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이야기’가 ‘그들의 영화’가 되는 현장
‘우리의 이야기’가 ‘그들의 영화’가 되는 현장
‘우리의 이야기’가 ‘그들의 영화’가 되는 현장
2017.04.17 19:11 by 최현빈

“잠시 후 영화가 상영될 예정입니다. 휴대폰은 무음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영화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안내 방송. 그런데 평소와는 조금 다르다. 미리 녹음된 음성이 아니라 객석 앞 교복을 입은 학생의 목소리다. 곧바로 영화가 시작된다. 영화의 주인공은 모두 청소년들. 학교‧학원에서 펼쳐지는 일상이 주된 내용이지만, 객석의 공감을 끌어내기엔 충분하다. 진로와 연애, 친구 관계로 인한 고민, 우리 모두가 한번쯤은 겪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상영회의 사회를 맡은 이동섭 교수와 김수진 학생.

지난 2월 18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CGV청담씨네시티’에서 특별한 시사회가 열렸다. 청소년에 의한, 청소년을 위한 영화상영회 ‘꿈으로 만났던 시간들’이 바로 그것. 영화를 기획하고 촬영하고, 상영까지 나선 50명의 청소년들은 모두 ‘청소년 영화제작소’ 3기 학생들. 현대자동차그룹과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가 지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청소년 영화제작소’는 영화 산업에 관심이 있어도 관련 교육을 접하기 힘든 청소년들을 위해 마련된 사회공헌 프로그램이다.

예고편을 만들어 상영하고, 포스터를 붙이는 것도 청소년들이 몫이었다.

행사가 시작되자, 준비된 215개의 객석이 순식간에 채워졌다. 자녀‧친구가 만든 영화를 보고 싶어 극장 뒤편에 서 있는 관객들도 많았다. 이날 상영된 작품은 총 8편. 1‧2기 학생들의 작품 각각 한 편, 영화제작소와 자매결연을 맺은 아르헨티나 학생들의 작품 한 편, 그리고 3기 학생들의 작품 다섯 편이 멜로‧코미디‧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로 관객들에게 전해졌다.

아직 학생의 신분이지만,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은 여느 능숙한 감독 못지않았다. 꾀병을 부리는 학생이 동명이인 남학생과 진단서를 바꿔치기하는 장면에선 모두가 폭소했고, 성인이 된 아들이 투병 중인 어머니를 떠올리며 학창시절을 후회하는 장면에선 여기저기서 눈물을 훔쳤다. 스크린을 통해 펼쳐지는 장면 하나하나가 모두 우리가 살아왔고, 그들이 살고 있는 ‘청소년의 하루’ 그 자체였다.

이번 상영회는 청소년 영화인들이 그동안 갈고 닦은 것을 펼쳐 보이는 행사이자, 자신들도 충분히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자리였다. 행사 초기에만 해도 떨리는 모습을 감추지 못했던 청소년들이었지만, 영화가 끝나자 관객들에게 기획의도와 촬영‧편집기법을 또렷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교사, 검사, 의사…. 저희 주변에는 부모님이 정해준 진로대로 따라가는 친구들이 많아요. 다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도 말이죠. 남들이 시키는 것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내는 청소년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작품 <-0.1>의 촬영을 맡은 정혜린(16‧심석고) 양의 말이다. 혜린양의 꿈은 최고의 촬영감독이 되는 것. 이번 작품은 그녀의 첫 영화다. “너무 떨려서 전날 밤을 뜬 눈으로 새웠다”는 혜린양은 “학교에서는 관련 기술과 장비를 만져볼 일이 없었는데, 이번 경험을 살려 앞으로도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만들 용기가 생겼다”고 했다.

관객들에게 영화를 설명하는 것도 감독의 역할.

작품 <애량>의 시나리오를 맡은 홍준화(18‧전곡고)군 역시 영화를 제작하고 상영까지 한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다. <애량>은 투병 중인 어머니를 둔 취업준비생 아들이 자신의 지난날을 후회하는 이야기. 관객들은 한 목소리로 “고등학생이 하기엔 너무 성숙한 발상”이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준화군은 “평소 어머니와 자주 다투는데 작은 고모가 갑작스럽게 암에 걸리게 되었다. 그때 떠올린 이야기”라며 시나리오를 쓰게 된 계기를 밝혔다.

이야기를 쓰는 것뿐만 아니라, 촬영과 편집에도 관심이 많다는 준화군. 이번 프로그램은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준화군은 “카메라에 관심만 있었을 뿐, 촬영 기술이나 구도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면서 “전문가 선생님들에게 기술을 배우고, 결과물을 두고는 상세한 피드백까지 받았던 경험은 평생 기억에 남는 배움이 될 것”이라고 프로그램을 마친 소감을 전했다.

모든 영화가 상영되자 전문가들의 평이 이어졌다. 영화 <효자동 이발사>의 연출을 맡았던 임찬상 감독은 “우리나라 영화산업의 미래를 확인할 수 있었던 자리”라며 “관객들이 영화에 호응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영화들이 청소년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낸 덕분”이라고 평했다.

영화평론가 오동진씨도 상영회를 찾았다. 그는 “영화는 자신의 생각을 응축시켜 사람들에게 설득시키는 표현기법”이라 정의하며 “영화를 통해 청소년들의 생각을 만나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하나의 주제에 집중하라’, ‘좋은 영화는 끊임없는 공부로부터 나온다’ 등의 날카로운 지적과 당부도 빼놓지 않았다. 오 평론가는 “앞으로도 열심히 세상을 배우고, 사람들과 소통한다면, 멀지 않은 미래에 더욱 멋진 작품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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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상영회를 끝으로 마무리된 <청소년 영화제작소>는 올해도 네 번째 활동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 김유정(예술나눔본부)씨는 “4기에는 기존의 아르헨티나를 넘어, 보다 다양한 국제교류를 시도할 예정”이라며 “이를 통해 더욱 많은 청소년들에게 영화 진로에 대해 고민을 나누고, 가능성을 발견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 제공

필자소개
최현빈

파란 하늘과 양지바른 골목을 좋아하는 더퍼스트 ‘에디터 ROBIN’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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