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마저 예쁜 앞치마, 잼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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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마저 예쁜 앞치마, 잼머
뒷모습마저 예쁜 앞치마, 잼머
2017.01.04 18:13 by 김석준

앞치마는 한 번도 주인공이었던 적이 없었다. 쓰임새라고 해봤자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감자탕으로부터 흰옷을 지켜주는 정도? 하지만 홈패브릭 브랜드 ‘잼머(Jammer)’의 정수인(34) 대표(이하 정 대표) 생각은 달랐다. 예쁜 앞치마를 만들고 싶었던 정 대표는 앞치마를 단숨에 무대의 주인공으로 낙점했다.

연남동에 위치한 잼머 매장

서울 연남동에 위치한 ‘잼머의 집’. 지난 2015년 11월 오픈한 이곳은 정 대표의 주거 공간이자 오프라인 매장이다. 「빨강머리 앤」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초록색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난로의 훈훈한 공기와 기름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서울이 아닌 다른 공간의 냄새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정 대표는 잼머의 집을 꾸미는 데 정성을 많이 쏟았다고 했다.

“브랜드를 론칭하고 처음에는 작은 사무실 하나 얻어야겠다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운이 좋았죠. 부동산에서 ‘한 시간 전에 괜찮은 집이 막 나왔다’는 연락을 받고 보자마자 ‘이거 놓치면 절대 안 되겠다’ 싶었어요. 만약 작은 사무실에서 시작했다면 지금처럼 많은 제품군을 만들지 못했을지도 모르죠.”

디자인과 제작, 모든 일을 정수인 대표가 한다.

예쁜 앞치마에 대한 욕심

잼머의 첫 상품은 앞치마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옷보다 쉽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막상 아이템을 정하자 고민이 깊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정말 ‘예쁜 앞치마’를 만들고 싶다는 고민이었다.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가는, 마치 원피스처럼 보이는 앞치마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구상 끝에 첫 작품이 완성됐다. 그렇게 처음 만든 앞치마를 정 대표는 ‘말도 안 되는 제품’이라고 표현했다.

투명한 오간자(organza) 소재로 만든 제품. 잼머의 이름으로 처음 만든 ‘말도 안 되는’ 앞치마다.

그런데 ‘말도 안 되는’ 앞치마의 반응이 생각보다 좋았다. 평범한 앞치마들 사이에서 단연 눈에 띄었던 것. 혹자들은 ‘김장할 때 국물 튀면 어떡해’라며 걱정을 했지만, 앞치마의 용도는 생각보다 다양했다. 꽃을 다루는 사람들도 관심을 가졌고, 방송에도 노출되기 시작했다. 수익에 대한 고민 없이 일단 하고 싶은 걸 하자고 생각했던 앞치마였는데, 수익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잼머의 집’의 쇼룸. 앞치마의 디자인은 촌스럽지 않아서 일상복의 느낌마저 난다.

실용성 대신 스타일을 택했기에 패셔너블한 젊은 층만 관심을 가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손님의 나이 대가 예상외로 다양하다고 한다. 20대와 30대뿐만이 아니라 40대 단골까지 있을 정도다.

“어머니들도 사실은 예쁜 앞치마를 입고 싶었던 거죠”

정 대표의 답을 듣고 보니 당연하다. 나이가 든다고 예쁜 걸 싫어하지는 않을 테니.

앞치마로 시작된 잼머의 제품군은 점점 더 늘어나 오븐 장갑과 티타올 등 주방용품 그리고 잠옷과 매트 등 홈패브릭 제품으로 확장되었다. 복합문화공간 언더스탠드에비뉴(서울 성동구)의 편집숍 소셜스탠드에도 입점하는 등 판로 역시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계획된 순서는 아니었다. 원하는 대로 공간을 꾸미다 보니 그에 맞는 아이템이 만들어졌다고. 현재 매장으로 쓰고 있는 공간은 원래 모 영화사 스튜디오의 사무실이었단다.

“거의 죽은 집이었죠. 구석에 짐들이 쌓여있었고, 조그만 회의 공간도 있는. 그 사무실에 침대를 놓고 침실로 꾸몄어요. 침대를 놓고 보니 거기에 어울리는 아이템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연스럽게 잠옷과 침구류까지 만들게 된 거죠.(웃음)”

‘잼머의 집’에서 찍은 제품 화보. 제품은 마벨 실크 로브.
침실 형태로 꾸며진 매장은 아이템을 더 돋보이게 한다.

어떤 여자의 ‘느낌’을 팝니다

정 대표가 제품을 보여주는 방식은 평범하지 않다. 제품을 나열하기보다는 한 여자가 사는 공간을 보여준다. 마치 모델하우스처럼 말이다. 침대에 놓인 이불과 베개, 그 옆에 걸린 잠옷들은 깔끔하게 정렬된 매장과는 거리가 멀다. 유럽풍의 ‘작은 아씨들’ 같은 분위기를 내고 싶었다는 정 대표의 말처럼 동화 속 어느 공간처럼 느껴진다. 앞치마의 소재와 모양새, 매장의 인테리어 등은 기존의 편견을 완전히 뒤집는다. 제품 사진에 대한 편견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매장이 없고, 사이트만 있었으니까, 사진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직접 와서 볼 수가 없으니까 사진을 보고 사고 싶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어? 여기 사진 좀 예쁘게 찍네?’라고 생각하게 말이에요. 그래서 사진을 찍을 때도 이야기를 담으려 했죠. 앞치마 제품이라고 요리하는 모습을 담기보다는 좀 더 재밌게 연출을 하고 싶어서 일부러 주방에서 안 찍었죠. 대신 말한테 당근을 주거나.(웃음)”

린넨 셔링 에이프런.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안정감 있는 기장이 특징이다.
앤스 에이프런. 이름처럼 ‘빨강머리 앤’ 동화에 나올 듯한 앞치마다.
레이스 프릴 에이프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리게 하는 제품 사진.

잼머 홈페이지에서 제품을 구경하다 보면 자주 띄는 문구가 하나 있다.

‘your space will be in love’

자신의 브랜드를 통해 삶 속에 작은 행복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이유이자,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이 기업의 철학이다.

“많은 사람들이 밖에서는 치열하게 일하고 집에서는 쉬는 삶을 반복해요. 그런데 사람이 무엇을 입느냐에 따라 기분이 달라지니까… 요리할 때도 예쁜 거 입고 잠옷도 예쁘게 입고 자면 더 잘 쉴 수 있지 않을까요. 삶 속에서 그러한 소소한 행복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사진: 잼머·김석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