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을까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을까
2017.03.02 12:19 by 지혜

신선미 쓰고 그린, <한밤중 개미 요정>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의 감정은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다. 불편하고 불안했다. 눈물이 쏟아졌다. 감격과 감동이 빠진 나머지의 눈물이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은데 단단히 발이 묶였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던 것 같다. 익히 보고 들었던, 설렘과 기쁨에 가득 찬, 당연한 미소는 없었다. 그러면 안 되는데 자꾸만 불편하고 불안하니까 그게 또 불편하고 불안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반응이었다. 지금껏 인생 전부를 이기적으로 살았는데 한순간에 이타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다. 그런 부담을 기꺼이 받아들일 이유가 부족했다. 결혼을 했다는 것, 여자는 언젠가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 일방적인 주입이었고, 출산과 육아는 경이롭고 훌륭한 일이라는 것은 너무 성의 없는 평가였다.

엄마의 자리를 완전히 받아들이지도 그렇다고 단호하게 거부하지도 못하고 있을 때, 이 문장들을 만났다.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을까?' 

나는 그 찰나의 햇살이 내게서 급히 떠나가지 않도록 다급하게 자판을 두드렸다.

 

'자기가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살고 싶어서.'

그렇게 써놓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누구도 본인의 어린 시절을 또렷하게 기억하지는 못하니까, 특히 서너 살 이전의 경험은 온전히 복원될 수 없는 거니까, 자식을 통해 그걸 보는 거다. 그 시간을 다시 겪는 거다. 아, 내가 젖을 물었구나. 아, 나는 이맘때 목을 가눴구나. 아, 내가 저런 눈으로 엄마를 봤구나, 하고. 자기가 보지 못한 자기를 다시 보는 것. 부모가 됨으로써 한 번 더 자식이 되는 것. 사람들이 자식을 낳은 이유는 그 때문이지 않을까?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79쪽~80쪽, 창비, 2011 )

(사진: HTeam/shutterstock.com)

서점에서 우연히 집어 든 소설을 순식간에 읽어 내려갔다. 내 안에 생긴 어떤 존재를 마음 놓고 사랑할 용기가 생겼다.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살 수 있다니, 늘 후회를 하며 시간을 돌리고 싶었던 나에게 아주 매력적인 이유가 되었다. 열심히 엄마 노릇을 했다.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를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으니까.

아이를 낳기 전에는 자식과 나는 완전히 분리된 서로 다른 사람이라 생각했다. 자식에게 자신을 이입하고 몰입하는 엄마들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직접 살아보니 저절로 그렇게 되어버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에게 너무 미안한 하루가 있다. 우리는 트램펄린을 타러 갔었다. 또래 친구들은 하늘을 날 듯 잘도 뛰는데 아이는 진동이 거의 없는 테두리만 빙빙 돌았다. 조금 있으니 그것도 무섭다고 구석에 가만히 앉아 구경만 한다. 답답했다. 거세게 손목을 끌었다. 날 선 말도 튀었다. “넌 저것도 무서워서 못 타잖아” 등 뒤로 서럽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겨우 네 살이었다. 아이는 잘못하지 않았다.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화가 났고 화를 냈다. 너는 나와 너무 닮았다.

울렁거리는 트램펄린이 너무 무서웠다. 친구들이 텅텅 소리를 내며 위아래로 신나게 흔들릴 때 나는 구석에서 가만히 그 애들을 기다렸다. 나도 저리 뛰고 싶은데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심심했고 부러웠고 우울했다. 땅 밑까지 꺼질 듯 깊숙이 내려왔다가 하늘까지 단번에 치솟는 트램펄린 위에 어린 몸들처럼, 겁 없이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안전한 모범생이었다. 영 못마땅했지만 벗어날 수도 없어서 그냥 그렇게 살았다.

그러니 나를 닮은 아이는 고쳐야 할 것이 많다. 나의 약점이 아이에게서 그대로 보이니, 더 다그치게 된다. 여리고 보드라운, 좋기만 한 시절인데 나는 아이를 자꾸만 울렸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적절한 순간에 나타나는 책들이 있다. 아마 그 날 아침도 열심히 ‘훈육’했을 것이다. 속상한 뒷모습을 두고 어린이집 버스에 올라탄 아이를 내내 생각하던 무거운 오후였다. 서점에서 우연히 집어 든 그림책 한 권이, 나를 엄마로 만들었던 그 문장들을 다시 불러냈다. 그리고 알았다.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살고 싶어서’

<한밤 중 개미 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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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아이와 아픈 아이를 돌보는 엄마가 보인다. 엄마는 뜬 눈으로 밤새 아이 곁을 지켰을 것이다. 피곤이 무거워 잠이 들었다. 한편 아이는 개미 요정의 작은 소리를 듣고 일어나 앉는다. 개미 요정은 어린아이들의 친구이다. 엄마도 개미 요정과 늘 함께여서 행복한 시절이 있었다. 어른이 되면서 조금씩 멀어져 지금은 잊고 있지만. 개미 요정이 아이를 통해 전한 꽃반지를 보고 엄마는 기억해낸다. 그리고 그날 밤, 엄마는 아이와 함께 개미 요정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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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엄마와 현재의 아이가 마주 앉은 이 장면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사는 것’의 진짜 의미였다.

세상에 나온 아이는 나를 닮아 있었다. 아이를 통해 ‘내가 알고 있는 나’를 되새겼다.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예민하고 겁이 많은 눈을 볼 때마다 실망했다. 나보다 더 나은 생을 살았으면 해서, 씩씩해져야 한다고 말하고 또 말했다. ‘내가 모르는 나’는 보지도 못하고. 다시 사는 것에만 욕심을 부리느라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지나쳤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보다 내가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크다고 말하는 기특한 입술을, 길 가던 어떤 강아지도 귀엽다 조심히 어루만지는 사려 깊은 손길을, 서늘한 새벽 안아 달라 품 안에 파고드는 따뜻한 체온을 나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나의 아이처럼 나도 예뻤다. 내가 보지 못한 나의 모습을 다시 보는 일, 내가 너를 낳기로 결심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음을 이제야 안다. 아이를 바꾸려 들지 않을 것이다. 물론 쉽지 않겠지. 나를 닮은 너에게 실망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나를 닮아 예쁜 너만 듬뿍 바라보겠다. 그림책 속 한 장면처럼.

  Information

<한밤중 개미 요정> 글·그림: 신선미 | 출판사: 창비 | 발행: 2016.11.18 | 가격: 13,000원

 

/사진: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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