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연결고리 (feat.보드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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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의 연결고리 (feat.보드게임)
너와 나의 연결고리 (feat.보드게임)
2017.01.18 16:24 by 류승연

발달장애인을 위한 보드게임 카페가 있다고?

호오~ 솔깃했다. 동네의 키즈카페를 데려가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주말이 돌아올 때마다, 지금처럼 방학 중에는 매일 아침마다 “오늘은 어디를 가서 놀지?”가 제일 큰 고민이다.

주저하지 않고 그 곳으로 향했다. 서울숲역에 내려 언더스탠드에비뉴 내에 있는 ‘모두다 플레이룸’을 찾아갔다.

언더스탠드에비뉴(서울 성동구) 내 위치한 모두다 플레이룸 입구

문을 열고 들어가자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며 세 명의 ‘게임 마스터’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박비 대표(B master), 김소연 이사(young쌤), 이재윤 인턴(제임스)이다.

제대로 인사를 나눌 겨를도 없이 흥분한 쌍둥이가 카페 안으로 돌진한다. 딸은 게임카페에 왔다는 흥분감에 한껏 들떠 있고, 아들은 이곳이 뭐하는 곳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노는 곳이라는 생각은 들었는지 곳곳을 누비며 탐색에 들어간다.

장애아인 아들을 위해서 찾아온 곳이다. 비장애인인 딸은 평소에도 놀 거리가 많지만 아들은 놀 수 있는 공간과 관심을 보이는 놀 거리의 종류가 한정돼 있다. 보드게임 카페에서 재미있게 잘 놀아주면 그게 바로 효도다.

이 곳 저 곳을 둘러보던 아들이 탐색을 끝냈다. 방방장도 없고 미끄럼틀도 없다는 걸 알았다. ‘잉잉잉’ 소리를 내며 앙탈을 부리기 시작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게 없으니 핸드폰으로 뽀로로를 틀어달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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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같으면 남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핸드폰을 건넸을 터였다. 하지만 게임 마스터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꺼내려던 핸드폰을 도로 집어넣었다.

“아이가 진정이 될 때까지 그냥 지켜보시는 건 어떨까요? 괜찮아요, 여기선.”

우리 아들에게 필요한 게 이거다. 이해하고 기다려줄 줄 아는 따뜻한 시선. ‘잉잉잉’거리는 앙탈은 몇 분만 참고 기다리면 끝이 난다. 말을 못하기에 원하는 것을 얻고자 자신의 의사를 온 몸으로 표현하는 것인데,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포기를 하고 상황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평소엔 주변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 때문에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급하게 핸드폰을 출동시킨다.

얼마 간 시간이 흐르자 아들이 잠잠해졌다. 상황을 받아들이고 나자 다시 탐색에 나선다. 의자 위에도 올라가고, 바닥에도 누워보고, 이것저것 게임들을 만지고 귀에 대보기도 하고 입술로 가져가 감촉을 느껴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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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관심을 보이는 이 때가 착석을 할 타이밍이다. 아들을 의자에 앉혀놓고 시선을 사로잡는 팽이 돌리기부터 선보였다. 빨강, 노랑, 파랑 등 원색의 팽이들이 책상 위에서 빙빙빙 돌아간다.

팽이를 지켜보던 아들이 웃는다. 손으로 잡는다. 손이 닿으면 간질간질한 느낌이 나며 멈춘다. 그러면 엄마가 또 다른 팽이를 돌려준다. ‘빙글빙글빙글’ 눈앞에는 온통 빙그르 돌아가는 원색의 동그라미 천국이다.

아들은 보고, 만지고, 얼굴에 가져가 촉감을 느끼고, 미소를 짓는다.

그 때 옆에서 “꽉꽉꽉”거리는 이상한 소리가 난다. 게임 마스터쌤이 무대 위에서 빙그르르 돌아가는 오리들을 가지고 왔다. 아이가 돌아가는 사물에 흥미를 보이자 맞춤형 놀거리를 찾아서 가져온 것이었다.

아들은 비즈로 만든 팽이에 관심을 보였다.

가운데 단추를 누르자 빙그르르 판이 돌아간다. 오리를 한 마리 올리자 오리가 빙그르르. 한 마리 더 올리자 두 마리가 빙그르르. 그렇게 세 마리, 네 마리, 열 마리, 열 한 마리….

