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와… 동거해주실래요?
저와… 동거해주실래요?
저와… 동거해주실래요?
2017.01.26 15:36 by 제인린(Jane lin)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겠노라는 3포 세대. 이젠 절대 생소하지 않은 용어입니다. ‘쿨’하게 마다하기엔 너무 중요한 것들이어서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죠. 이는 비단 우리만의 얘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비혼(非婚) 인구가 1억 명에 달할 정도라는 중국의 선택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사진:kosmos111/shutterst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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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시선 

이 작은 방엔 나체 스케치가 너무 많아
한 남자친구가 우연히 문을 열고는
“이거 터키탕이잖아” 고함을 질렀어요
그는 몰랐던 거죠
내가 한 여름 내내 방문을 잠그고 지냈다는 걸
고독하고 실의에 젖어서
나는 이 욕실의 명실상부한 고객이에요
사지가 아주 긴, 날씬한 몸매와
탱탱한 엉덩이, 사선으로 깎인 어깨
가볍게 떨리는 사발형 유방
하나하나 근육마다 격정으로 넘쳐나는
나는 내 자신의 모델이죠
난 예술을 창조했고, 예술은 날 창조했어요
침대 위엔 그림책이 가득 쌓여있고
양말과 팬티는 탁자위에 벗어 놓고
유리병 속엔 개나리꽃이 시들어 버렸어요
바닥에는 색 바랜 황금빛
매트와 등받이가 어디에나 널려있어요
어느 구석에서든지 편안하게 잠들 수 있죠

그대 나랑 동거하지 않을래요?

 

 

중국의 대표적인 여류 시인 ‘이레이’의 ‘터키탕’ 중 일부입니다. 이레이는 당찬 여성으로의 주체적인 삶을 사는 대표적인 여류 시인으로 꼽히죠. 그녀의 작품 말미에 등장하는 ‘그대 나랑 동거하지 않을래요?’라는 한 마디는 시인 이레이가 가진 자유로운 성향과 중국인들이 가진 동거 문화에 대한 관대함이 동시에 깃들어 있는 것으로 분석되곤 합니다.

중국에서는 결혼보다 흔한 청춘남녀의 동거 문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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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시선

'친애하는 이여, 당신들은 동거 중인가요?'라고 게재된 만평. (출처:바이두 이미지 DB)

필자는 아주 보수적인 면을 가진 사람입니다. 학창시절에는 학생이라면 의당 학업에 열중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회사에서는 성실한 회사원이 되고 싶었으며, 서른을 넘기기 전에는 남들처럼 반듯한 가정을 이뤄야 한다고 생각해 왔었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튀지 않는 길’을 걷는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인생의 정도(正道)라고 여겼던 것이죠.

실제로 필자는 한동안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젊은이 같지 않네’라는 평가를 자주 받았고, 그것이 내가 남들을 구분 지을 수 있는 장점이라고까지 여겼으니 얼마나 갑갑하고 답답한 인물이었는지 짐작할 만 합니다.

(사진: 바이두 이미지 DB)

돌이켜 회상해보면 아마도 넉넉하지 않았던 가정 형편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을 잘 꾸려가고 싶었던 제 속의 욕망이 스스로를 ‘도덕적 우위’에 있는 인간으로 만들어내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번 호에서는 이 같은 필자의 보수적이었던 시선을 잠시 거두고,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판단을 배제한 채 현재 중국 젊은 연인들이 결혼 전 코스처럼 경험하는 ‘동거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사례 하나

지난 2006년 서울의 모 대학으로 유학 온 중국인 황씨(女, 당시 22)와 왕씨(당시 22)는 현재 베이징 싼리툰이라는 지역에 거주하며 소위 ‘잘 나가는’ 한국어 강사로 활약하는 유명한 커플입니다. 중국에 한류 붐이 불기 이전이었던 2000년대 중반, 서울 유학생활부터 시작한 두 사람의 동거는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죠.

