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경제에 '광고의 꽃' 피우다
사회적 경제에 '광고의 꽃' 피우다
사회적 경제에 '광고의 꽃' 피우다
2014.10.09 08:40 by 권보람
 

이름만 대면 알법한 대기업의, 카피라이팅 한 줄만 읊어도 그림이 그려지는 광고를 만들었다. ‘돈을 많이 벌어 어머니께 집을 사드리고 싶었다’는 젊은 광고 기획자는 그렇게 5년을 일하며 점차 회의감에 빠졌다. “내가 열심히 광고를 만들수록 재벌들만 더 부자가 되겠구나.”

돈 많은 기업만 더 많은 돈을 버는 산업적 한계를 벗어나, 스스로 가치 있다고 믿는 일에서 유능감을 찾고 싶다는 ‘오춘기의 바람’은 그를 하루 아침에 천문학적 제작비의 TV광고 기획자에서 백수로 바꿔놓았다. 지금으로부터 햇수로 불과 3년 전, 인디씨에프의 박정화(사진) 대표가 겪었던 이야기다.

“퇴사 후 집에서 낮잠을 자는데 불현듯 ‘대기업 광고의 불합리한 구조가 싫으면 작은 회사 광고를 만들면 되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돈도 없고 매체도 없는데 광고주까지 없는 독립 광고 회사! 제 상상 속에서 인디씨에프가 처음 만들어 진 순간이죠.”

 

http://youtu.be/GrkDEtIMiys

 

그리고 2012년, 박 대표는 상상의 회사를 현실로 만들었다. 그의 광고계 지인들은 ‘광고주 없는 광고회사가 말이 되느냐’ ‘철이 없다’며 혀를 찼지만 인디씨에프의 대표가 된 그는 지금 자신의 삶에 대해 ‘거의 완벽하게 행복하다’고 진단했다. 학생이 공부를 하듯 기획자로서 본분을 지키며 광고만 열심히 하면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보탬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비영리 광고의 이상한 법칙  

흔히 광고를 ‘자본의 꽃’이라 말한다. 효율을 가장 큰 미덕으로 삼는 제 2섹터(민간영역)의 대표주자인 광고가 과연 공공의 가치를 실현시켜야 하는 사회적 경제 영역에서도 봉우리를 틔울 수 있을까. 박 대표는 이 질문에 “사회적 경제는 영리에는 없는 막강한 무기를 갖고 있다”고 답했다. 바로 ‘스토리텔링’이다.

“현대는 공감과 가치지향의 시대입니다. 사회적 경제 주체들은 각 분야의 스페셜 리스트라 해도 손색이 없는 고유 가치를 갖고 있어요. 비용 장벽이 높은 ATL(Above The Line. TV, 신문처럼 전통적인 매체를 활용한 광고전략)파트에서 사회적 경제가 다뤄지긴 어렵겠지만, 구전효과가 중요한 바이럴 파트에서는 일반 기업보다 훨씬 경쟁력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디씨에프는 스토리텔링이라는 무기를 적극 활용해 동네슈퍼 ‘작은공간’ 천연화장품 ‘자연의 벗’ 비영리IT지원센터 ‘NPO need IT' 등 다양한 광고를 만들었다. 이 작지만 사랑스러운 광고들은 TV와 신문대신 SNS를 통해 입소문을 탔고 그 때마다 새로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http://youtu.be/GrkDEtIMiys

 

비영리 광고가 갖는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인디씨에프의 광고에는 분야와 제품을 가리지 않는 세 가지 원칙이 있다. 첫 번째 ‘남들이 하지 않았을 것’, 두 번째 ‘사람의 가치를 갉아먹지 않을 것’, 세 번째 ‘하나의 이야기를 할 것’이다.

“광고업계에는 ‘레퍼런스(참고)’라는 관행이 있습니다. 광고주에게 보다 친절하게 광고를 제안하는 수단이죠. 하지만 이건 슬프게도 기존 창작물의 짜깁기에 불과합니다. 광고주가 레퍼런스를 보고 광고집행을 결정하니 결과물도 자연히 이전 광고들을 답보하는데 그치곤 하지요. 우리는 최소한 이런 관행들에서 벗어난 광고를 찍고자 했습니다.”

