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티스트의 선물: 아부심벨 소신전
로맨티스트의 선물: 아부심벨 소신전
2017.01.26 11:17 by 곽민수

아부심벨에는 지난번에 얘기했던 대신전 말고도 하나의 신전이 더 있습니다. 통상 소신전이라 불리는 곳입니다. 소신전은 대신전에서 북쪽으로 백여 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신전은 람세스 2세가 자신의 아내 네페르타리를 위하여 지은 신전입니다. 람세스 2세는 이 신전의 건축을 담당한 이들에게 역사상 지어진 그 어떤 신전들 보다도 아름다운 신전을 세울 것을 명하였습니다. 자신이 네페르타리를 사랑하는 만큼 그녀에게 아름답고 멋진 선물을 바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신전은 미학적으로 무척 훌륭합니다. 대신전이 ‘장엄한’, 웅장한’ 등의 형용사와 잘 어울린다면, 이곳 소신전은 ‘아기자기한’, ‘섬세한’과 같은 수식어가 적당할 것 같습니다. 전자들을 ‘남성적인 수식어’이라 말하고, 후자들을 ‘여성적인 수식어’라 말하면 누군가는 성차별적이라 말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현대적이 기준에 빚대어 본다면 분명히 성차별적인 면이 없지는 않겠지만, 저 남성과 여성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는 적어도 고대 이집트에서는 유효한 것이었습니다.

아부심벨 소신전 전경

분명히 소신전은 네페르타리를 위해서 지어진 것이지만, 면밀히 살펴보면 정말 네페르타리를 위한 신전인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신전 정면에는 절벽 속에서 걸어 나오는 것 같은 모습을 한 거대한 석상 6개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 거상들 중 둘은 네페르타리이지만, 나머지 넷은 또 람세스 2세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아내에게 바치는 신전에서도 자기 자신을 드러내려고 했던 이 사내의 자의식 과잉을 보고 있노라면 어쩐지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또 신전 하나를 통째로 부인에게 선물하려고 했던 그의 통 큰 성향에는 미소 짓게 됩니다.

실제로 네페르타리가 받은 대우는 이집트 역사를 통틀어서도 꽤나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 자기 자신만을 위한 신전을 가진 왕비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어쩌면 하트셉수트의 데이르 엘-바흐리 신전을 떠올리실 지도 모르지만, 하트셉수트는 왕비가 아니라 진짜 파라오였던 것을 감안하셔야 합니다. 굳이 예를 들자면 아멘호테프 3세가 그의 왕비 티이를 위해 누비아 지역에 지은 자그마한 신전 정도가 ‘오직 여왕만을 위한 신전’의 예가 될 것 같습니다. 역시나 람세스 2세는 열정적인 로멘티스트였던 것이 분명합니다.

소신전의 거상들

람세스 2세는 앞서서 말씀드린 것처럼 여러 명의 부인들과 많은 수의 후궁들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네페르타리의 위치는 독보적이었습니다. 그녀는 람세스 2세가 왕위에 오르기 이전부터 그와 함께 여러 기념비에서 등장합니다. 카르나크, 룩소르, 아비도스 등 람세스 2세의 기념비가 세워진 대부분의 장소에서 네페르타리는 람세스 2세의 파트너로 그려졌습니다.

람세스는 그녀를 무척이나 각별하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람세스 2세와 네페르타리 사이에는 최소한 4명의 아들과 2명의 딸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두 부부의 장남인 아멘헤르웨네페프(Amenherwenemef)가 있었고, 그는 25년 동안이나 황태자 자리에 있었지만, 결국 아버지 람세스 2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 왕위를 계승하지는 못합니다. 앞서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람세스 2세는 근 70년 가까이 왕위에 있었고, 결국 13번째 아들인 메렌프타(Merenptah)가 왕위를 계승합니다.

네페르타리. Nina de Garis Davies (1881–1965)의 그림

그런데 오래도록 황태자 자리에 있었던 아멘헤르웨네페프의 어머니이자, 왕에게 가장 사랑받는 왕비였던 네페르타르 본인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거의 없습니다. 그녀의 무덤에서 발견된 파라오 아이(Ay)의 이름을 바탕으로 그녀와 이 18왕조 시대의 파라오를 연결 짓는 이론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녀의 출신에 구체적인 기록은 전혀 없는 상태입니다.

이렇게 위대한 파라오에게 무척이나 특별한 대우를 받았던 왕비의 출신을 말해주는 기록이 없는 것을 가지고 많은 연구자들은 그녀가 평민 출신이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녀가 정말 평민 출신이었다면, 람세스 2세는 정말 굉장한 로멘티스트입니다. 신분의 차이를 극복하는 로멘스는 오늘날에도 드라마나 영화에서 진부할 정도로 자주 사용되는 설정이기는 하지만 그 가운데 어떤 것도 파라오와 평민의 사랑만큼 로맨틱한 것은 없습니다.

아부심벨 소신전의 구조는 대신전과 비슷합니다. 신전의 입구를 들어서면 여섯 개의 기둥이 있는 주실이 있고, 주실에 있는 세 개의 입구가 부실로 이어지며, 그 부실 뒤에는 지성소가 있는 형태입니다. 이곳 소신전에서도 람세스는 여전히 적들을 격파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대신전과 다르게 참으로 화사합니다. 그 가장 큰 예로, 주실의 기둥들의 기둥머리는 모두 기쁨의 여신이자 모든 종류의 여성성을 상징하는 하토르 여신의 얼굴로 장식되어 있고, 심지어는 람세스가 이 하토르 여신에게 꽃을 바치는 장면도 묘사되어 있습니다. 람세스 2세와 꽃, 어쩐지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만, 그가 열정이 넘치는 로맨티스트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아부심벨 소신전 평면도
소신전 내부의 하토르 기둥들

 

/사진:곽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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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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