 

당시 한국에서 어렵게 배워 온 한국어 실력 덕분에 두 사람은 이 지역에서 나름 유능한 강사로 대우받습니다. ‘기본급+인센티브’을 포함한 월급은 각각 한화로 무려 1000만 원 대에 이르고, 베이징의 집값이 지금처럼 고공행진을 하기 이전에 구매했던 싼리툰 소재의 아파트 시가는 지난해 이미 20억 원을 넘어섰다고 하죠. 이제 이들에게 남은 인생의 숙제는 ‘결혼’ 뿐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결혼 계획을 묻는 필자에게 황 씨는 “결혼은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사업은 때가 있는 것”이라고 딱 잘라 말합니다. 그리곤 요즘 새롭게 시작한 ‘온라인 강의’ 사업 얘기만을 늘어놓았죠.

 

동거 기간만 10년을 넘어선 황씨와 왕씨 커플. 필자 생각에는 이토록 긴 시간 동거했다면 이제야말로 결혼을 하거나, 이별을 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로 보이는데 말입니다.

 사례 둘

중국 서북쪽 끝에 자리한 ‘우루무치(乌鲁木齐)’에서 베이징 소재의 대학으로 유학을 온 뒤 지금껏 베이징에 거주하고 있는 청춘 남녀 우(31)씨와 설(女, 31)씨는 그들이 20세였던 200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동거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처음 동거를 결정한 계기는 베이징 유학생활 비용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집값을 아끼기 위해서였으나, 현재 회계사로 일하며 각자 월 1만 5천 위안(약 300만 원)의 월급을 받는 상황에서까지 결혼보다는 동거가 편하다는 이들에게 결혼은 머나먼 얘기처럼 여겨집니다.

 

매년 초 중국의 가장 큰 명절로 꼽히는 춘절을 앞두고, 양쪽 집안 어르신들의 결혼 재촉에도 불구하고 설씨는 답변합니다 “현재로써는 결혼 계획은 없으며, 집안과 집안끼리의 관계로 여겨지는 결혼보다는 개인과 개인과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동거가 더 편리하고 합리적인 관계라고 생각한다”고 말입니다.

 

가끔 이들 커플이 선호하는 편리하고 합리적인 관계가 ‘쿨’하다고 여겨지기도 하지만 편리하기만 한 관계가 쉽사리 불러오는 ‘소원함’은 어떤 식으로 풀어나가고 있는지 필자 혼자서만 우려하곤 합니다.

 사례 셋

말레이시아에 거주하는 화교 커플 종(28)씨와 짱씨(女, 26). 그들은 지난 2014년 겨울 결혼을 하기 전, 2009년부터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동거를 먼저 시작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중국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은 물론이고, 해외에 거주하는 화교들 역시 대부분 동거문화에 우호적인 시선을 가졌는데, 이들의 경우에는 두 사람이 동거 이전, 서로 다른 이성과 동거했던 경험을 공유, 법적인 부부가 된 이후에도 과거 동거인이었던 또 다른 이성과 연락을 하며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남편 종씨의 전 동거인이 현재는 온라인으로 한국 화장품 대리상을 하고 있는 덕분에 아내 짱씨는 남편의 과거 동거 여성으로부터 싸고 질 좋은 한국산 화장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사실에 큰 만족을 느끼고 있다고 얘기합니다.

 

내 남자의 전 여자와 내 여자의 전 남자를 인정하고, ‘쿨’하게 대처하는 것이 한없이 부럽다가도, ‘쿨’하지 못해서 오히려 지나치게 깔끔해 보이는 이별 뒤의 대처가 아직은 더 좋아 보이는 건 필자의 성향 탓일지 모릅니다.

(사진:바이두 이미지 DB)

 

이처럼 현재 중국에서의 동거 문화는 2030 젊은이들 사이에서 ‘편리하고 합리적인 관계’로 여겨지며 긍정적인 시선으로 크게 확대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기준, 동거 가구 수를 포함한 2030대 결혼 적령기의 미혼 가구 수는 약 8천만 가구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는데, 올해에도 결혼보다 동거를 선호하는 비혼족의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더욱이 오는 2025년에는 결혼하지 않은 비혼 청년 가구가 1억 가구를 넘어설 전망이죠. 그만큼 결혼 적령기의 남녀가 결혼보다는 자유로운 관계의 동거를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는 전 세계적인 경제 불황의 여파로 중국에서도 취업난과 결혼, 출산으로 이어지는 과정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이 증가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더욱이 청춘남녀의 ‘동거’에 대한 자유와 이를 문화로까지 여기는 긍정적 시각은 과거 동거와 자유로운 연애 방식 등으로 인해 중국 문학계에서 지탄의 대상이 됐던 유명 작가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우호적인 시각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양상입니다.

