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내 인생을 180도 바꿨어요.”
“음식, 내 인생을 180도 바꿨어요.”
2017.03.28 06:30 by 스타트業캠퍼스

| 3人3色 인터뷰 

습관적으로 아침 식사를 거르던 김 부장이 아침을 챙기기 시작했다면? 인스턴트 식품만 찾던 이 대리가 갑자기 시골밥상을 고집한다면? 김 부장과 이 대리의 일상의 변화가 찾아왔단 얘기다.

서양 속담에 ‘You are what you eat’이란 말이 있다. 음식이 단순한 ‘끼니’ 이상이란 말이다. 이는 수치로도 증명된다. 국내 직장인의 약 26%가 아침을 거른다는 통계(보건복지부, 2015)와 3040 남성 직장인의 44%가 비만이라는 조사(건강보험공단, 2015)는 일에 매인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이다. 

그렇다면 음식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력은 어디까지일까? 음식을 통해 인생의 이정표를 바꾼 3인의 이야기를 통해 음식과 라이프스타일의 상관관계를 들여다봤다. /편집자 

 

| ‘간절함이 구워낸 특별한 빵’ 채식주의자를 위한 베이커리 만드는 최태석 파티쉐

‘아,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갈라진 손톱과 떨리는 손을 힘겹게 들어 밥 한술을 입에 넣는다. 반찬은 오직 김 하나. 그 외엔 뭘 먹어야 할지 물어볼 사람도, 찾을 방법도 없었다. 1990년의 어느 날, 최태석(51) 파티쉐가 채식을 결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일이다. 

최태석 파티쉐

최태석 파티쉐는 국내 최초의 ‘비건’(Vegan‧엄격한 채식주의자) 파티쉐이자, 한국베지푸드지도자협회 이사다. ‘채식주의’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1990년, 당시 25세의 그가 채식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의외로 단순했다. 

“우연히 인도 '산트 타카르씽' 선생의 강연을 듣다가 번개 맞는 느낌을 받았어요. 예상치 못한 깨달음을 얻게 된 거죠. 인간이 자신의 고통에 취약하듯 동물도 그럴 것이라고. 그때부턴 ‘육식’을 먹는 행위가 남다르게 다가오더라고요.” 

이후 몇 주간 밥과 김만 먹어 영양 불균형을 겪게 된 최 파티쉐. 건강 사태가 급속히 나빠지자 살길을 찾아야 했다. 그가 직접 조리에 나선 이유다. 과정은 험난했다. 손에 잡히는 대로 나물을 골라 무쳐보기도 했고, 각종 해초류를 섭렵하기도 했다. 메뉴 하나하나가 모두 새로운 영역. ‘자신이 먹을 수 있는 요리’를 만든다는 도전은 이후에도 꽤 오래 계속됐다. 

“사실 채식주의자라는 말도 잘 안 쓰던 시절이에요.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던 외로운 도전이었죠.” 

최태석 파티쉐가 지난해까지 운영했던 빵집 ‘꽃밀’의 조리실(사진:꽃밀)

도전의 역사가 쌓이자 ‘장인’의 손길이 완성됐다. 이젠 채소만 가지고도 한식‧양식‧중식의 만찬 메뉴가 자유자재로 빚어진다. 그런데 왜 하필 ‘빵’을 택했을까? 

“비건 인구가 조금씩 늘면서, 다른 분야에선 서서히 채식 레시피가 정돈되어 갔어요. 하지만 ‘베이커리’만은 미지의 영역이었죠. 계란‧버터‧우유라는 주재료 없이 빵을 만들 엄두가 안 났던 거예요. 채식주의자들은 맛있는 빵 먹기가 그만큼 힘들었고요. 그래서 선택했습니다.”(최태석) 

그는 자신이 만든 빵이 단순히 ‘대용품’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맛없는 빵은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맛있는 비건 빵’이란 목표는 손에 닿을 듯 닿지 않았다. 돌처럼 딱딱해지거나, 모래처럼 까슬까슬해지기 일쑤. 수많은 밤을 지새웠고, 수없이 많은 빵을 버렸다. 1995년부터 약 7년간은 대만, 미국 등 해외를 돌며 채식 베이커리 교육을 받기도 했다. 그가 이 분야에서 정식으로 활동한 건 지난 2001년부터. 빵에 꽂힌 지 무려 10년이 지났을 무렵이다. 

