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마지막 유언
붓다의 마지막 유언
2017.04.06 16:42 by 고요

요즘 들어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 '믿고 있는 것'을 헷갈려 하는 것 같습니다. 한 달 전부터 삼성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방송을 통해 보고 있자면, 종교의 본질이란 ‘사람들이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실재 세계에 대한 '확고한 앎'이라고 착각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을 산스끄리뜨어로 박띠(Bhakti)라고 하는데, 이는 힌두교에서 아주 중요한 종교개념입니다.

최근 들어 자주 접하게 되는 이슈 중에 “가짜뉴스”라는 것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뉴스’의 모습으로 가장하고 있는 헛소리를 의미하는데, 그 내용이 자극적이거나 특정 집단의 입맛에 딱 맞는 내용일수록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같은 SNS를 타고 아주 쉽게 퍼지고, 그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제가 요즘의 가짜뉴스 소동을 보면서 머리속에 떠올린 것은 ‘이건 종교라는 이름으로 계속해서 일어나던 일 아닌가?’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어떤 의견 또는 주장을 듣고, 그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판단한 뒤, 자신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굳게 ‘믿어’버리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평소 주변에서 자신이 독실한 종교인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을 통해 흔히 보던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단순하게 생각해봐도 ‘아는 것’과 ‘믿는 것’의 차이는 대단히 분명해 보이지만, 또 모호합니다. 제가 위에서 쓴 것처럼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 사람”과 같은 문장이 등장하면,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 과연 알고 있는 것인지 믿고 있는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 우리는 정말 알고 있을까?

지하철에서 화장실이 몹시 급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지하철에서 내려 역사 안 어디인가에 있는 화장실로 달려가는 일입니다. 우리는 지하철 역사 안에 화장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지하철 역이 부평역이라면 어떨까요? 부평역에는 지하철 역사 안에 화장실이 없다고 합니다. 화장실이 급해서 내린 곳이 하필 부평역이라면 개찰구 밖에 있는 지하상가 앞 공용화장실로 가야한답니다.(진짜인지는 제가 부평역을 안 가봐서 모르겠습니다. 저는 신문 기사를 믿고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일반적으로 지하철 역에 화장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거의 모든 지하철 역에는 화장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모든 지하철 역의 화장실을 가본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지하철 역에 화장실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믿고 있는 것일까요? 만약에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화장실이 급해서 갑자기 지하철을 내리게 된다면, 그건 아마도 그 지하철 역에 화장실이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필 그 곳이 부평역이라면… 뭐. 잘 참고 잘 뛰면서 잘 찾아야겠죠.

종교는 오직 믿음으로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그렇죠?

제 생각에 특히 요즘의 종교들에 있어서는 이 ‘믿음’이라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가톨릭, 개신교, 조계종, 천태종, 천도교, 이슬람 등등 당장 떠오르는 대부분의 종교와 종파들이 모두 어떤 것을 ‘믿으라’고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부처님, 법화경, 한울님, 알라를 비롯해서 기도의 힘, 회개와 대속(代贖), 염불과 극락왕생, 사경(寫經)의 힘, 꾸란의 절대성 등 일단 믿지 않으면 종교인이 되기 힘듭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종교를 물을 때부터가 “무슨 종교 믿으세요?”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사용하지 않습니까?

그 때문인지, 짧은 기간이나마 불교 이론을 공부하고 불교에 대단히 큰 호감을 가지고 있음에도 저는 제 종교가 불교라고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하늘을 날고 물 위를 걷는 부처님을 안 믿습니다. 반면,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알려진 내용들 중 어떤 부분들은 제가 ‘이건 확실한 사실’임을 알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네. 저도 이게 뭔 말인지 헷갈립니다.

