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칭칭나네~(후편)
세미나 칭칭나네~(후편)
2017.03.08 15:43 by 시골교사

신청도, 진행도, 통과도 까다로운 세미나(‘세미나 칭칭나네’편 참고). 역시 첫 번째 세미나는 보기 좋게 떨어졌다.

내가 떨어진 세미나는 금융 내용을 통계에 접목시키는 거시경제학 분야로, 담당 교수는 독일 경제학에서 유명한 룩스(T. Lux) 교수. 금융을 통계학 혹은 물리학과 접목시켜 이론을 발전시키는, 무려 이 분야의 신개척자였다.

늘 비어 있던 자리, 그곳은 가시방석이었다

명성에 걸맞게 그가 진행하는 세미나는 내용자체가 어려웠다. 웬만한 수학적 관심과 분석능력 없이는 참여할 수 없다. 주제발표 외에 소주제를 하나 더 부과한다는 것도 다른 세미나와 다른 점이다. 주제 하나만으로도 어렵고 벅찬데 소주제까지 준비‧발표해야 하니, 학생들이 기피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아, 남들이 꺼리는 건 다 이유가… (사진:Monkey Business Images/shutterstock.com)

공포의 대상으로 소문나 참여가 워낙 낮다보니, 세미나 참여에 전제조건을 붙이지 않는다. 점수 제한도 없고, 세미나 참여 전에 이수해야 할 과목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자리는 항상 남아돈다. 독일 학생들도 피해가는 게 바로 이 과목이었다. 결국 빈자리를 차지하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다. 이곳저곳 세미나 자리를 얻지 못한 유학생들이 그 주인공. 그 중 3분의 1이상이 중국 학생들이다.

나 역시 참여를 놓고 많은 고민을 했다. 어렵다는 말도, 점수도 짜다는 말도 지겹도록 들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늘 비어있는 세미나 자리가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보기 좋게 떨어진 첫 세미나

나에게 부여된 주제는 경제 학술지에 실린 논문을 읽고 주가를 예측하는 공식을 분석하는 내용이었다. 그 공식이 어떻게 도출된 것인지 그 과정을 밝혀내야 하는 것. 과제물 제출 마감일이 임박했지만, 분석은 고사하고 논문 내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결국 ‘베끼기 신공’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각주 하나 없이 송두리째 책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제출했다.

논문 두 가지만 기억하세요. ctrl C, 그리고 V (사진:Sielan/shutterstock.com)

하지만 발표까지 그렇게 할 수는 없는 법. 학생들과 교수 앞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고 싶진 않았다. 발표 한 달 전부터 공식 분석을 위해 물리책과 수학책을 들쳐보며 찾고 또 찾았다. 그리고 천신만고 끝에 공식에 생략된 과정을 알아낼 수 있었다. 발표준비에 가속이 붙고 자신감도 생겼다. 보고서야 기한 내에 제출했으니 됐고, 이해력은 발표 때 보여주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발표 당일! 30분짜리 발표를 40분가량, 시간을 초과해가며 열심히 설명했다. 교수도 나의 설명에 흐뭇한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교수가 던진 세 개의 질문 중 두 개에 대해서 정확하게, 그리고 자신 있게 답변 했다. 교수 역시 만족하는 눈치였다.

발표를 마치고나니, 은근히 점수가 기대됐다. 대부분의 중국 친구들은 이 과목에서 4점을 받았다고 했다. “풋, 나는 그들보단 좋은 점수를 받겠지”라는 생각에 휩싸였다. 그러던 나는 이 세미나에서 보기 좋게 떨어졌다.

 

| 납득할 수 없는 세미나 결과

세미나 점수를 인터넷으로 확인한 순간, 어의가 없었다. 곧바로 이의를 제기하러 교수 연구실로 향했다. 얼마나 억울하고 믿기지가 않던지! 그동안 세미나 준비를 위해 투자한 시간과, 발표를 위해 연습에 쏟았던 정성을 생각하니 억울해서 눈물이 줄줄 흘러 내렸다.

기대가 클수록 실망은 큰 법 (사진:Ivelin Radkov/shutterstock.com)

먼저 세미나 진행을 보조했던 견습 교수(Junior Professor)를 찾아갔다. 그 교수는 “당신이 쓴 세미나 보고서는 전혀 형식에 맞지 않다”고 했다. 서론도, 결론도, 공식도출과정도, 각주 표시도 전혀 없다는 것이다. 평가 반영비율이 50%인 보고서가 형편없으면 발표를 잘해도 점수를 줄 수 없다는 게 견습 교수의 논리였다.

그래, 나도 인정한다. 서론을 쓰지 않았고 결론도 내리지 않았다. 주제가 수학 공식도출인데 굳이 서론, 결론을 나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부록에 공식 도출과정을 적어야 하는데 나는 본론에 그저 공식만 달랑 적어 냈을 뿐이다. 솔직히 (그때까지는) 이해가 안 되는 과정을 어떻게 적어내랴!

부록이라는 걸 사용할 줄도, 각주 다는 법도 아예 몰랐다. 이런 게 다 감점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추후 다른 세미나를 통해 알았다. 각주 없는 인용은 학문세계에서 사형죄에 해당한다는 것을…)

그렇다. 나는 보고서 작성요령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물론 그 전에 중국 친구들이 쓴 보고서를 보긴 했지만, 설마 그런 형식적인 틀이 그렇게 중요할지는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내가 납득되지 않는 건 세미나 진행 과정이다. 만약 써낸 보고서가 형식에 맞지 않았다면 아예 받지를 말든지, 형식에 맞춰 다시 써오라고 하던지, 아니면 아예 발표를 포기하라고 처음부터 말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 견습 교수는 말 한마디 해주지 않았다. 다른 조교들처럼 중간에 목차를 봐주지도 않았고, 발표 전에 보고서 틀을 잡아주지도 않았다. 유고슬라비아 출신에,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온 사람이라 독일의 세미나 진행과정을 모른 것인지, 아님 원래 게으르고 성의없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허허허, 유감스럽지만 탈락이에요.” (사진:Adam Gregor/shutterstock.com)

너무 화가 난 나는 그 자리에서 그에게 따졌다.

"내가 한 달 동안 그 공식을 이해하기 위해, 발표를 위해 얼마나 애쓰고 노력했는지 알아요? 최소한 보고서를 제출할 때 미리 검토해서 발표 여부를 알려주는 것이 당신 역할 아닌가요?"

이런 내 항변에 그는 "유감스럽다(Tut mir sehr Leid)."는 말만 되풀이했다.

내 항의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나는 직접 룩스 교수를 찾아갔다. 교수는 내가 떨어졌다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의아해 했다. 그리고 내 과제물을 본인이 직접 확인해 보겠다고 했다. 교수는 세미나에서의 나를 기억하고 있었고, 그 역시도 내가 떨어졌다는 것을 못 믿는 눈치였다. 그 다음 주 면담 시간에 나는 희망을 갖고 그의 연구실을 다시 두드렸다. 하지만 교수로부터 들은 대답은 똑같았다. 이미 아랫사람이 결정한 내용을 번복할 수 없었는지, 그 또한 나에게 상당한 유감을 나타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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