“아저씨, 맛있는 빵을 만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김민정(6‧서울시 영등포구)양이 갓 구운 빵을 진열 중이던 최 파티쉐의 옷자락을 슬며시 잡아당기며 말한다. 선천적인 우유 알레르기로 일반 빵을 전혀 먹지 못하는 김양은 자연스레 그의 충성스런 단골이 됐다. 그의 공간은 김양과 같은 사람들에겐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저는 채식을 하면서 정말 외로웠어요. 그런 외로움을 나누기 위해 이 일을 하는 것이고요. 앞으로도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낼 수 있는 공간과 음식을 만들고 싶습니다.”(최태석) 

 

| ‘낯선 나라, 낯선 음식에 올인’ 외식유통업자를 꿈꾸는 관광학도 이신일씨 

“바사삭한 튀김옷과 보드란 속살의 조화가 환상이에요. 흔히 접할 수 있는 생선튀김이 아니더라고요. 먹기 전까지 살짝 움츠렸던 저 자신이 부끄러울 정도로요.” 

이신일(26‧서울 강북구)씨는 재작년 처음 접한 ‘도리피쉬’의 맛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씨가 동남아시아의 작은 나라 ‘브루나이’에 교환학생으로 있었을 때의 일이다. 

낯선 환경에 대한 적응으로 하루하루 힘겨운 나날을 이어가던 이신일씨는 어느 날 현지 친구들 소개로 식당을 방문했고, 거기서 도리피쉬를 처음 접했다. 하지만 첫인상은 “별로였다”고 한다. 이국의 식재료라는 생소함과 외형으로부터 오는 거부감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못생겼어요. 몸도 얼룩덜룩해서 더러워 보였고요. 도저히 맛이 있을 것 같지가 않았죠.” 

갓 조리된 도리피쉬 튀김(사진:이신일)

그런 선입견이 사라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렵사리 떼어 낸 작은 살점은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버렸다. 고소한 겉과 담백한 속의 조합이 특히 일품. 머뭇거리던 손놀림에 자신감이 붙자, 한 접시가 금세 비워졌다. 

“음식 만화에서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머리 위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듯 표현되잖아요. 도리피쉬를 처음 먹었을 때 제 느낌이 정말 그랬습니다!”(이신일) 

그길로 도리피쉬에 대한 공부가 시작됐다. 의외로 해외에서는 이미 정평이 나 있는 인기 어종으로, 유럽에선 미슐랭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에서 메인으로 쓸 정도의 고급 식재료란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산지의 직거래를 통해서만 공급받을 수 있는 귀한 몸. 몸통에 있는 검은 점이 보름달처럼 생겼다고 하여 ‘달고기’, ‘달돔’으로도 불린다. 이씨는 “달고기를 계기로 내 삶의 어두운 부분을 밝혔으니, 내겐 또 다른 의미의 보름달”이라고 했다. 

2016년 6월, 한국-브루나이 친선교류협회 임원들과 함께 브루나이 현지신문에 실린 이신일(좌측 맨끝)씨(사진:이신일)

평범한 관광학도였던 이씨. 그는 도리피쉬와의 만남을 통해 숨어있던 사업가 기질을 발견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무섭게 브루나이 수산유통망을 연구하며 사업 구상에 돌입했고, 브루나이 현지의 자문도 구했다. 하지만 초보 사업가 이씨에겐 모든 게 낯설고 어려운 일이었다. 

“동남아 특유의 느긋함 때문인지, 답장이 너무 느리더라고요. 돌아온 대답도 너무 모호하고요.” 

이신일씨의 한국형 도리피쉬 프로젝트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어려운 일 투성이지만, 본인이 직접 맛본 ‘천상의 맛’을 한국에 소개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씨는 “유통망이 뚫리면 ‘도리피쉬 전문점’도 론칭할 계획”이라며 “서울에 도리열풍이 불어 닥칠 날이 머지않았다”고 자신한다. 

