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수확하는 건 그들의 ‘웃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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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수확하는 건 그들의 ‘웃음’입니다.
우리가 수확하는 건 그들의 ‘웃음’입니다.
2017.04.21 15:47 by 김다영

서울 도봉구의 한 골목길 어귀에서 신나게 콧노래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의 근원지는 중증발달장애인 주간보호센터 ‘주바라기 해피홈’. 입구에 들어서니 발달장애인 네댓 명이 버선발로 마중 나와 앞 다투어 악수를 청한다.

올해로 24년 차를 맞은 주바라기 해피홈은 일상생활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운 중증발달장애인 지원기관. 하지만 개인 시설로 분류된 탓에 정부지원을 받기 어려웠고, 그 대안으로 지난 2013년 만들어진 곳이 바로 ‘산울베리사회적협동조합’이다. 기관에 소속된 발달장애인 중 일정 수준 이상의 자활능력이 있는 이들이 산울베리란 이름으로 함께 일하며 성장하는 것. 이영심(57) 사무국장은 “신체적으로 꾸준히 성장하는 발달장애인들을 단순히 양육·보호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자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왔다”고 말했다.

도봉구에 위치한 주바라기 해피홈

일반적으로 지적장애인들은 제과·제빵이나 바리스타 교육을 통해 사회와 소통한다. 하지만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중증발달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박스를 접거나 고리를 끼우는 단순작업마저 진행이 어려웠을 정도. 이 사무국장은 “일단 외부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정해진 양을 소화해야 하는데, 20분만 지나도 ‘그만 하겠다’며 작업물을 내던져버리기 일쑤”였다면서 “불량률이 높은 것도 문제였다”고 덧붙였다.

그들이 포기한 일은 결국 사회복지사들의 몫이 됐고, 그로 인해 복지사 본연의 일이 소홀해지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기관의 한 관계자는 “그런 작업들이 과연 그들에게 도움이 될까 하는 의문도 있었던 게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발달장애인의 일과 재활이 그렇게 유야무야되어 가던 찰나, 접하게 된 것이 바로 블루베리 농사였다.

“블루베리는 다른 나무에 비해 열매를 맺기까지 수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작업도 단순해요. 다 자라도 어른 키 높이 정도여서 작업하기에 위험하지도 않고요. 그래서 가능성이 있겠다 싶었죠.”(이영심 사무국장)

산울베리의 블루베리 농사 풍경

지난 2009년, 건물 옥상에서 블루베리 나무 80그루를 심었던 게 시작이었다. 주바라기 해피홈의 중증발달장애인 22명 중 작업에 대한 이해와 실천이 가능한 6명이 농부가 됐다. 그렇게 시나브로 커진 작업은 현재 경기도 고양시에서 임대 농지 2,000평, 묘목 3만 그루 규모로 성장했다. 중증발달장애인의 자폐적 성향이 농장 일에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어떤 일을 한 번 ‘해야 하는 것’이라고 배우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을 해야만 하는 성향은 반복의 힘으로 일궈내는 농사와 잘 맞았다.

산울베리 농장에서 수확한 블루베리 생과일

발달장애인들이 업무에 익숙해지고, 농장의 규모가 커졌지만, 수익성이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한 지는 7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손익분기점을 넘어 본 적은 없다고 한다. 워낙 초기자본이 부족했던 데다, 농업 특성상 여름 한 철 수입으로 비싼 임대료와 직원들의 일 년 치 월급을 책임져야 했던 탓이다.

지난 2015년, 대학생 비즈니스 동아리 ‘인액터스’와의 만남은 산울베리에게 새로운 기회가 됐다. 인액터스는 시장조사부터 상품 개발, 디자인, 펀딩 진행 등 비즈니스의 모든 과정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가장 큰 변화는 묘목 및 생과 판매만 이뤄지던 구조에서 잎차 같은 응용제품까지 선보이게 된 것. 특히 인액터스와 함께 진행한 네이버 해피빈 공감펀딩이 목표액의 740%를 초과하는 대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산울베리의 블루베리 잎차 제품은 네이버 스토어팜, 쿠팡 등 온라인몰과, 언더스탠드에비뉴, 서울대학교 교내 마켓 인유, 명품마루 등 오프라인 매장에서 구입할 수 있다.

산울베리의 잎차 제품들

이런 활동을 통해 발달장애인의 사회성은 얼마나 나아졌을까? 담당자들은 “산울베리의 가장 큰 수확물은 발달장애인들의 변화”라고 입을 모은다. 이영심 사무국장은 “예전에는 목이 터져라 소리쳐도 듣지 않던 이들이 이제는 스스로 할 일을 찾아한다”면서 “선생님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그게 아니다’라며 가르쳐 줄 정도”라고 흐뭇해했다.

지하철을 타고 배달을 나가는 산울베리 직원들

세상과의 교류 기회도 크게 늘었다. 실제로 산울베리의 발달장애인들은 블루베리 생과를 구매자에게 직접 배송해준다. 반복해서 만나는 구매자를 보면,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반가워한다고. 한 관계자는 “배송 건이 생기면 서로 자기가 가겠다며 다투기도 한다”며 웃었다. 어쩌면 산울베리의 목표는 애초에 경제적 이윤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경제적인 가치로 따졌으면 벌써 문을 닫았어야 했죠. 하지만 친구들이 보여주는 변화가 기쁘고 감사해서 포기할 수가 없어요. 밖으로 나와 마음껏 노래 부르고, 봉사자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보면 큰 보람을 느끼죠. 평소에 라면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는데, 이젠 ‘집에서 먹는 것보다 농장에서 일하고 난 후에 먹는 것이 훨씬 맛있다’고 말합니다.(웃음)”(이영심 사무국장)

산울베리의 사회복지사들은 “단 1%의 변화에도 매일같이 감동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