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
우연
2017.01.31 14:02 by 오휘명
(사진: shutter.com/lisima )

“가까운 지하철역으로 가주세요.”

택시 안에선 그 한마디가 울려 퍼진 뒤 적막만이 흐르고 있었다. 처음 와보는 곳이었다. 곧 새로 시작할 업무계획 회의를 마치고 곧바로 집으로 퇴근을 하는 길이었다. 수린은 입고 있는 검은 색 스웨터의 안쪽에서부터 조금 전부터 불쾌함을 느끼고 있었다. 슬슬 식은땀이 나고 있었기 때문에.

도로 상황이 꽉 막혀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개인의 사정이 있기 때문인지, 택시 기사는 들릴 듯 말듯한 된소리들을 계속해서 뱉어대고 있었다. 누가 들어도 욕지거리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오래 전 개발이 된 지역이었는지 도로는 온통 울퉁불퉁했고, 차선 역시 매우 좁아 모든 차들이 곡예운전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사방에서 몇 분에 한 번씩 클랙슨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바로 그런 것들이 수린을 식은땀이 날 정도로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옆 차선의 트럭에 적재돼있는 무거운 화물들이 쏟아져 내려, 택시에 타고 있는 기사와 그녀를 순식간에 깔아뭉갤 수도 있는 일이었고, 해외 토픽 뉴스에서나 봤었던, 갑자기 땅이 꺼지는 현상인 싱크홀이 자신이 앉아있는 발 밑 도로에 뚫려서 까마득히 깊은 지하로 추락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낯설거나 혼잡한 곳을 걸을 때면 혹여나 가로수나 전봇대, 주변의 건물이 무너져 깔려 죽지는 않을까 걱정하곤 했었다. 누군가가 들으면 ‘그거 완전 막연한 걱정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그녀에게는 주변에 실재하는 ‘죽음의 가능성’들이었다. 그 가능성들을 맞닥뜨릴 때마다 등줄기와 배꼽 주변에선 식은땀이 흐르곤 했었다. 그녀가 땀에 젖어도 티가 많이 나지 않은 검은 옷들을 찾아 입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깨어있는 의식은 헛된 상상 따위는 이제 그쯤 해두라고 스스로를 타일렀지만, 그녀의 머리는 끊임없이 죽음의 장면들을 상상했다. 그녀는 그렇게 상상 속에서 수백 수천 번을 죽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 장면들 속에서 매번 그녀와 함께 죽는 남자가 있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이미 한 번 죽고 그것으로 끝난 남자였다. 그녀가 사랑했던, 그녀를 사랑했던 남자. 그는 죽음으로써 그녀에게 어떤 ‘불안의 문’ 같은 것을 열어두고 떠나갔다.

어떻게 보면 ‘확률의 문’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수만 명 중에 한 명이 걸리는 병이 하필 그 남자에게 발병했다. 심지어 젊은 사람에게는 더더욱 발병확률이 적은 병이었다. 남자가 그토록 적고도 적은 확률을 뚫고 죽음을 맞았을 때, 그의 옆에 있던 그녀에게도 언제든 죽음을 맞을 수도 있겠다는 확률의 문이 열려버린 것이었다.

“동전은 안 받을게요, 네. 안녕히 가세요.”

수린은 그렇게 말하곤 눈앞의 지하철역을 향해 분주하게 걸음을 옮겼다. 속도를 따라 불어오는 찬바람이 검은색 스웨터와 그 안의 식은땀 젖은 살결을 식혀, 돌발적인 오한이 일었다. 얼른 지하철을 타야만 했다. 지하철을 타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그나마 덜했다. 추돌사고의 위험이라든지, 낙하물에 깔린다거나 하는 것에 대한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에서였다.

*

수린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입고 있던 검은색 스웨터를 벗어던졌다. 식은땀 마른 뒤의 냄새와 섬유탈취제의 냄새가 묘한 비율로 섞여 코를 찔렀다. 피부에도 식은땀이 마른 뒤의 불쾌한 끈적임이 있었다. 그게 오늘따라 유난스러운 것 같았다.

“자다가 식은땀 같은 걸 흘리면 직접 부드러운 수건으로 닦아주곤 했었는데.”