다시 맨 처음의 시국 이야기로 돌아와서, 요즘 사람들은 아는 것과 믿는 것을 쉽게 헷갈리고 이 때문인지 세상은 몹시 혼란합니다. 언제부터인가 ‘팩트’라는 단어가 유행하면서 사람들은 너도나도 ‘이게 팩트야!’라면서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열심히 설파합니다. ‘팩트’는 그냥 ‘사실’을 의미합니다. ‘사실(事實)’이란 글자 뜻 그대로, ‘실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이런 일이 있었다”까지가 사실이고, “이런 일이 있었다더라”라고 하면 소문(所聞)입니다. ‘들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사실’은 앎의 대상이고 ‘소문’은 믿음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떤 정보를 접하게 되었을 때 아주 잠깐만 생각해 보면 이것이 ‘사실’인지 ‘소문’인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내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사건 자체가 ‘사실’이고 그게 아니면 그냥 다 ‘소문’이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물론 직접 확인한다고 해도 가짜뉴스가 판치는 요즘 같은 시대에 눈 앞에서 당장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니고서야 기록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고민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언할 수 있는 것은 지하철 역에 화장실이 있다는 것조차 믿으려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대단히 피곤한 삶을 살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지하철 역의 화장실이 공사 중이라거나 다른 이유로 폐쇄되어 있을 수도 있으니, 무조건 믿는 것이 옳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 "남 믿지 말고 스스로 생각해라" 

자꾸만 등장하게 되는 이 지하철역 화장실 이야기는 사실 인도 인식논리학에서 자주 사용되는 유명한 비유를 살짝 바꿔 놓은 것입니다. 먼 옛날 광개토대왕이 만주 벌판을 달리던 시기에 인도에서는 “무엇이 아는 것인가?”가 나름 핫이슈였던 것 같습니다. 불교 인식논리학에서는 스스로 확인해서 알고 있는 직접지각(現量, pratyakṣa pramāṇa)과 근거에 따라 논리적으로 생각해서 결론을 내린 추론지각(比量, anumāna pramāna) 중 어디까지를 진짜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해 활발한 토론이 있었는데, 그 내용이 대단히 복잡하고 이해하기 몹시 힘듭니다. 일단 한문과 산스끄리뜨어를 모르면 내용을 대충 파악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대충 파악한 내용으로 불교 인식논리학을 안다고 주장한다면 그건 아는 게 아니라 안다고 믿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그냥 잘 모른다고 솔직히 고백하겠습니다.

"대충 파악한 내용으로 불교 인식논리학을 안다고 주장한다면 그건 아는 게 아니라 안다고 믿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그냥 잘 모른다고 솔직히 고백하겠습니다."

부처님의 유언으로 알려진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보통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진리를 등불로 삼으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틀린 해석은 아니지만, 사실 붓다의 유언은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일단 붓다의 진짜 마지막 유언은 싱겁기 그지없게도 “나 없다고 게으름 피우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라!”입니다. 그리고 앞의 “자등명 법등명”이 등장하는 유언에는 전후 맥락이 있고, 버전에 따라 그 내용이 꽤 긴 것도 있습니다.

핵심부터 미리 말하자면, 부처님의 유언으로 알려진 “자등명 법등명”의 진짜 의미는 “남 믿지 말고 스스로 생각해라! 남의 말이 아니라 사실에 입각해서 생각해라!” 쯤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처럼 정보가 넘쳐나고 가짜 정보와 진짜 정보를 구분하기 힘든 인터넷 시대에 대단히 좋은 가르침 아닌가 싶습니다. 내가 무엇을 믿고, 무엇을 알고 있는지 헷갈린다면 더더욱 고민해봐야 할 문제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나는 내가 아는 것만 믿는다’고 한다면, 이것은 아는 것일까요, 믿는 것일까요?

불교에 대해,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부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붓다가 가르친 것’에 대해 알고 싶다면, 직접 생각해야 합니다. 제 말도, 스님들 말도, 경전도 믿지 말고, 스스로 생각해서 알게 되면, 그게 바로 불교라고 합니다. 네. 그게 바로 붓다의 유언입니다.

앞으로 불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제가 대단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은 전혀 못 되고, ‘종교’영역보다는 ‘학문’영역에서 불교를 조금 경험해본 것을 바탕으로 알게 된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해 볼 생각입니다. 다음 번 주제는 ‘붓다의 유언과 붓다가 생전에 가르친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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