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일본은 평화 멍청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지금 일본은 평화 멍청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지금 일본은 평화 멍청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2014.10.06 12:00 by 조철희
“여러분들 앞에서 부복하여 사죄해야 한다고 늘 소원해 왔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의 진실을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여러분께 사죄하지 않고는 죽을 수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차 대전 당시 특공대에 자원입대 했던 한 일본인의 사죄 편지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에 전해졌다. 피해자들은 용서로 답했지만, 이 광경을 마주한 주한일본대사관은 여느 수요일처럼 묵묵부답이었다.

길원옥(좌), 김복동(우) 할머니가 제1146차 수요시위에 참석해 뒤로 보이는 평화비(위안부 소녀상)와 나란히 앉아 있다


지난 1일 정오, 주한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서울시 종로구 율곡로22길)에서 제1146차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가 열렸다. 평화나비·희망나비 등 대학생·청년단체를 비롯해 시민 150여명이 함께한 가운데, 일본인 목사 무토 키요시(88) 씨는 사죄 편지를 전해와 용서를 구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과거 전쟁 중, 일본 천황에 혈서를 써 특공대에 지원해 자폭훈련을 받았다.

무토 씨는 당초 직접 수요시위 현장을 찾을 예정이었으나, 지난해 받은 엉치뼈(골반뼈) 수술 후 경과가 좋지 않아 오지 못했다. 그가 회장으로 있는 한일기독교협의회 소속 시다 토시츠구(75) 씨 등 3명의 목사가 대신 찾아 사죄의 말과 함께 편지를 전했다. 편지는 이들과 동행한 하요한 목사가 우리말로 옮겨 김복동·길원옥 할머니 앞에서 대독했다.

(왼쪽부터) 이날 통역을 맡은 하요한 목사와 시다 토시츠구, 카가미 카나메, 시바타 치에츠 목사


“패전 직후부터 지금까지 일본을 지키려고 하는 정치가·사상가·단체 등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과거 저는 혈서 탄원 특공대원이었기 때문에 그 취지를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여러분을 괴롭게 했던 그 세력의 최전선에 섰던 것을 생각하면 그렇기 때문이라도 전력으로 사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여러분을 괴롭혔던 과거의 일본의 폭력을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무토 씨는 편지에서 아직도 우익 성향이 득세하는 일본 국내 세태를 꼬집는 한편, 자신도 한때 이들과 같은 입장에 섰던 것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그는 계속해서“일본에 두 개 밖에 없는 소녀상의 모형을 저희 교회의 보배로 삼고 있는데, 내년에 그것을 가져가도록 하겠다”고 전하며 건강을 회복해 내년에는 꼭 직접 찾아 사죄할 수 있길 바랐다. 그가 목사로 있는 후쿠시마현 호소누마 교회에는 위안부 소녀상 모형이 있는데, 강단에 설 때마다 사죄하는 마음으로 여기에 기도한다고 한다.

“이번에 역사의 산 증인들이신 여러분과 직접 만나 뵙고 사죄를 드릴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에,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서 여러분께서 받으셨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인권의 침해, 지금까지도 치유되지 않는 심신의 고통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를 드립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이번에 수요시위 현장을 직접 찾은 시다 씨는 위와 같이 말하며 무토 씨의 편지를 전하기 앞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 앞에서 사과의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도쿄 근교 치바현의 교회 목사로, 한일기독교협의회의 부회장을 맡고 있다. 요코하마의 한 교회 목사인 시바타 치에츠 씨도 “(위안부 피해자들이) 살아 계시는 동안에 확실히 일본이 사죄하면 좋겠다. 일본에 돌아가면 먼저 교회분들에게 알리고 또 공유해서 진짜 우리들이 두 번 다시 이런 일을 행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새롭게 해 나가고 싶다”라고 말하며 이번 방문의 개인적 의미를 되새겼다.

김복동 할머니가 용서의 의미로 '나비 배지'를 달아주고 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로 이번 수요시위에 참석한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이, 일본 정부가 아무리 나쁘다 해도 일본 국민들이 나쁘지는 않다”고 말하며, “일본에 돌아가면 제발 한 사람에라도 더 알려서 하루 빨리 이 할매들이 다 죽기 전에 이 원한을 풀어주길 바란다”는 당부의 말도 덧붙였다. 김 할머니는 길원옥 할머니와 함께 이들의 사과에 용서의 의미로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나비 배지’를 직접 달아주었다.

이날 수요시위에서는 일본인들의 사죄·연대 발언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한국을 방문한 9명의 일본인 중년 여성들도 참석한 가운데, 이들을 대표해 스게노 마치코 씨가 마이크를 이어받았다.