그녀는 그렇게 혼잣말을 하며 화장실로 향했다. 세면대의 옆에는 일 년도 넘게 지난 지금도 남성용 면도기가 놓여 있었다.

눈을 감고 샤워헤드에서 뿌려지는 물줄기들을 맞았다. 여러 목소리들이 미간 언저리에서 떠돌았다.

“이제 너도 새로운 사람 찾아, 젊음이 너무 아까워.”

“산 사람은 살아남은 대로 살아야지. 네 인생까지 망칠래?”

“당신은 잘 살아. 그냥 재수가 지지리도 없는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해. 나를 딱 그 정도 사람쯤으로 생각해줬으면 좋겠어, 그래야 당신이 살아.”

친구와 주변의 인생 선배들, 어른들, 그리고 기구한 확률에 사로잡혀 죽음을 맞은 그의 목소리까지, 샤워기의 물줄기와 물방울처럼 무수한 말과 생각들이 두피를 때려댔다. 몸의 끈적끈적한 기운을 씻어내려 샤워를 시작했는데, 이제는 머릿속이 끈적끈적한 것들로 들어차는 것 같았다.

수린은 샤워를 마치고 나오며 다시 한 번 그 남자의 면도기를 쳐다봤다.

*

누군가의 죽음을 내어주고 죽음의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만을 대가로 받은 것만은 아니었다. 누군가의 죽음은 잦은 울음을 가져다주었다. 일상적 울음, 별것도 아닌 것처럼 매일을 운다는 것.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상상하기 힘든 일일 수도 있었겠지만 수린에겐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별을 해야만 했다는 서러움과 아쉬움 같은 것들로 인해 그녀는 매일을 울었다. 울어도 뱃속의 덩어리가 풀리지 않을 땐 갈 곳이 없는 편지를 쓰거나 문자 메시지를 적어 보내곤 했다. 반쪽만 남은 사람이 웅크리고 앉아 다른 반쪽을 그리워하는 편지를 쓰는 것은 얼마나 초라해 보이는지.

보내는 사람은 있어도 받는 사람이 없는 문자 메시지였다. 메시지에는 일상적 그리움과 슬픔에서 비롯된 혼잣말의 문장들이 빼곡히 들어차곤 했다.

‘오늘은 미팅이 있어서 난생 처음 상암 쪽에 다녀왔어. 내가 저번에 말했잖아, 나는 네가 멀리 가버린 뒤로, 낯설고 혼잡스러운 곳에 가면 나도 모르게 몸을 벌벌 떨고 땀을 흘리곤 한다고. 가까스로 택시를 잡아서 지하철을 타러 갈 수 있었다니까. 예전에 내가 뭔가를 무서워하거나 악몽을 꾸고 났을 때면, 넌 내 땀을 정성스레 닦아주곤 했는데, 기억 나?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오늘따라 네 생각이 더욱 유난스러운 거야. 보고 싶어. 살고 싶어. 그러면서도 죽고 싶어. 어떤 사고를 당해서 죽게 될까 겁을 내면서도, 그 사고로 인해 내가 죽게 되면 널 만나러 갈 수 있게 되는 게 아닐까 기대를 해보기도 하는 거야. 거기는 어때? 너도 내가 보고 싶지 않아? 할 수 있으면 나도 좀 거기로 데려가줄래? 조금은 겁나기도 하겠지만, 그땐 네가 또 내가 흘리는 식은땀들을 닦아줄 테니까 괜찮을 것 같아. 나 좀 데려가 줘, 보고 싶어. 보고 싶어서 죽고 싶어.’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두려움에 떨면서도 확고한 뜻을 품고 수린은 메시지를 작성했다. 오래 전 말소됐을 전화번호를 향해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었다. 메시지를 보낼 때마다 답장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확률의 문’은 조금이나마 열려있을 것이라는 게 그녀의 믿음이었다.

수천 수억 분의 일의 확률을 뚫고, 전파를 타고 날아가던 메시지가 하늘의 끝을 향해 치솟는 일이 일어나기를. 그런 사고 같은 우연으로 내 마음이 그에게 닿기를. 그런 믿음에서였다.

 길 건너 그분들의 사연  세상의 모든 존재들, 나와 나의 주변 ‘것’들이 각자 간직한 마음과 사연. 그 사연들을 손 편지처럼 꾹꾹 눌러 담아 쓴 초단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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