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으로
동쪽으로
2017.01.24 15:10 by 오휘명
(사진: shutter.com/nodff)

여전히 잘 지내고 계신지요. 먼 서쪽에서 편지를 보냅니다. 갑자기 당신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어지는 걸로 봐선, 곧 종잡을 수 없이 당신이 보고 싶어질 모양인가 봅니다. 먼 곳에서 편지로 전해 듣기로는 꽤 추운 시간을 보내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춥지 않은 겨울은 한 번도 없었지만요. 날이 너무 추워서 감기기운이 도통 떨어지질 않는다고, 엊그제쯤엔 빙판길에서 크게 한 번 넘어졌다고 툴툴거리시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습니다. 나는 먼 곳에 와 있기 때문에, 그저 당신이 크게 넘어지진 않기를, 감기를 오래 앓지는 말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게 최선이에요, 변명 같겠지만요.

“조금만 더 있다가 갈게. 너는 여기 오래 머무를 것도 아니면서 매년 호들갑이더라.”

녀석이 내게 전한 말이었습니다. 싸늘한 표정이 눈앞에 훤했습니다. 우리들 넷은 번갈아가며 당신이 계신 곳을 넘나들어야 하기 때문에, 환절기가 올 때쯤이면 이렇게 자주 투닥거리곤 하거든요. 나는 이곳에서 신선한 나물과 조그만 생선들을 꼭꼭 씹어 챙겨 먹으면서도 겨울 녀석과 말다툼을 할 때면 조바심을 냅니다. 옷장에는 왜 또 초록색과 노란색의 카디건 같은 것들뿐인지, 나는 조금 더 멋있게 당신에게 보이고 싶어 덩굴처럼 빠글빠글한 머리를 긁적였습니다.

*

매정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저는 늘 사랑에 푹 빠진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찾아가곤 합니다. 봄의 노래와 봄의 길거리들을 가장 반기는 건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틈에 끼어드는 건 가끔은 거북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떡해요, 나를 찾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게 더 쉬운 법 아니겠어요?

한번은 정말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어요. 따뜻한 숨결과 손길로 말을 걸어보려 했는데, 그때 그 사람의 연인이 떡하니 나타나는 거예요. 봄의 입장이란 때론 그렇게 서글프고 불쌍하기도 한 법이랍니다.

좀 어떠세요, 당신은 사랑을 하고 있나요? 나는 그게 다른 해보다도 조금 더 궁금해졌어요. 어서 만나 뵙고 싶어졌고요.

*

어느덧 3월입니다. 사실 올해의 입춘立春은 2월 4일이었고 그날은 진즉 지났지만, 실질적인 나의 시간은 이제부터인 시작인 것 같습니다. 이제야 동쪽으로 향하는 기단氣團에 몸을 싣고 가고 있으니까요. 당신에게 드릴 여러 색의 꽃과 따뜻한 입김도 가득 챙겼어요.

거의 모든 세상 사람들이 계절이 바뀌는 것에 대해 ‘퍽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하시지만, 계절로서 다가간다는 건 여러모로 참 힘든 일이긴 합니다. 며칠 전에는 이상한파를 맞아서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어요. 칼바람이 몇 번 뺨을 할퀴기도 했지요. 서쪽으로 돌아갈까 싶은 생각이 울컥울컥 치밀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당신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믿으실지는 모르겠지만요.

글쎄요, 저는 다시금 궁금해지는 겁니다. 지금 당신은 사랑을 하고 계실까요? 그렇다면 올해의 ‘저라는 봄’은 꽤 쓸쓸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이상 한파를 만난 탓에 봄기운이 많이 약해졌다고 떠들 테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욕심은 어쩔 수 없는 겁니다. 만약에요, 그러니까 정말 만약에, 내가 당신의 곁으로 찾아갔을 때, 당신은 여전히 겨울이면 어떨까요. 나는 그런 상상을 하며 그쪽을 향해 날아가고 있습니다.

사실은 조금 그렇기를 바라고 있기도 하고요. 웃긴 일이요. 사랑의 전령이라고도 불리는 제가, 당신이 지금 외롭기를 바란다니요. 그렇지만 나는 나 혼자만으로 온전히 당신의 봄이고 싶은 겁니다.

겨울 내내 아무도 찾지 않았던 물웅덩이를 찾아 함께 갈까요. 꽁꽁 얼어 아무도 찾지 않았던 웅덩이 말이에요. 내가 입김을 불어 그걸 녹일게요, 그래서 봄이면서 웅덩이가 될게요. 당신은 나의 웅덩이에 발을 담그는 거예요.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간질이는 거예요.

어때요? 당신도 어느새 내가 조금은 보고 싶지 않나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내가 금방 갈게요. 웅덩이로, 향긋한 나물로, 꽃으로, 웅덩이로, 봄으로 갈게요.

 길 건너 그분들의 사연  세상의 모든 존재들, 나와 나의 주변 ‘것’들이 각자 간직한 마음과 사연. 그 사연들을 손 편지처럼 꾹꾹 눌러 담아 쓴 초단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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