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가장 먼저 봄이 시작되는 곳. 지도 맨 아래 이곳 제주다. 쌀쌀함이 채 가시지 않은 2월 중순, 유채꽃은 신기하게도 이때부터 머리를 내민다. 3월이 되면 만발한 유채꽃밭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어딜 가나 사진 찍기 바쁘다. 3월의 제주도는 가히 유채꽃 세상이다.
제주도엔 유명한 유채꽃밭이 여러 곳 있다. 대표적인 곳이 성산. 제주도에 살기 전에도 여행만 오면 들리곤 했다. 성산 일출봉 주변 도로를 달리다 보면 유채꽃을 배경으로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다. 제주의 유채꽃밭은 비교적 고르게 분포해 있는데, 이는 각기 다른 주인이 가꾸어 놓은 곳들이다. 입장료 1000원을 내면 꽃밭에 들어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현재 살고 있는 모슬포에도 유채꽃밭이 있는데, 여기 역시 입장료는 필수다.
1000원. 제주도를 찾는 여행객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액수다. 하지만 제주 토박이들은 이런 입장료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다. 대체로 “이디 맨날 왕봥 보는딘디 돈냉 봐야되는거??(매일 마주하는 곳인데 이걸 보겠다고 돈을 내다니)”란 반응이다. 남편과 가족들도 마찬가지. 그래서 관광객이 모여 있는 꽃밭들은 대부분 그냥 지나친다. 대신 숨은 꽃밭을 찾는다.
모슬포항에서 송악산으로 향하는 해안도로가 대표적이다. 대부분의 차들은 그냥 지나치는 곳이지만, 여기 한구석에 작은 유채꽃밭이 있다. 이곳에서는 돈을 내지 않고도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고,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 사진에 다른 사람이 나올까 걱정할 필요도 없다.(실제로 유명한 유채꽃밭은 사람으로 가득 차 사진 각도 잡기도 어렵다). 유료로 입장하는 곳보다 꽃들의 키가 작다는 건 살짝 아쉬운 부분.
사실 제주도 구석구석에는 이렇게 주인 없는 유채꽃밭이 많다. 작년에는 서귀포 산업도로 인근에서 성산의 모든 유채꽃밭을 합친 것보다 더 넓은 꽃밭을 발견하기도 했었다. 입장료도 없고, 인적도 드물어 ‘앞으로 우리의 아지트가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올해는 그곳을 찾지 못했다. 우연히 들렸던 거라 정확한 위치를 기억하지 못했던 탓이다.
도로를 샅샅이 뒤져도 찾지 못한 걸 보면, 제주도가 그리 작은 섬은 아닌가 보다. 사실 돈 1000원이 아까워서 이런 장소들을 찾는 게 아니다. 워낙 외지 관광객들이 많이 드나들다 보니, 다른 사람은 모르는 우리만의 꽃밭을 찾고 싶은 마음도 강하다.
제주도 봄의 시그니처는 유채꽃이지만, 다른 지역처럼 벚나무도 많이 볼 수 있다. 심지어 벚꽃축제도 열린다.
제주대학교와 제주시 장전리가 대표적인 벚꽃길이다. 제주의 벚꽃축제는 타 지역과 비교하면 훨씬 소박하다. 평소 동네 사람들이 오가는 마을 길이 벚꽃축제의 무대가 된다. 장전리 축제를 예로 들면, 장전리 마을 길 일부분에 심어진 벚나무가 주 배경이다. 덕분에 슬리퍼를 신은 마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벚꽃과 이를 보러 온 사람들을 구경하는 모습도 접할 수 있다.
여의도나 중랑천에서 열리는 벚꽃축제를 생각하고 방문하면 자칫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수많은 인파에 지친 사람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사람이 적기 때문에 주차나 교통편에 대한 스트레스도 없다.
이렇게 유채꽃, 벚꽃과 함께 제주도에 봄이 왔다. 다른 곳보다 빠르게 찾아오기 때문인지 육지의 지인과 연락을 하면 나만 신나서 봄 기분을 내고 있다. 나만의 봄이라고 해야 할까. 봄이 가장 아름답다는 제주, 이번에도 새로운 우리만의 꽃밭을 발견할 기대감에 즐겁다.
/사진: 이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