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식 과잉의 파라오, 람세스 2세
자의식 과잉의 파라오, 람세스 2세
2017.01.19 20:20 by 곽민수

여덟 개의 거대한 오시리스 기둥이 있는 신전의 주실을 지나게 되면, 네 개의 작은 기둥이 있는 부실로 들어서게 됩니다. 부실의 안쪽에는 이곳 아부심벨 대신전에서 가장 성스러운 장소인 '지성소'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지성소에는 네 개의 신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먼저, 가장 왼쪽에 앉아 있는 신은 창조주이자 멤피스 지역의 최고신으로 숭배되던 프타(Ptah)입니다. 프타 신은 심장으로 세상의 시작을 생각해냈고(이집트인들은 사고가 뇌가 아닌 심장에서 이루어진다고 믿었습니다), 혀로 말을 함으로 세상을 창조하기 시작했다고 믿어졌습니다. 어쩐지 성경 속 창세기의 천지창조 이야기나, 요한복음 1장 1절의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와 같은 구절들이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프타는 또한 직접 손으로 인간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프타는 천지창조의 신이자 동시에 장인들의 신으로 이야기되기도 합니다. 발음의 유사성 때문에 프타의 이름이 이집트라는 이름의 기원이 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프타의 부인은 파괴와 재생을 동시에 상징하는 사자머리 여신 세크메트(Sekhmet)인데, 이들 부부는 아들인 네레르툼(Nefertum)과 함께 멤피스에서 주요 3신으로 숭배되었습니다.

아부심벨 대신전의 지성소

프타의 왼쪽에 앉아있는 신은 아멘(Amen)신입니다. 아멘, 아몬, 아문 등으로 발음되는 이 신은 우리가 오랜 시간 머물러 있었던 룩소르 지역의 최고신이었습니다. 신왕국 시대에 아멘은 오래된 태양신인 라(Ra)와 결합하여 아멘-라(Amen-Ra)가 됩니다. 신들의 결합은 고대 이집트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빈번하게 일어나던 일이었습니다. 룩소르에서 자주 보았던 것처럼 아멘은 그의 부인 무트, 그리고 아들 콘수와 함께 룩소르 지역의 3신으로 경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3신을 하나의 그룹으로 묶어서 숭배하는 것도 이집트에서 자주 보이는 모습인데, 여기에서도 기독교의 ‘삼위일체’ 신앙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대 근동에서 이집트가 갖고 있었던 문화적 영향력을 염두에 둔다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닙니다.

네 개의 신상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왼쪽에서 세 번째 자리에 앉아있는 것은 '신격화된 람세스 2세'입니다. 바로 그 옆은 왕권의 수호자이자 왕권 그 자체를 상징하는 호루스(Horus)와 태양신 라가 결합한 ‘지평선의 태양’, 라-호르-아크티(Ra-Hor-Akhty)입니다. 프타, 아멘, 라-호라크티는 이집트의 여러 신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권위를 갖고 있는 신들입니다. 이들 최고 신들과 자신을 같은 크기로 묘사하는 것을 넘어서서 동석까지 시켰다니, 이 람세스 2세라는 사내는 아무래도 우리 상상을 훨씬 넘어서는 강한 자의식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자의식 과잉은 단순히 자신의 신상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곳 아부심벨 신전에서 신격화된 자신을 위한 제사의식을 직접 주관하기도 했습니다. 죽어서 오시리스화 된 파라오가 신격화되는 경우는 이전 시대에도 자주 있는 일이었지만, 살아있는 파라오가 완전히 신격화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살아있는 파라오가 직접 신격화된 자신에게 예배를 드리며 제물을 봉헌하는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무척 흥미롭습니다. 이집트 역사 속의 수많은 파라오들이 대부분 다 자신의 성취나 업적은 과장하고 윤색해서 묘사하기는 했지만, 람세스 2세 정도로 강한 자의식의 소유자는 3,000여 년이라는 긴 이집트 역사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아부심벨 대신전의 평면도

지성소는 아주 특별하게 공을 들여 설계되었습니다. 태양이 정동에서 떠오르는 춘분과 추분, 일 년에 두 번씩 태양빛이 60미터에 이르는 대신전의 주실과 부실을 지나 지성소로 들어와 신상들을 비추게끔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지성소에 앉아있는 네 명의 신들 가운데 프타에게만은 햇빛이 비추어지지 않게끔 설계되었습니다. 그 까닭은 프타가 창조의 신이기도 하지만, 그가 지하 세계와도 연관이 깊다고 믿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은 프타와 죽음의 신 소카르(Soqar), 그리고 지하세계의 왕인 오시리스(Osiris)가 융합된 프타-소카르-오시리스 신에 대한 신앙으로 나타납니다. 이 프타-소카르-오시리스 상은 이집트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의 전시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유물이기도 합니다. 신전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1960년대 말에 이전되었지만, 이전될 때에도 이와 같은 배치는 고려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지금도 춘분과 추분 날이 되면 햇빛이 비추는 지성소를 보기 위해서 많은 관광객들이 아부심벨로 향합니다.

죽음의 신 프타-소카르-오시리스.영국 버밍험 박물관 소장

 

/사진:곽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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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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