스게노 마치코(오른쪽) 씨가 이날 수요시위에서 사과와 연대의 발언을 하고 있다


“전시 성노예였던 여성들에게 일본 정부는 정식으로 사죄하고 배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들의 힘이 부족해서 죄송합니다. 어제 나눔의 집에서 할머니들을 뵈었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해결됐으면 좋겠다는 말씀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중략) 저희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할 수 있는 한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그는 이번이 수요시위 두 번째 참여라고 한다. 스게노 씨 일행은 지난 9월 30일 입국해 2박3일간 생존 일본군위안부 할머니 후원시설인 나눔의 집(경기도 광주)과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서울 성산동), 윤동주문학관(서울 청운동), 백범김구기념관(서울 효창동) 등을 방문하고 돌아갔다.

스게노 씨의 용기 있는 발언에 김복동·길원옥 할머니는 박수와 미소로 화답했다. 그제야 이날 수요시위에 참석한 일본인들의 긴장도 조금은 누그러진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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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을 수놓은 노란 나비모양의 피켓 속에서 할머니들이 보인 미소처럼, 수요시위의 분위기는 진중하되 경직되고 무겁지는 않았다. 프랑스 소르본대 철학과 교수이자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 연대활동에 힘을 보태고 있는 정 살렘 교수도 이날 수요시위에 처음 참석해 아래와 같이 소회를 밝혔다.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과 함께하면서 정말 한민족의 역동성이 대단하다고 느낍니다. 이렇게 슬프고 끔찍한 역사를 경험하고도, 그리고 이렇게 쳐다보지도 않는 일본대사관의 세태를 보면서도 오히려 ‘바위처럼’을 부르며 춤을 추는 이런 여러분의 모습에 너무나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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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한국정신대였던 여러분께.

먼저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 찬양합니다. 금번 여러분들 앞에서 부복하여 사죄해야 한다고 늘 소원해 왔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의 진실을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여러분께 사죄함 없이는 죽을 수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여러분의 진실을 마치 없었던 것으로 해버리려고 하는 세력들이 지금 일본에는 날이 갈수록 더 강해지고 있습니다. 그 세력들을 생각할 때, 저는 사죄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욱더 많은 여러분의 소리를 전 세계에 전파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들이 한국과 일본이 새롭게 우정을 확립하는 일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하옵니다만, 작년부터 엉치뼈를 교체하는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금년 9월까지는 회복될 것을 희망하며 참가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하지만 좌우엉치뼈수술을 6번이나 받았기 때문에 수술 후유증은 그다지 수월하지 않았습니다. 입원생활 중에는 9월이 되면 괜찮아졌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졌습니다만, 생각한 것 보다 회복이 늦어졌습니다. 여기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드시 죽기 전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여러분께 깊이 사죄를 드리면 안 된다고 수술 중에도 계속 기도해 왔습니다.

지금 일본은 평화 멍청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과거 역사적 사실 등은 전혀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 현실입니다. 더불어 패전 직후부터 지금까지 일본을 지키려고 하는 정치가 사상가 단체 등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과거 저는 혈서 탄원 특공대원이었기 때문에 그 취지를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여러분을 괴롭게 했던 그 세력의 최전선에 섰던 것을 생각하면 그렇기 때문이라도 전력으로 사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여러분을 괴롭혔던 과거의 일본의 폭력을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과거 일본의 폭력이 무엇인가 하면 가령 저는 부대의 관장대리(觀長代理)를 했었는데요, “무토, 오늘 신병이 입대하니 인사를 하라”는 명령이 떨어져서 ‘무슨 인사를 하면 좋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을 때, 갑자기 높은 곳에 저를 세우고 또 제 앞에 신병 한 사람 한 사람을 기립시키더니 양쪽 뺨을 후려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입대 인사였습니다. 똑같은 것이 얼마나 한국 내에서 횡행했겠습니까. 국립독립기념관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일제 홀 출구에 일본병에 대한 설명 플레이트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개돼지 같은 일본병’이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그것은 사실입니다. 깊이 사죄드립니다.

금년에는 찾아뵙고 사죄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내년에는 89세가 됩니다만, 반드시 하나님께서 여러분 앞에 데려다 주실 줄 믿습니다. 일본 대사관 앞에 평화의 비, 소녀상의 모형을, 일본에는 두 개밖에 없습니다만 저희 교회에 보배로 삼고 있는데, 내년에 그것을 가져가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기도를, 이스라엘민족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셨던 것처럼 간곡히 들어주시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만나 뵐 그날까지 건강하십시오.

2014년 9월 25일 한일교회협의회 회장, 후쿠시마(福島) 코오리야마(郡山) 호소누마(細沼) 교회 목사 무토 키요시(武藤 清) 올림

 

필자소개
조철희

늘 가장 첫번째(The First) 전하는 이가 된다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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