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을 담는 가방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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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을 담는 가방을 만듭니다
쉼을 담는 가방을 만듭니다
2017.01.13 15:33 by 김다영

‘00만 원 이상 구매 시 에코백 증정.’

온·오프라인을 불문하고 흔히 접할 수 있는 판촉 문구. ‘에코백’이란 제품의 위상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저렴하면서도 누구나 필요할 것 같은. 그래서 쉽게 주고, 받고, 버리는 물건. 소비자의 마음속에 그렇게 자리 잡은 물건이 바로 에코백이다.

본래 에코백은 ‘비닐봉지 사용을 줄여 지구를 지키자’는 기획 의도로 출발했다. 하지만 오늘날엔 오롯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 조금 과장하면 비싼 비닐봉지와 다를 게 없을 정도다.

‘라운더바웃(Roundabout)’은 이런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한 브랜드다. 이 회사의 송승연 대표는 디자인이 환경과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라운더바웃 송승연 대표

“저희가 제품을 튼튼하고 편리하게 만들면, 소비자들은 오랫동안 곁에 두며 자주 사용하게 되겠죠. 그렇게 해서 제품의 수명이 늘어나면 그게 바로 에코백이 아닐까요? 단순히 ‘천 가방’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요.”

Long life design

송 대표는 사람들이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마구 사들이고, 아직 사용가치가 남아있는 물건을 버리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에 주목했다. 제품을 만들 때 특히 내구성에 꼼꼼한 주의를 기울이는 이유다.

면의 재질은 실의 두께를 나타내는 ‘수’, 몇 개의 실을 꼬아서 만들어졌는지를 나타내는 ‘합’으로 구분되는데, 라운더바웃에서 사용하는 10수 3합 면은, 타 제품에 비해 탄탄하고 밀도가 높은 소재로 분류된다.

작은 소품들을 수납하기 좋은 Soft folio 제품

클러치백(clutch bag·끈이 없어 손에 쥘 수 있도록 디자인된 백의 총칭)에는 ‘샤무드’, 즉 인조가죽을 사용한다. 샤무드는 물세탁이 가능하면서도 변형이나 색의 번짐이 없어 오래 사용하기 좋은 소재다. 송 대표는 “소파커버로 사용될 정도로 내구성이 좋고 변형이 적지만, 단가 문제 때문에 일반적으로 가방에는 잘 사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소비자 곁에 오래두고픈 제품을 위해선 디자인의 역할도 중요하다. 질리지 않는 담백한 디자인, 어디에나 매치하기 쉬운 컬러를 바탕으로 제품을 제작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상황과 용도에 따라 분리해서 사용할 수 있는 가방

자칫 심심해질 수 있는 디자인은 디테일의 톡톡 튀는 발상들이 보완해준다. 라운더바웃은 한 제품을 메인백(main bag)과 탈부착이 가능한 세컨드백(second bag)으로 나누어 필요에 따라 분리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세컨드백의 컬러는 고객이 원하는 대로 선택이 가능하기 때문에 다양하게 조합할 수 있다. 양면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가방도 있다. 상품이 닳는 ‘물리적 마모’와 싫증을 느끼는 ‘사회적 마모’를 모두 세심하게 고려한 시도들이다.

제품만이 아니다. 라운더바웃은 상품의 포장재까지 알뜰하게 사용할 수 있다. 재사용이 가능한 지퍼백 형태의 패키지 방식 덕분이다.

“지퍼백 방식은 비닐 포장에 비해 훨씬 돈이 많이 들어요. 하지만 포장재가 무의미하게 버려지고, 그로인해 엄청난 양의 폐기물이 나오는 것을 생각하면, 어떤 의미에선 ‘오히려 절약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송승연 대표)

이미지 출처 : 라운더바웃 블로그

Slow down, Look around

송 대표는 원래 공공시설물을 디자인하는 직장에 몸담고 있었다. 예전부터 환경에 관심이 있어 시작했던 일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좋은 결과물을 위해선 환경 파괴와 자원 낭비를 피할 수 없었다. 수십 년간 키운 나무를 재료로 사용해도, 아주 적은 부분만 쓰고 나머지를 폐기처분한 적도 많았다고 한다.

이와 같은 현실에 회의감을 느낀 송 대표는 다니던 직장을 나와 지금의 회사를 창업했다. 브랜드명인 ‘roundabout’의 본래 의미는 ‘원형교차로’. 달리는 자동차의 속도를 늦춰주며 교통사고를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브랜드가 실생활에서 ‘쉼’의 영역에 포함됐으면 하는, 그리고 여유로운 삶의 태도를 지향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택한 단어다. ‘Slow down, Look around(속도를 늦추고 주위를 둘러보라)’란 회사 슬로건에도 이런 마음은 잘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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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SBA 챌린지 1000 프로젝트’의 청년창업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면서 시작된 라운더바웃의 제품은 현재 언더스탠드에비뉴, 생활창작가게 KEY, 국립현대미술관 등 7개의 오프라인 매장과 1300K, 텐바이텐 등 온라인 매장에서 만날 수 있다.

현재는 가방 제품 생산에 주력하고 있지만, 앞으로 특정 제품군에 제한되기보단 전반적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송 대표는 “사람들이 라운더바웃을 떠올렸을 때 단순한 브랜드를 넘어 삶의 방식을 떠올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시간이 흐르고 품목이 다양해져도 소비자의 가장 가까운 일상에서 오랫동안, 그리고 자주 사용되는 물건들을 만들어나간다는 생각은 변치 않을 것이라고.

“창업 초기에 제품 색상을 바꿔 배송하는 실수를 한 적이 있었어요. 부랴부랴 원래의 색으로 교환해 주었는데, 뜻밖에도 고객이 ‘친절하고 빠르게 처리해주어서 고맙다’며 커피 원두 한 봉을 선물로 보내주신 거예요. 이렇게 느리고 따뜻한 시선으로 주변을 돌아보는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나아갈 겁니다. 천천히, 주변을 살피면서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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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라운더바웃 제공·최현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