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 직원’으로 산다는 것
‘엔터 직원’으로 산다는 것
2017.05.05 16:12 by 박희아

가요 기획사 스태프들이 겪는 고충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이야기가 나온 바 있습니다. 최근에는 기업 평가 사이트에 올라온 몇몇 기획사들에 대한 평이 SNS 상에서 크게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업계 특성상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해 보이지만, 그게 곧 스태프 자신의 명예나 부와 직결되는 건 아니라는 내용이었죠. 

기획사 스태프들은 매일 초조한 가운데에서 회사 생활을 이어갑니다. 요즘은 1년 365일이 ‘활동기’나 다름없으니까요. 특히 아티스트가 여럿 소속된 회사라면 한 팀이 활동을 접는 순간 또 다른 팀이 활동을 시작하기도 합니다. 동시에 두세 팀이 활동하는 경우도 있고요. 전자든 후자든 일이 끊임없이 몰아쳐서 쉴 틈이 없습니다.

게다가 싱글, 미니 앨범, 정규 앨범, 믹스테입에 이르기까지 아티스트가 음원을 발표하는 방식 또한 매우 다양해졌습니다. 또 오프라인에서 정식 활동을 마무리하더라도 SNS나 기타 인터뷰, 프로그램 촬영 등을 통해 얼굴을 비춰야 합니다. 투어 공연에 바로 임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요. 공백기를 오래 가지면 다른 아이돌 그룹에 팬을 뺏길 수도 있기 때문에 컴백 주기도 짧아졌습니다.

이에 스태프들은 매일같이 다른 그룹과 차별화 되는 무언가를 찾아 헤매느라 바쁩니다. 타 그룹 모니터링도 꾸준히 해야 하고, 겹치는 것은 없는지 세세히 체크해가며 다음 콘셉트 준비도 게을리 할 수 없습니다.

기획사 스태프들은 매일 초조한 가운데에서 회사 생활을 이어갑니다.

# 폭풍 같은 컴백 시즌

컴백을 앞두면 긴장감으로 회사가 더욱 분주합니다. 자정에 티저(teaser)를 공개하는 경우에는 그 후로 몇 시간에 걸쳐 팬들의 반응을 살핀 뒤에야 비로소 퇴근 준비를 하기도 합니다. 팬들이 불만을 제기하기라도 하면 한동안 쏟아지는 비속어를 보면서도 꿋꿋이 견뎌야 하죠.

“재택근무로 체크하는 경우도 있죠. 하지만 어차피 해야 하는 일과 일이 끝나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웬만하면 그냥 회사에 있어요. 티저 공개하고 나서 SNS 쭉 보고, 내일 아침에 회의에서 발표해야 할 내용을 정리하고 나면 새벽 두 시, 세 시예요. 그 정도 시간에 퇴근하는 게 생각보다 잦아요. 그런데 거기에 욕까지 먹으면 정신적으로 무척 힘들어요.” (관계자 A)

단, 직군에 따라서 바쁜 시기와 유형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매니지먼트 부서와 홍보 부서, 경영 부서 등 각자 주로 맡은 일이 다르니까요. 하지만 어떤 회사든 컴백 전후로 모든 스태프가 아이돌 못지않게 엄청난 양의 스케줄을 소화하는 건 사실입니다.

“중요한 미팅 때문에 밥을 먹을 때도 노트북 들고 다녀야 하는 경우가 있고요. 이 사람하고 이야기도 제대로 끝마쳐야 하는데, 약속 시간 30분 전, 심하면 10분 전에 소속 연예인들에게 일이 터지는 경우도 있잖아요. 갑자기 윗선에서 급한 일을 시킬 때도 많아서 계속 정신이 없는 상황이라 보시면 돼요. 한 번에 한 가지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관계자 B)

이 스케줄과 조금 다르게 움직이는 부서가 있다면 연습생 캐스팅과 트레이닝을 담당하고 있는 곳(통상 신인개발팀)인데요. 상황에 따라 지원 인력으로 차출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기존 아티스트의 활동 일정에 따라가는 스케줄이 아니기 때문에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른 스태프들이 일반 직장인들처럼 주말에 쉰다면(잔업이 없다는 가정 하에!), 트레이닝 팀 스태프들은 오히려 평일에 쉬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연습생 레슨 스케줄이 주말에 많이 잡혀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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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족한 것? 시간과 돈

아이돌 기획사에서 일하면서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인터뷰이 대부분이 여가 시간을 제대로 즐길 수 없다는 점과 금전적인 어려움을 꼽았습니다.

“자기 시간이 없는 거요. 내 삶이 없다는 점. 그래서 저는 주변에서 엔터테인먼트에서 일하고 싶다는 사람이 있으면, 더 늦기 전에 자기 삶을 찾아 떠나라고 농담처럼 얘기해요. 하하.” (관계자 C)

“돈이 문제죠. 어릴 때 아르바이트로 벌던 것보다 훨씬 적게 벌지만, 시간은 밤낮 없이 풀타임으로 써야 하고. 저는 자취를 하는데, 워낙 월급이 적으니 계속 신용카드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오더라고요. 병원 갈 시간도 없지만, 쭉 다니려면 돈이 없어서 가기 힘든 경우도 많아요.” (관계자 D)

지난해 아이돌 산업 관계자 인터뷰집 <아이돌 메이커>를 진행하면서 가장 인상 깊게 다가온 부분이 있습니다. 보컬 트레이너 김성은 씨가 하신 말씀인데요. 그는 아이돌 트레이닝 과정에서는 가정과 학교에서 해야 하는 사회화 작업이 이뤄지기 때문에 트레이너들 스스로도 필사적인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아이들을 만나고 수업에 열중할수록, 반대로 자신의 삶이 없어져서 허탈하다고. 

