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사연: 외로움에 관하여
다섯 번째 사연: 외로움에 관하여
2017.05.07 12:54 by 오휘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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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서 날아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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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 안녕하세요! 외로움에 관한 사연을 보냄으로 오랜만에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사실 외로움을 잘 느끼지 않는 편이에요. 고등학교 때부터 유학생활을 해왔기에 혼자 있는 게 더 편할 때가 많거든요. 혼자 산책하는 것도 좋아하고, 전시 보러 다니는 것도 좋아하고, 서점에서 혼자 책 구경하는 것도 좋아해요. 물론 혼자 밥을 먹는 건 여전히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요.

그런데 요즘에는 이런 저도 부쩍 외로움을 느끼는 것 같아요. 아마도 남들과 다른 스케줄로 생활하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 저는 잠정적으로 취업을 포기하고, 마음 맞는 친구와 함께 소소하게 사업 아닌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거죠. 동시에 전부터 배우고 싶었던 스페인어도 배우고, 즉흥 여행도 떠나고, 가보고 싶은 예쁜 곳들을 찾아다니며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그래서 제 주위 사람들은 제가 매우 행복해 보인다고 부러워하는데, 정작 저는 더 외로움을 느끼는 것 같아요, 이상하게 말이죠. 즐겁게 한 주를 보내고 주말이 다가오면 불현듯 외로워지는 거예요. 가만히 눈을 감고 제 친구들의 일상을 생각해봅니다. 그들은 매일 야근에 시달리고 있긴 하겠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무언가를 이루어가고 있는 거겠죠. 그리고 주말이면 가족이나 연인과 시간을 보낼 겁니다.

저의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열심히 놀아가며 한 주를 보내고 나면 외로운 주말이 저를 기다리고 있어요. 다들 ‘월요일마다 월요병을 앓는다’며 출근하기 싫어하는데, 저는 오히려 월요일이 오기를 기다리게 되는 거예요. 주말만 되면 다들 소중한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걸 보면서, ‘나는 사람들에게 소중하지 않은 사람인 걸까. 주말을 함께 보낼 사람이 없다는 건, 내게도 소중한 사람이 없다는 걸까.’ 그렇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어느새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저를 발견하곤 해요. 쓰다 보니 점점 넋두리가 되어가는 것 같긴 하지만요.

언젠가 작가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이 일하는 시간에 글을 쓴다고 말씀하시는 걸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저도 남들 일할 때 따라서 일을 하면 외로움을 덜 느끼게 되는 걸까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이런 백수와도 같은 나날들이 너무나 좋은 건 어쩔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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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낮에, 어딘가의 카페에서 보내는 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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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주신 사연 잘 읽어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깊이 공감하며 읽을 만한 사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만큼은 몇 번씩이나 고개를 끄덕여가며 공감한 이야기였습니다. 종사하고 있는 직종은 물론 다르겠지만, ‘프리랜서’라는 공통분모에서 오는 반가움 때문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열 건도 넘는 많은 사연을 하나하나 읽어보며 깨달았습니다. 이 세상에는 참 여러 부류의 외로움이 있다고요. 단순히 몸이 외로운 외로움이 있고, 타인의 변질한 태도와 마음으로부터 스며드는 외로움이 있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을 홀로 견뎌내야만 하는 현실에서 오는 외로움도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자신의 그러한 외로움으로 인해 매일을 지옥처럼 느끼기도 했고, 다른 누군가는 매일을 눈물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눈물을 흘릴 정도까진 아니지만, 무료함에 몸부림을 치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슬픔이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당신이 슬프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람은 당신이다.’라는 말처럼 각자의 고민과 힘듦에는 경중이 없듯, 외로움 역시 마찬가지라는 말입니다.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수많은 사람은, 각각이 자신의 외로움을 가장 고독하게 여길 것이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참 외로우셨겠습니다. 그리고 참 외로우시겠습니다.

다른 이유에서겠지만, 주말에 혼자인 것은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아직 ‘완벽한’ 전업 작가는 아니기에, 평일에는 연재 및 편집, 작품 집필 작업을 하고 주말이면 국어 학원에서 학생들의 교과 공부를 돕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휴일을 확실히 정해두지 않고 지내는 거죠. 그리고 제 주변 사람들 역시 그런 저를 보며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너는 프리랜서라 좋겠다. 쉬고 싶으면 아무 때나 쉴 수 있는 거잖아.” 뭐 그런 말과 함께 말이죠. 그렇지만 쉼과 일함의 경계가 모호한 상태에서 오는 은근한 스트레스를 모르고 하는 말일 겁니다.

토요일 밤 열 시가 넘어서야 학원 문을 나섭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주말이 반 토막 나 있는 거죠. 익숙하다는 듯이 친구가 운영하는 주점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다음 날 하루 종일 잠에서 허우적댈 만큼 깊이 취하곤 하는 겁니다. 그럴 때면 특별한 생활 패턴에서 오는 기묘한 외로움이 가시는 것만 같습니다. 편지를 보내주신 분과는 다소 다른 방식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프리랜서라는 공통분모에서 공감한 거예요.

그리고 동시에 ‘나 역시도 알게 모르게 참 외로웠겠구나.’ 뒤돌아보게 됐습니다. 나는 주변 사람들의 마음의 총량보다도 훨씬 더 진하고 풍부한 파도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범람을 감당해내기 위해, 그 파도 속에서 익사하지 않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혼자 해소할 수 있는 외로움이 있는 반면, 혼자서는 달랠 수 없는 외로움도 분명 있었겠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름띠처럼 남은 외로움은 응고되고 농축되어 여전히 제 마음속 한구석에 남아있겠죠. 어느 한순간 튀어나오는 냉소적인 표정과 뾰족한 못난 마음들은 아마 그 ‘진한 외로움’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참 외로웠겠습니다.

그렇지만 좌절하지 않아요. 글을 쓰며 나의 외로움과 닮은 것은 뭐가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용연향’이라는 것을 떠올렸습니다. 용연향은 향유고래의 분비물로서 아주 비싼 값에 거래되는 물질인데요, 그것을 알코올에 녹여 향수를 만든다고 합니다. 나는 나의 외로움을 용연향 비슷한 것으로 여기기로 했습니다. 정제하기 전에는 아주 고약한 향을 내지만, 가공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그 무엇보다도 향기로운 것이라고요. 나는 나의 시커멓게 응축된 외로움을 아껴두기로 했습니다. 외로움을 정제해줄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그 숨겨뒀던 외로움을 슬그머니 내놓겠다고요.

그때까진 되도록 저의 바쁜 생활을 즐겨보기로 했습니다. 삶의 낙 같은 건 분명치 않지만, 향기로운 미래를 기다리며 잘 버텨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편지를 보내주신 분 역시 너무 외로움을 비관적으로만 생각하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전시회와 서점 구경을 조금 더 소중하게 여기셔도 좋겠습니다. 너무 적적할 때에는 외로운 우리끼리 만나 도란도란 맥주나 한잔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늘 의미 깊고 소중한 일상 보내고 계시길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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