부루나이와 도리피쉬의 덕후 이신일씨

“브루나이하면 가구 회사인 줄 아는 사람이 대부분이죠. 비록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소소한 행복에 넉넉한 미소를 지어 보일 수 있는 멋진 나라에요. 머지않아 도리피쉬가 대한민국의 국민생선이 되면, 그 고향인 브루나이에 대한 관심도 커질 겁니다. 이런 게 바로 민간외교 아닐까요?(웃음)”(이신일씨) 

 

| ‘내 인생 가장 황홀했던 맛과 향’ 대기업 나와 스페인 카페 차린 전승연씨 

“좋은 데 취직하는 게 막연한 삶의 목표였죠. 남들처럼요.” 

전승연(35‧서울시 송파구)씨가 회상한 십 년 전의 삶이다. 열심히 공부해 대학에 들어갔고, 졸업 후에는 회사를 오가는 삶. 어제와 오늘이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이었다. 대기업에 다니며 굵직한 성과도 꽤 일궈냈지만, 그에겐 그저 건조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전씨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없이, 마지못해 살아가고 있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강산이 바뀌어 맞이한 새봄. 전씨의 삶은 180도 달라져 있었다. 늘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이야기를 접한다. 소소하게 일어나는 일상조차 즐거움으로 바뀐다. 고민은 미소로, 무기력은 활력으로 바뀌었다. 무엇이 전씨를 이토록 변하게 했을까? 

전승연 ‘카페 알베르게’ 대표

“신문에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소개를 읽고 이거다 싶었죠.” 

지난 2008년 전승연씨는 급작스레 여행길에 나섰다. 삶의 회의가 축적된 결과였다. 그는 “800km의 순례 길을 걷는 동안 생각이 참 많이 변했다”고 한다. 

한국으로 돌아와 지난 여정을 회상하니 새로운 삶의 욕구가 솟구쳤다.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졌고, 이를 하나하나 실현에 옮겼다. 지난 2015년 오픈한 카페 알베르게는 그의 다짐이 집약된 결과다. 주변의 만류가 빗발쳤지만, 그의 의지를 꺾을 순 없었다. 그런데 왜 하필 카페였을까? 

“산티아고 순례 길 아침에 먹은 또르띠아, 크로와상, 카페 콘 레체가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어요. 미각이 기억하는 그 느낌을 나누고 싶었죠.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통로로 카페가 가장 적합했고요.” 

카페 이름 ‘알베르게’는 순례 길에 마련된 순례자 숙소를 뜻한다.

실제로 알베르게에서 파는 음식 대부분은 전씨가 순례 길과 여행을 통해 접했던 것들이다. 특별하거나 값비싼 것은 아니지만 소중한 추억과 정취가 듬뿍 담겨있는 음식이다. 현지인 친구와 생활하며 익힌 레시피에 스스로 개발한 노하우를 더해 메뉴를 구성했다. 여기에 스페인을 떠올릴 수 있는 음료와 주류까지 추가했다. 국내에선 다소 생소한 바(Bar) 형태의 좌석이나, 내부 인테리어 등도 모두 스페인과 관련이 깊다. 

최근엔 음식과 더불어 문화 공유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순례 길을 다녀온 사람들로 구성된 ‘순례자 모임’은 분기에 한 번씩 카페 문을 통째로 닫고 진행한다. 서로 추억을 나누고 회상하는 것이 주된 목표. 또한 순례자들의 언어에 대한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스페인어 강좌도 진행하고 있다. 

스페인의 대표적 음료 ‘샹그리아’

스페인 음식에 매료돼, 삶의 노선을 통째로 갈아치운 전승연 대표. 그는 스페인 음식의 어떤 면에 반한 걸까? 

“이탈리아 음식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이 담겨 있고, 프랑스 음식처럼 정형화되지 않으면서 함께 즐길 수 있는 음식이 바로 스페인 요리예요. 한 마디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음식이죠. 앞으로도 카페 공간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그곳의 문화와 풍미, 그리고 정을 공유하고 싶습니다.”(전승연 대표) 

 

/글‧사진: 남동진‧박주성‧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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