노란 오리들을 한참 바라보던 아들이 작은 고사리 손을 뻗어 오리들을 내치기 시작한다. 말을 할 줄 알았다면 “빨리 거기서 내려와”라고 했을 것이었다.

허겁지겁 오리들을 내리더니 빙글빙글 돌아가는 판을 집어 든다. 오리보단 돌아가는 판에 더 관심이 가는 모양이다. 귀에 대고 ‘윙윙윙’ 울리는 소리를 듣는다. 뺨에 대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플라스틱 판의 감촉도 느껴본다.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무릎을 탁 하고 쳤다. “앞으로 이 곳이 단골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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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아들이 한 모든 것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였고, 치료실에서 행해지는 치료들이었다. “아이는 놀면서 배운다”고 하는데 아들 같은 발달장애아들도 예외는 아니다. 아니, 어쩌면 더 잘 놀아야 하는 게 발달장애아들일지도 모른다.

많은 발달장애아들이 나이가 어릴수록 눈과 손의 협응력이 떨어진다. 우리는 보통 어떤 일을 할 때 눈으로 보면서 하는데 우리 아들 같은 경우는 손과 눈이 따로따로 논다.

눈은 옆을 쳐다 보면서 손으로는 선긋기를 하고, 신발을 신으려 안간힘을 쓴다. 눈과 손이 함께 힘을 합해야 일의 완성도가 높아진다. 이 때문에 학교와 치료실에서 교사와 치료사들은 아들이 관심 있는 것을 가져와 눈과 손의 협응력을 키워주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런데 이 곳에서는 굳이 치료실에 가지 않더라도 훨씬 더 편하고 자유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이런 부분을 연습할 수 있었다. 그것도 놀면서. 그에 따라오는 집중력은 덤. 착석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보너스.

흥미를 보이는 아들을 보며 감동에 젖어 있는데 뒤에서 들리는 딸의 웃음소리가 요란하다. 아빠와 함께 작은 대포를 던져 컵 안에 집어넣는 게임을 하고 있는데 완전히 몰입해서는 웃고, 놀라고, 안타까워하고, 의지를 불태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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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열심히 게임‘만’ 했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발달장애인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재미있는 보드게임 카페인데 발달장애인들도 마음 놓고 올 수 있는 곳이라는 게 더 적합한 말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인 딸은 꽤 많은 종류의 게임을 골고루 잘 할 수 있었다. 얼마나 재미가 있었던지 화장실 한 번 가지를 않고 게임에 몰두한다. 노트북이나 핸드폰을 보며 혼자서 방에 틀어박혀 하는 게임이 아니다. 바로 앞에 있는 상대방과 소통하며 호흡하며 함께 노는 보드게임이다.

게임 마스터쌤의 칭찬을 받고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하고, 아빠와 함께 투닥거리며 승부욕을 펼치기도 한다. 아빠와 딸. 평소엔 관심거리가 달라 공동으로 무언가를 하는 일이 거의 없는데 이 곳에서 둘이 잘 노는 모습을 보니 흐뭇하기만 하다.

아~ 그런데 이 날의 하이라이트가 있다. 정작 이 날 가장 재밌게 놀았던 사람은 아이들이 아닌 바로 우리 남편이었단 거다. 불혹을 넘은 배 나온 중년 아저씨는 생전 처음 가 본 보드게임 카페에 완전히 매료됐다.

어린 딸을 상대로 봐주지도 않고 게임에 열을 올린다. 원숭이가 쏘는 대포가 딸 앞의 종이컵에 쏙 하고 들어가면 월드컵 경기에서 우리나라 대표팀이 골이라도 넣은 듯 “이예~” 하면서 좋아한다.

키넥트 볼링을 즐기는 남편의 모습, 사실상 이날의 주인공이었다.

볼링을 하는 비디오게임 앞에서는 온 몸을 던지는 걸 마다 않는다. 본인도 재미나지만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주변 사람들은 더 웃음이 난다.

그래. 40대 남성 직장인. 놀 거리라고 해봐야 술을 마시는 것뿐이다. 일부는 골프를 치기도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어쩌다 당구장엘 가는 게 놀 거리의 전부다. 아니면 마누라의 잔소리를 들어가면서도 방에 틀어박혀 컴퓨터게임에 몰두하거나.

