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큰거 달마도 잘도 족다게(제주, 큰 것 같아도 완전 좁다)
제주, 큰거 달마도 잘도 족다게(제주, 큰 것 같아도 완전 좁다)
2017.03.08 13:14 by 이도원

‘제주에 산다’를 가장 확실히 느끼는 두 가지 순간이 있다. 내 주민등록증 주소가 ‘제주특별자치도’로 변경된 것, 그리고 제주 토박이들의 사투리를 듣고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때이다.

주민등록증. 행정상의 주소가 바뀌었을 뿐인데 나에게 주는 의미는 크다. 가장 직접적인 건 역시 ‘도민 할인’ 찬스! 결혼 전 카멜리아힐, 성산일출봉 등 대표적인 제주도 관광지를 찾을 때 마다 남편은 자신의 주민등록증을 꺼내 도민할인을 받았다. 그때면 ‘이 남자는 정말 제주 사람이구나’란 생각을 하며 부러워하곤 했다. 하지만 이젠 내가 먼저 주민등록증을 내밀며 말한다. “도민할인 되지예?”

카멜리아힐에서 찍은 사진. 제주도의 대부분 관광지에서 제주도민은 입장료를 할인받거나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다음은 사투리. 제주에서는 당연히 토박이들과 대화할 일이 자주 생긴다. 남편에게 듣던 순화된 사투리에 비해 이들의 말은 당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제주로 이사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집에 택배기사가 찾아왔다.

“택밴데예~ 집에 이수광?”

“네? 네 뭐라고요?”

“택밴데예~ 집에 이수광~?”

“네? 여기 이수광씨 집 아닌데요?”

상호간의 이해할 수 없는 대화 후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었다. 지금은 제주 생활 3년차. 이젠 토박이 택배기사와 간단한 안부를 물으며 인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의 여유로움이란. 당황했던 예전을 떠올리면 가끔은 이런 내 모습에 어깨를 으쓱하기도 한다. 제주에 산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은 이런 소소한 일상으로부터 온다.

우리 부부는 이런 순간의 사진들을 SNS에 올리고 있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행복해 보인다’, ‘여유로워 보인다’…

SNS 사진첩을 꾸미기엔 제주만한 곳이 없다.

제주에 사는 것, 물론 행복하다. 남편이 태어나 자란 곳에서 둘만의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 가는 것도 즐겁다.

하지만 그만큼 어려운 것도 있다. 남편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는 것. 어느 날, 동네 세탁소에 맡긴 옷을 찾으러 갔다. 분명히 옷을 맡겼는데, 밀린 세탁물이 많았는지 주인 아주머니가 옷을 잘 찾지 못했다.

“이디 아닌디 잘못 온거 아니?”(여기 아닌데 잘못 온 거 아니야?)

“아닌데~ 여기에 맡겼어요~”

“아닌거 달믄디. 나는 그런 옷 받은 적이 어서~”(아닌거 같은데. 나는 그런 옷 받은 적이 없어)

아주머니는 세탁물이 없다고 계속 우겼고, 나는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보통의 경우 세탁물을 확실히 맡겼다고, 계속 찾아보라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곳은 남편과 남편의 부모님이 살아온 곳이기 때문이다. 순간적인 감정으로 표출해버린 말 한마디가 이곳에서는 오해를 살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참아야만 했다. 세탁물은 다음날 다시 찾아가 가져올 수 있었다.

사무실에 신청한 전기공사는 한 달이 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이 또한 마찬가지. 서울과 달리 지역 도시는 ‘세상 참 좁다’는 말이 자주 들린다. 길 가다 아는 사람을 만나는 일도 잦고, 몇 다리만 건너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도 한다. 제주도도 마찬가지다. 다만 도시 단위가 아니라 섬 단위라는 것이 문제다. 제주에서 마주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편, 그리고 남편의 부모님과 오랫동안 알고 지낸 이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육지에서 섬으로 건너온, 그냥 건너온 것도 아니고 ‘시집’을 온 입장에서, 내가 느끼는 그대로를 이들에게 요구하기는 매우 어렵다. 서울에서는 이런 고민을 전혀 해보지 않았다.

누군가는 말한다. 서울생활은 무미건조하고 정도 없다고. 하지만 때로는 그런 무미건조함이 그립다. 나를 보며 어디서 왔고, 누구와 결혼했고, 올해 나이는 몇 살인지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냥 손님으로 대해주는 것. 제주 생활 3년차라지만, 아직은 부당하다 느꼈을 때 당당하게 내 입장을 말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제주도민이 된다는 것은 이런 것에도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진 속 모습은 마냥 행복해 보이지만, 이런 순간들이 힘들게 느껴질 때면 부모님이 있는 집이 괜히 그립다.

바람에 모두 실어보내련다.(사진: AzmanMD/shutterstock.com)

제주의 어느 지인이 나에게 해준 이야기가 있다. 제주에 바람이 많은 이유는 소문을 쉽게 퍼뜨리려고, 그리고 힘든 일은 바람에 실어 보내 잊기 위함이란다. 언제나 좋은 것이 있으면 아쉬운 부분도 있다. 말은 줄이고, 좋은 부분만 보면서 진짜 제주도민으로 살아가련다!

 

/사진:이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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