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을 차지한 후 권현(23‧부산광역시장애인체육회) 선수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지난 21일 저녁 인천 문학박태환수영장에서 열린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남자 400m 자유형S9에 출전한 권 선수는 짜릿한 역전 레이스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지난 2010년 광저우대회 남자 200m 계영에 이어 2개 대회 연속 금메달이자 대회 첫 개인종목 우승이다. 2위는 권 선수가 7년 간 국제대회에서 맞붙었지만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는 동갑내기 야마다 타쿠로(일본) 선수. 국내에서 열린 국제종합대회서 꺾어 감동도 배가 됐다.
후반 역영이 빛났다. 31초 62로 초반 50m를 2위로 통과한 후 계속해서 순위를 유지하던 권 선수는 200m지점에서 한때 50m 기록이 35초대까지 쳐지며 1위와의 격차를 좀처럼 줄이지 못하는 듯했다. 하지만 선두가 페이스가 떨어진 사이 치고나와 300m 턴 직전 역전에 성공했다.
이후부터는 놀라운 막판 스퍼트를 보였다. 후반 100m에서 50m기록이 각각 32초 97, 33초 32로 34~35초대를 기록한 중반에 비해 2초가량 단축하며 4분 31초 94로 가장 먼저 터치패드를 찍었다. 2위에 오른 야마다 타쿠로 선수보다 9초 30이나 빨랐고, 종전 기록을 7초 가까이 앞당기며 대회신기록도 작성했다.
장애인 스포츠는 장애정도에 따라 등급을 분류해 같은 등급의 선수들끼리 경기를 치르는데, 권현 선수는 이번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S9’ 등급을 받았다. S는 ‘Swimming(수영)’에서 따온 것이고 1에서 10까지의 등급 중 숫자가 낮을수록 장애로 인한 신체운동능력의 제약이 심함을 의미한다.(시각‧청각‧지적장애인은 별도의 그룹으로 각각 나뉘어 등급을 분류하므로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살면서 뼈가 50번도 더 부러졌어요. 어릴 땐 야외활동을 거의 못해서 굉장히 소심했고 사람 만나는 것도 싫어했죠.”
권현 선수는 뼈가 약해 잘 휘거나 부러지는 골형성부전증을 갖고 태어났다. 작은 충격에도 크게 다치는 탓에 어린 시절엔 거의 병원에 살다시피 했다. 그러다 어머니와 함께 수영장을 찾은 건 초등학교 3학년 때. 재활치료가 목적이었지만 권 선수의 재능을 알아본 수영강사의 권유로 본격적으로 수영을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물에 들어간 지 1년 만에 조그만 대회에 나가서 메달을 땄어요. 사실 그게 아직도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전국대회, 아시안게임 등 큰 규모의 대회에서도 여러 차례 메달을 손에 쥔 권 선수지만, 아직도 처음 땄던 그때의 메달이 참 소중하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자신도 긍정적으로 변했고, 무엇보다 수영을 계속 해 나갈 확실한 동기가 됐기 때문이다.
19세의 어린 나이에 광저우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따면서 앞으로 더욱 많은 기회가 열릴 것 같았다. 하지만 2011년 소속팀 해체, 2012 런던패럴림픽 출전권 획득 실패 등 연이은 악재로 어려운 시기도 겪었다.
“운동을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죠. 몇 년간 기록도 계속 정체돼 있었고요. 그래서 이번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이 저에겐 굉장히 중요한 대회였습니다.”
2011년 팀이 해체됐을 땐 운동할 곳이 없어져 정말 막막했다고 한다. 얼마간 비장애인 선수들 틈에 섞여 함께 훈련을 받다 그해 겨울 지금의 주길호 코치를 만났다. 2012년 패럴림픽을 준비하면서는 연습기록이 기준기록보다 훨씬 잘 나왔었음에도, 컨디션 조절 실패로 국제대회 기록이 기준점에 미치지 못하며 고배를 마셨다. 선수생활 지속을 두고 고민했을 정도로 큰 좌절이었다. 그때마다 주 코치가 많은 힘이 됐다. “딱 한번만 더 해보자” 마음먹고 준비한 이번 대회, 자신의 주종목인 400m 자유형에서 개인최고기록보다 9초나 빠른 의미 있는 기록을 냈다. “7년 만에 이겼다”는 그의 우승 소감에는 그렇게 힘겨웠던 시기를 딛고 다시 일어선 선수 개인의 소회도 깃들어 있었다.
“선수로서의 목표도 물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선수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도록 개인에 특화된 훈련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현재 권현 선수는 한체대 특수체육교육학과에 재학 중이다. 앞으로도 계속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며 대학원에 진학해서는 트레이닝론을 전공할 생각이라고 한다. 장애인 체육에 대한 인식이 많이 나아진 건 사실이지만, 아직 선수 개개인의 다양한 장애 유형과 정도에 따른 맞춤형 훈련이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진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선수로서, 전문트레이너로서 “앞으로 우리나라 장애인 수영을 더욱 발전시키고 싶다”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오늘에 만족하지 않고, 남은 경기도 잘 준비해서 응원 와준 관중들에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겠다”고 말하는 권현 선수는 23일 남자 100m 배영을 비롯해 400m 계영, 혼계영 등에도 출전할 예정이다. 이번 대회 수영 종목은 23일까지 이날과 같은 인천 문학박태환수영장에서 진행되며 입장료는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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