놀아보지 못하고 살아온 40대 직장인에게 보드게임 카페는 소통과 취미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좋은 대안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달장애인과 일반인들이 모두 즐길 수 있는 보드게임 카페라…. 그냥 평범한 보드게임 카페를 차렸어도 됐을 텐데 어떻게 이런 기특한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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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나 친척 중에 장애인이 있느냐는 질문에 박 대표가 웃으며 아니라고 한다. 모두가 함께 하는 보드게임 카페를 생각하게 된 것은 지하철에서의 어떤 경험 때문이었다.

어느 날 박 대표는 지하철 문과 사랑에 빠진 한 남자를 봤다. 문만 쳐다보고 문에만 집착하고 문에만 온 관심이 집중돼 있다.

모든 사람들이 그랬듯 자신도 그 남자를 이상하게 쳐다보고 있다가 어느 한 순간 번쩍 든 생각 하나. ‘저 사람이 발달장애인이라면…’.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이상하게 보이던 그 남자의 모든 행동이 다 이해가 되고 전혀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고.

박비 모두다 대표의 모습

평소에 일반 사람들이 장애인을 이상하게 보고 거리를 두는 건 일상적인 삶에서는 그들을 접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었다. 오고가다 옆을 지나칠 수는 있지만, 함께 하는 접점의 공간에서 만나본 적이 없기에 서로를 이해해 볼 기회조차 가져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계획하게 됐단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게임이라는 하나의 매개로 마음의 벽을 허무는 공간. 입소문을 타고 널리 퍼져 벌써 이 곳이 3호점이다. 1호점은 성수동에 있는데 장애인계의 삼성이라 불리는 베어베터 안에 위치하고 있어서 직원들만 이용 가능하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2호점은 홍대에 위치해 있고 3호점이 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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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게임 키즈’로 자라온 박 대표는 게임이 주는 풍성한 과실을 모두와 나누고 싶어 한다. 순서와 규칙(사회의 룰)을 지킬 줄 알게 되고, 집중력을 길러주고, 몰입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이가, 어른이 게임을 통해 ‘성공의 경험’을 쌓게 되는 것이다.

안전한 가상의 상황에서 “실패해도 괜찮아”라는 기본 전제 하에 차곡차곡 성공의 경험을 쌓아간다. 자존감, 스스로에 대한 믿음 등도 따라서 쌓여간다. 돈을 주고도 못 사는 중요한 가치이며 경험이다.

두뇌회전은 게임을 하며 딸려오는 덤 같은 것이랄까? 참고로 어릴 때부터 게임을 하며 자라온 박 대표는 카이스트 MBA 과정을 밟고 있는 수재다. 마음이 예쁘니 얼굴도 예쁘고 피부는 아기처럼 뽀얗다. 게다가 얼마나 동안인지 결혼 안한 남동생이 있었으면 내 당장….

“아이고~ 젊은 처자가 기특하기도 해라~” 내 입에서는 연신 감탄사만 뿜어져 나온다. 바른 생각으로 좋은 일을 하는 이 시대의 젊은이를 만나고 나니 괜스레 나까지 희망이 생기는 것 같다.

모두다 플레이룸이 번창해서 10호점, 30호점, 100호점까지 뻗어나갈 수 있기를…. 동네마다 있는 백종원 식당 옆에 모두다 플레이룸도 빠지지 않고 자리 잡을 수 있기를…. 장애인들도, 비장애인 학생과 연인들도, 회식을 나온 30~40대 아저씨들도, 동창모임을 가진 중년의 아줌마들도 “오늘 보드게임이나 하러 갈까?”하며 누구나 편하게 모두다 플레이룸을 찾는 그런 날이 하루 속히 오기를…. 문을 열고 나오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바라본다.

게임공간이 위치한 언더스탠드에비뉴의 풍경

모두다 보드게임 플레이룸

• 홍대 2호점 - 영업시간 오후 1시~10시 (Tel : 02-3142-5955)

• 서울숲 3호점 – 영업시간 오후 12시~8시 (Tel : 02-2135-8199) 

/사진: 최현빈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