도 서로에 대한 견제 차원에서 몇 차례 더 군사 행동을 감행했습니다. 하지만 변화하는 국제정서는 그 두 강대국이 더 이상 서로를 견제하는데 힘을 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아시리아가 신흥 강대국으로 성장하며 두 나라를 위협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와탈리스의 동생 하투실리스 3세는 이집트의 람세스 2세에게 평화조약을 체결할 것을 제안하게 됩니다. 람세스는 좀 머뭇거리다가 ―아마 시리아 지역 정벌에 대한 미련을 쉽게 버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겠죠― 결국 재위 21년경 히타이트와의 평화 조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이스탄불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 소장 중인 히타이트-이집트 평화 조약문 점토판

조약의 내용은 다양한 기록으로 잘 남아있어서 많은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이집트에서는 카르나크, 라메세움, 아부심벨 등 람세스 2세가 건설에 관여한 신전들의 벽면에서, 히타이트에서는 수도 하투샤에서 발굴된 수많은 점토판에서 조약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양측의 이야기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예컨대 이집트 측에서는 히타이트에서 먼저 평화조약을 제안하였다고 하지만, 히타이트에서는 이집트가 먼저 손을 자신들에게 건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차이는 어찌 보면 참 당연한 일이겠습니다.

어찌됐든 두 국가는 평화조약을 체결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양국 사이에 많은 서신과 선물들이 교환되었는데, 그 가운데 히타이트 공주가 람세스 2세에게 시집을 오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집트 쪽에 기록된 이름으로 ‘마아트-호르-네페루-라’라는 이름을 갖고 있던 이 공주는 하투실리스 3세의 딸이자, 람세스와 카데쉬에서 자웅을 겨루었던 무와탈리스 2세의 조카였습니다. 그렇지만 역으로 이집트 공주가 히타이트로 시집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집트에서는 공주를 외국으로 시집보내는 일이 전 역사를 통틀어서 한번도 일어난 적이 없습니다. 외국 공주가 이집트 왕가의 며느리로 들어온 것을 일종의 정치적 승리로 여겼었는지, 아니면 이미 중년에 접어든 람세스에게 젊은 공주가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보였기 때문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람세스 2세는 이집트 곳곳에 히타이트 공주와의 결혼에 대한 기념비를 꽤 많이 세웠습니다. 우리가 지금 찾아가고 있는 아부심벨 한 구석에도 이 결혼을 기념하는 석비 모양의 부조가 새겨져 있습니다.

타니스에 있는 람세스 2세 거상 측면에 새겨져 있는 마아트-호르-네페루-라. 팔 밑에 새겨져 있는 카르투쉬 안에 공주의 이름이 쓰여져 있습니다. (출처: Wikimedia)
결혼 석비의 부조. 하투실리스 3세(파란색 상자)와 마아트호르네페루라(빨간색 상자는 그녀의 이름)가 신들(초록색 상자) 사이에 앉아 있는 람세스 2세(주황색 상자)를 알현하는 장면입니다.
람세스 2세의 목상.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드디어 아부심벨

꿈속에서 람세스를 만나는 사이, 어느덧 시간이 흘러 눈가를 간지럽히는 새벽 햇살이 차창 사이로 살며시 들어옵니다. 잠이 덜 깬 눈을 비비고 다시금 창밖을 바라보니 이번에는 새벽 태양이 우리를 반겨줍니다. 몇 시간만 지나면 저 태양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덩이로 변하여 정면으로 바라볼 수조차 없게 되어버릴 테니, 지금이야말로 사막의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아프리카의 사막 깊숙한 곳에서 대면하는 태양신 '라'의 모습은 무척 감동적입니다. 아마도 수천 년 전에 남쪽으로 향하던 원정대는 매일 아침 이렇게 태양을 대면하며 태양신에게 축복을 기원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잠깐 짬을 내어 태양신의 축복을 기원해봅시다. 물론 종교적으로 심각해질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여행 중이고, 이곳은 예로부터 태양신의 땅이었던 이집트니까요.

태양신 라-호라크티의 축복을 받는 타페르트. 22왕조 시대.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갑자기 버스가 멈추어섭니다. 이제는 너무나 지루해져 더 이상 바라보고 싶지 않은 풍경의 끝에서 우리는 느닷없이 솟아오른 거대한 바위산 하나를 만나게 됩니다. 아무것도 없을 것만 같은 이 척박한 땅에서 우뚝 솟아있는 바위산의 모습이 참 인상적입니다. 저 인공의 바위산을 돌아가기만 하면 드디어 람세스의 신전에 도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전으로 향하는 발걸음 가운데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세르 호수. 오랜 시간동안 모래의 사막 길을 달려온 우리에게 창백할 정도로 푸른 빛을 띄고 있는 호수는 마치 오아시스와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호수는 사실 수많은 유적을 파괴시킨 장본인입니다. 아부심벨 신전은 그 파괴의 과정에서 살아남은 것입니다. 원래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살아남은 것이 더욱 아름다운 법이지요.

푸른 빛의 나세르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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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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