광고인으로서 누구보다 업계의 부당함을 절감했던 박 대표는 비영리 분야에서 만큼은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첫 번째 원칙을 통해 좋은 광고가 나올 수 없는 환경적 장애를 극복했다면, 두 번째 원칙은 광고 자체의 영향력을 보다 긍정적으로 발산하기 위한 지침이 됐다.

“광고는 상상 이상으로 대중의 가치관을 파고듭니다. 강장제 광고에 흔히 등장하는 직장인이 '야근=열심히 일하는 사람의 이미지'를 심어준 것처럼요. 이 광고 때문에 우리는 늦게까지 일하는 회사원이 더 열정적이고 헌신적이라는 착각을 하게 됐지요. 광고가 제시하는 이 같은 규칙들이 인간 스스로를 비하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

마지막 원칙은 광고의 성패를 가른다. 아무리 위대한 사명을 띈 회사, 세상을 바꿀 제품이라 하더라도 하나의 포인트에 집중할수록 더 정확하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광고의 효과는 전달력과 인지도 상승 달려있다”면서 “이 때 중요한 것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거나 보는 이의 공감, 유쾌함을 유도하는 통찰력”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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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고기획자가 광고를 만들지 않는 그 날까지  

지난 해 제주도로 CF촬영을 갔던 박 대표는 한 가지 고민을 하게 된다. “이렇게 열심히 광고를 찍어도 일 년이면 10편, 앞으로 이 일을 10년간 한다고 해도 100편의 광고밖에 못 찍을텐데 과연 이걸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그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명확했다. 더 많은 사람이 광고를 만드는 것이다. 누구나 쉽게 광고를 만들기 위한 솔루션으로 박 대표는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을 떠올렸다.

“스마트폰에 녹음과 촬영, CG작업을 할 수 있는 기능이 자체적으로 들어있으니 앱을 통해 약간의 메뉴얼만 제공하면 되겠다 싶더군요. 제주도 광고 작업을 끝내고 쉬는 동안 심심풀이 삼아 앱 제작에 들어갔어요.”

 

http://youtu.be/GrkDEtIMiys

 

그렇게 4개월을 들여 만든 광고 DIY 애플리케이션 ‘Pariro(파리로)’는 지난 3.1절 론칭된 후 제21회 대한민국 멀티미디어 기술대상에서 사장상을 수상했다. “즐겨쓰는 앱은 지도와 메신저가 전부”라는 박 대표의 심심풀이가 IT 업계에 불러온 후폭풍은 지금도 거세다. 그는 다음 달 파리로의 프로토 타입을 가지고 실리콘밸리의 투자자들을 만나기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광고쟁이인 제가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줄 누가 알았겠어요. ‘사람에게 행복이 되는 광고를 하겠다’는 본질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표현 방법은 계속해서 바뀔 수 있는 것 같아요. 재능기부 스타일의 비영리 광고단체로 출발했던 인디씨에프가 IT라는 새로운 솔루션으로 발돋움 한 것 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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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버전의 파리로는 그래픽 사양을 높이고 영상의 길이와 스타일 탬플릿을 보다 다양하게 제공할 예정이다. 광고 스트리밍 서비스와 미디어 기부 솔루션도 포함된다. ‘이런 좋은 광고는 더 널리 알려져야 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공감이 파급력으로 치환되는 시스템이다.

파리로가 시장에 뿌리내리면 한 사람이 10년에 걸쳐 만들 100편의 광고를 단 하루 만에 전 세계 사람들이 함께 만들 수도 있다. 인디씨에프의 창립 목표인 자본이나 기술에 관계없이 누구나 광고를 만드는 시스템이 실현되는 것이다. 누구보다 광고를 사랑하는 박 대표지만 “내 꿈은 앞으로 광고를 만들지 않는 것”이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이유다.

“인디씨에프의 시작은 저의 작은 경험과 재능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미래는 수많은 창작자들이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진 허미영 작가(so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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