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해도 가볍지 않게, 여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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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해도 가볍지 않게, 여밈
‘천’해도 가볍지 않게, 여밈
2017.03.21 16:11 by 김석준

에디터의 옷장엔 사은품으로 받은 에코백들이 켜켜이 쌓여있다. 색깔별로 진열해놓은 가방들. 처음에는 예뻐 보였지만, 이제 와서 보니 색깔만 다를 뿐이다. 옷만 다르게 입혀놓은 쌍둥이들 같다. 조금 색다른 디자인의 천 가방을 갖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마치 세상의 모든 천을 에코백에만 쓰기로만 한 것처럼, 크기도 모양도 비스무리하다.

에디터는 별 수 없이 뻔한 에코백을 들어야 했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예쁜 에코백이 없다고? 그럼 만들어야지’라고 생각한 능력자도 있다. 포토그래퍼이자 가방 브랜드 ‘여밈’을 운영하고 있는 김예숙(28) 대표 이야기다.

포토그래퍼가 만든 가방

김예숙(28) 대표는 해방촌의 편집샵 이로공작에서 여밈을 판매하고 있다.

김예숙 대표는 가방을 만들기 전에 ‘LookSook’이라는 닉네임의 포토그래퍼로 활동했다. 대학생 시절, 무작정 휴학을 하고 도전한 길거리 촬영이 패션매거진으로까지 이어졌다. 2012년부터는 패션잡지 ‘룩티크’에서 포토그래퍼로 일 년 정도 일했다.

“그 당시에는 길거리에서 사진을 찍는 게 유행이었어요. 찍힌 사진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밌었죠. 서로 다른 스타일의 사람들의 사연이 궁금했고, 직접 그런 다양한 사람들을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길거리 포토그래퍼의 가장 큰 고충은 남들과 비슷한 사진을, 겹치게 찍는 것이었다. 김 대표는 최대한 남의 손을 안 탄 사진을 찍고 싶었고, 그때부터 흔하지 않은 패션을 찾아다녔다.

“사진을 찍으면서, 흔하지 않은 제품이나 브랜드의 매력을 실감했어요. 그런데 실제로 그리 많진 않더라고요. 가격 부담도 없으면서, 소장하고 싶을 정도의 매력적인 디자인을 가진 제품이요. 그래서 ‘내가 직접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거죠. 그 시작이 여밈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여밈이 만든 첫 번째 가방. '여밈'은 말 그대로 '여미다'라는 뜻으로 모든 제품의 손잡이와 가방이 만나는 부분을 독특하게 디자인한다.

그때만 해도 그저 ‘한번 해볼까?’ 수준.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포토그래퍼 'LookSook'으로서의 정체성이 직접적인 계기를 만들어 줬다. 실제로 처음 만들어 본 가방은 바로 카메라 가방이었다.

“카메라를 챙겨도 절대 기본 카메라 가방에 넣지 않았어요. 스크래치가 나도 그냥 들고 다녔죠.(웃음) 가방이 너무 안 예쁘고 디자인이 별로여서… 카메라를 예쁘고 편하게 넣고 다닐 수 있는 천가방을 만들었던 게, 지금 여밈의 시초라 할 수 있죠.”

소재에 대한 편견

가방은 소재에 따라 용도가 달라지곤 한다. 가죽을 아무리 캐주얼하게 디자인해도 ‘아웃도어’엔 맞지 않고, 천은 고급스럽게 만들어 봐야 정장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란 선입견이 있다. 하지만 김예숙 대표의 생각은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천을 너무 가볍게 생각해요.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기보단, 저렴하게 생산해서 대량판매를 많이 하죠. 그게 오히려 틈새시장처럼 보였어요. 사람들은 천가방이라고 하면 에코백만 생각하는데 디자인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거든요.”

시중에 많은 에코백들과 달리 실용성과 함께 스타일리시함도 추구하는 것이 여밈의 모토다.

여밈의 제품은 모두 천 소재를 활용했지만, 에코백이라고 소개하기엔 뭔가 부족하다. 소재만 같을 뿐, 가방이 주는 분위기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너무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은 적당한 멋스러움이 여밈의 매력이다.

그런 적당함 덕분에 매치하기에도 좋다. 그리 튀지 않으면서, 특정 이미지를 프린트하는 방식도 피하기 때문에 어떤 스타일의 옷과도 무난하게 어울린다.

남성을 위한 제품도 있다. 물론, 여성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정확히는 남녀공용이다.

‘빽(bag)’이라는 용어가 여성들의 전유물처럼 느껴지는 시대. 여밈의 제품 역시 그랬다. 굳이 여성용 가방이라고 내세우진 않았지만, 얇은 어깨끈과 작은 복주머니 형태의 ‘버켓백’은 주로 여성들의 차지가 됐다. 김 대표는 이런 부분에서도 크고 작은 변화를 시도했다.

“작년 겨울부터 남성 제품도 출시했는데, 소비자 반응이 나쁘지 않아요. 남성들은 흐물흐물한 가방을 별로 안 좋아해서, 일부러 단단히 각이 잡혀있도록 만들었거든요. 앞으로 남성 제품 라인도 계속 늘려갈 생각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천하도록

김예숙 대표는 “천소재 제품은 가벼운 대신 따뜻한 느낌이 덜하다”면서 “천 가방이 겨울철에 비수기를 맞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 시장의 불리함도 김 대표가 가진 소신을 꺾진 못한다. 앞으로도 계속 천 가방에 매진할 계획이라고.

“잘 안 팔리니까 ‘가죽 한번 해볼까’ 할 수는 없죠. 가죽에는 평생 관심도 없었는걸요. 지금까지 우리를 지켜 봐줬던 고객들을 믿고 뚝심 있게 밀어붙일 겁니다.”

여밈은 궁극적으로 어떤 브랜드가 되고 싶을까. 김 대표는 유행을 따라가지 않으면서, 천의 매력을 알릴 수 있는 브랜드를 꿈꾼다고 했다.

“천이라고 하면 가볍고 막 쓰기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천도 종류가 많고, 그만큼 표현할 수 있는 범위도 넓은데, 약간 평가절하된 부분이 있는 셈이죠. 계절이나 유행을 따르지 않고 꾸준히 멋진 제품을 선보이다 보면, 언젠간 천과 여밈의 매력을 알아주지 않을까요.(웃음)”

/사진: 김석준·여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