“제가 아티스트로서 못 가졌던 것들을 트레이너로서 느끼는 보람으로 채우고 있었거든요. (중략) 아이들이 하나씩 좋아지고 가수가 되어가는 것에 대해 굉장히 뿌듯하고, 자부심도 있어요. 또 아이들이 데뷔하고 나서도 누구보다 든든하게 받쳐줄 수 있는 존재, 사회생활을 하다가 힘들면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선배 같은 역할을 하면서 감정적인 교류가 이뤄지잖아요. 여태까지는 그런 걸로도 충분히 행복했는데, 한 가지가 더 필요해진 거죠.” (책 <아이돌 메이커>, 43p)

김성은 씨가 말씀하신 ‘한 가지’는 자기 작품에 대한 열망이었습니다. 바쁜 스케줄, 연습생들 위주로 돌아가는 자신의 일상에 종종 피로함을 느끼지만, 그보다 더 아쉬운 점은 보컬리스트로서 본인이 하고 싶은 것들을 충분히 해낼 시간이 없다는 점이라고 하셨죠. 물론 김성은 씨는 보컬 트레이너이고, 특정 기획사에 소속된 분이 아닙니다. 하지만 기획사 내부 스태프들도 결국 본질적으로 같은 고민을 합니다. 구체적인 상황과 업무 형태만 다를 뿐이죠. 그들의 삶을 신경 쓰면서 정작 나 자신의 인생은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고 합니다.

“무대 위에 오르는 아이돌들을 보면서 어느 순간 ‘나 자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헷갈린다”고 말하는 스태프가 있었습니다. 평소에 여가 활동조차 제대로 즐기기 힘들 정도로 많은 일을 하지만, 정작 나에게 남는 건 무엇인지 곱씹게 되는 거죠. 지금 겪는 어려움이 정말 ‘나’를 위한 것인지 의심이 간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낮은 임금까지 불만스럽게 느껴지면 결국 일을 그만두게 되는 것입니다.

한편 실제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생기는 어려움에 관해 토로하는 스태프도 있었습니다.

“진짜 밤 새서 기획하고, 어렵게 컨펌 받아서 촬영만 바로 진행하면 되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런데 부서끼리 협조가 잘 안 되고, 애들은 ‘안 찍을래요’ 하고. 기획 단계에서 말해주면 됐을 텐데 정작 모든 걸 준비해둔 상태에서 이런 상황이 나오니까 진짜 화나더라고요.” (관계자 E)

“제가 내놓은 아이템이 회사 내부에서 문제가 생겨서 무산됐는데, 그걸 얼마 뒤에 다른 아이돌 그룹이 갖고 나와서 잘된 거예요. 속상했죠.” (관계자 F)

부서가 다른 스태프들끼리 문제를 빚는 경우는 일반 회사에서도 흔히 발생합니다. 하지만 콘텐츠의 주인공이 '영혼 없는 물건'이 아니라 '자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 다릅니다. 콘텐츠를 기획하는 것은 스태프들의 몫이지만, 아이돌들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야하기 때문에 의견이 맞지 않으면 일이 무산될 수도 있습니다. 또 연예 산업 특성상 많은 부분을 스태프 개개인의 감각에 의존하다 보니 적절한 마케팅 타이밍을 놓치면 예상보다 더 아쉬운 결과를 받아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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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계속 ‘엔터 직원’을 하나요?

이처럼 여러 가지 특수한 상황을 감내하면서도 일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애들이 잘되면 기분이 좋아요. 1위하면 당연히 좋고, 그러면 회사 분위기도 저절로 밝아지고요. 새벽까지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애들이 지나가면서 ‘고생 많으세요. 감사합니다’ 하면 보람이 느껴지죠. 그리고 신인 때부터 ‘우리 같이 열심히 해서 잘되자!’ 서로 응원하다가 진짜 잘되고 나면 그 기쁨이 있어요.” (관계자 A)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굉장한 만족을 안겨줄 수 있는 직장이죠. 그리고 회사가 유명하다면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이 회사 다녀? 굉장한 연예인들하고 일하는 구나’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고요. 젊을 때 해볼 만한 일이긴 해요.” (관계자 C)

개중에는 눈에 띄게 현실적인 이유를 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꺼내놓은 진심이라고 생각했죠.

“자취방 월세 낼 돈이 급해서? 하하. 진짜 그게 이유인 것 같은데요. 하지만 당연히 일에서 얻는 재미있기 때문에 못 그만두는 것도 크죠. 저 같은 경우에는 멤버들하고 회사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커뮤니케이션을 완벽하게 해냈을 때 오는 성취감이 있어요.” (관계자 D)

“이쪽에서 일한다고 하면 주변에 부러워하는 사람이 반, 무시하는 사람이 반이에요. 부러워하는 사람에게는 ‘나 이만큼 해’라는 걸 보여줘야 하니까 못 그만 두고, 무시하는 사람에게는 오기로라도 버티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죠. 개인적으로는 양복 입고 하는 일에 자신이 없어서 이 일이 좋기도 해요.” (관계자 F)

힘든 상황에서도 ‘엔터 직원’들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과 보람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높은 앨범 판매량과 연말 시상식 성적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쾌감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크다고 말합니다. 저 또한 그 이야기를 하면서 눈을 반짝이는 분들이 멋지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포장지를 벗기면 생각보다 눈물겨운 일상이 드러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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