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퍼는 뽀드득
와이퍼는 뽀드득
2017.05.22 13:07 by 정원우

약속을 마치고 달이 기울기 시작할 때 집에 도착했다. 현관을 여니 환하게 켜져 있는 불빛과 코를 찌르는 알싸한 향이 나를 맞는다. 거실에 쪼그리고 앉아계신 어머니가 보인다. 퇴근 후라 지친 기색이 역력한 어머니지만, 그 와중에 또 무언가에 몰두하고 계신다. 가족이 먹을 김치를 담그고 계시는 중이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사서 먹으면 되지 왜 고생이냐'고 한마디 했다.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어머니 옆에 쪼그려 앉았다. 주방에서 도구를 챙겨와 어머니를 도왔다. 갑자기 눈가가 촉촉해진다. 어느덧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 그렇다. 나는 파를 썰고 있었다. 시야가 흐려진다. 일을 할 수 없어 화장실에 가서 눈물을 씻어내고 핸드폰을 들었다.

‘눈물 안 나게 파 써는 방법’을 검색했다. 어머니의 지친 뒷모습에도 나지 않던 눈물이 파 때문에 쏟아지다니… 사나이는 태어나서 3번 운다는데 이렇게 한 번을 써버렸다. 아무튼 검색해본 대로 파를 입에 물고 선글라스를 쓰고 옆에 향초를 켰다. 확실히 눈물이 눈이 따갑지 않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다. 다시 눈이 따갑기 시작한다.

손이 매워 눈물을 닦아내지도 못한다. 누가 닦아줬으면 해서 옆을 보니 어머니의 볼에도 눈물이 흐르고 있다. 분명 어머니 손도 매울 것이다. 몇 번의 세수를 거치고 나서야 일을 마무리했다. 시야가 흐려져 몇 번이고 손을 베일 뻔했다. 폭우 속에서 운전을 하는 느낌이었다.

(출처: shutterstock.com/DUSAN ZIDAR)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였다. 폭우 속에서 운전을 하던 중, 옆 차량에서 튄 물줄기 탓에 시야가 가려져 아찔했던 적이 있다. 와이퍼가 없었다면 그 폭우 속에서 운전할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과거에는 와이퍼 없이 빗길을 운전해야 했다. 자그마치 30년이 넘는 시간이다. 1885년 카를 프리드리히 벤츠가 삼륜차를 최초로 발명하고 18년이 지난 1903년의 일이다.

자동차는 남성들의 대표적인 로망이지만, 와이퍼를 발명한 사람은 여성이다. 미국 엘러버머주에 살던 마리 엔더슨 부인. 뉴욕에 잠시 들렀을 때 진눈깨비가 너무 심해 차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 문제에 대해 엔더슨은 오래 고민했다. 그리곤 와이퍼를 발명해냈지만, 상용화되지 못했다. 수동식이라 운전자나 옆 사람이 직접 물기를 닦아줘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상상해보라. 조수석에 탄 사람이 손을 뻗어 자동차 앞 유리를 닦으며 나아가고 있는 풍경을. 어렵사리 특허까지 냈지만 수익을 올리지 못했던 이유다.

1917년 다른 여성이 전동식 와이퍼를 발명했다. 샬롯 브릿지우드 (Charlotte Bridgwood). 전자식 방향 지시등을 개발했던 노하우를 살려 와이퍼를 개선했고, 특허까지 출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특허 기간이 짧아 큰 수입을 얻지 못했다고.

(출처: shutterstock.com/PREM WATTHANAKUL)

문득 두 여성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안전한 이동을 가능하게 해준 고마운 분들. 그리고 여기 고마운 여성이 한 분 더 있다. 비록 파 때문이었지만, 어머니의 눈물을 보니 마음에 몽우리가 생긴듯한 느낌이었다. 어머니 눈에 물을 닦아드리는 와이퍼 같은 아들이 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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