실제로 지난 1996년 뉴질랜드의 와이하키섬에서 중국의 한 유명 작가가 아내를 도끼로 살해하고 자신은 목을 매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당시 중국인들은 한 작가의 비극적 종말을 접하고 큰 충격에 휩싸인 바 있습니다.

약 9년째 동거를 하고도 결혼하지 않겠다는 남성과 결혼을 요구하는 여성의 모습을 담은 만평. (사진: 바이두 이미지 DB)

당시 비극적 결말의 주인공은 ‘구청’(1956~93년)으로 불리는 젊은 시인으로, 그는 앞서 문화대혁명 시기에 권력과 사회 이데올로기의 폐허를 고발하는 글을 적는 이로 유명세를 얻었던 인물이죠.

그는 문단의 주목을 받으면서도 세상의 부조리와 타협하기를 거부했고, 뉴질랜드로 이주한 뒤 오클란 대학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는데, 이후 와이하키섬에서 세상과 단절한 채 농사를 지으며 ‘검은 눈동자’, ‘수은’, ‘성’, ‘구청산문집’ 등을 연이어 발표한 바 있습니다.

그가 37세의 짧은 생을 마감하기 전 마지막으로 소설 한 권을 탈고했는데, 당시 작품인 ‘잉얼’은 우리나라에도 번역, 출간된 바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인문학 서적으로 꼽힙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가 자살을 결심하며 써내려간 유서와 같은 소설 속에는 아내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 그가 와이하키섬에서 아내와 아들, 그리고 연인 잉얼과 함께 ‘동거’했던 세세한 일상이 기록돼 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이자 작가의 연인이었던 ‘잉얼’은 국문학 전공의 여학생으로, 구청 부부가 평소 아끼던 소녀였으며, 아내 레이의 주선으로 뉴질랜드에 오게 된 이후 구청의 집에서 아내와 함께 기묘한 동거를 합니다. 물론 잉얼과 구청은 아내의 공공연한 시선 속에서 연인관계(불륜이겠죠)를 이어갔으나 이후 영주권을 얻은 잉얼이 또 다른 남자와 애정 도피 행각을 벌이게 되고, 그 사실을 알게 된 구청은 자살을 결심, ‘잉얼’을 탈고한 직후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의 이 같은 생애는 소설 ‘잉얼’에 그대로 담겼는데, 소설의 내용이 작가의 삶과 동일하다는 사실에 당시 그를 동경했던 수많은 팬들에게 그는 한순간 지탄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죠.

하지만, 2017년의 그는 중국인에게 더 이상 지탄의 대상이 아닙니다. 자유로운 연애를 실현한 유능한 작가이며 어지러운 세상에서 섬세한 삶을 살다 떠난 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에 대한 평가가 불과 20여 년 사이에 크게 변화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인들이 가진 연애와 사랑, 결혼과 동거에 대한 불필요한 시선과 편견이 크게 완화됐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필자는 이 같은 자유로운 사랑과 연애, 동거, 결혼 등의 문화에 여전히 익숙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의 삶과 사랑은 온전히 존중받아 마땅한 것이며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믿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부가 행했던 자유로운 연애와 동거 ‘현상’이 하나의 문화로까지 자리잡기을 수 있었던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니 말입니다.

중국에 대한 101가지 오해 언론에 의해 비춰지는 중국은 여전히 낡고, 누추하며, 일면 더럽다. 하지만 낡고 더러운 이면에 존재하고 있는 중국은 그 역사만큼 깊고, 땅 덩어리만큼 넓으며, 사람 수 만큼 다양하다. 꿈을 찾아 베이징의 정착한 전직 기자가 전하는 3년여의 기록을 통해, 진짜 중국을 조명해본다.

필자소개
제인린(Jane lin)

여의도에서의 정치부 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무작정 중국행. 새삶을 시작한지 무려 5년 째다. 지금은 중국의 모 대학 캠퍼스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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