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여도, 함께여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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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9 17:50 by 이한나

지난번, 부산 기장의 일광 해수욕장 편을 쓰며 아쉬움을 느꼈다. 일광 해수욕장과 함께 기장의 양대 해수욕장으로 여겨지는 임랑 해수욕장을 건너뛰었기 때문이다. 일광 해수욕장은 동해남부선 일광역에 내리면 도보로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반면, 임랑 해수욕장은 자가용을 이용하지 않으면 일광역에서 시내버스나 마을버스를 타고 한 번 더 이동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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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일광역으로 향했다. 힘들게 찾아갈수록 더 멋진 풍경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동해남부선 열차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이용객들은 종점인 일광역에서 우르르 내렸다. 나도 그들 중 하나가 되어 역을 지나 역 맞은편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한적한 교외라 버스 시간이 들쭉날쭉하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시내버스와 마을버스가 모두 있었고(일반 180, 188, 마을 3, 9를 타고 '임랑삼거리' 혹은 '관음사입구'에서 하차), 지도 어플로 충분히 도착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임랑으로 가는 길에서도 바다를 볼 수 있었다. 해안선을 따라 난 도로 덕분에 생각지 못한 운치를 경험한 것이다. 길은 도시의 분주함을 차츰 벗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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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류장에 내렸다. 많은 수의 차량이 좁은 도로 위에 길게 늘어서 있었다. 평일이 아니어서 정체가 더욱 극심해 보였다. 대중교통을 타고 오길 잘했다 싶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5분 정도 걸었을까? 선명한 해안선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임랑의 바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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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랑’은 아름다운 송림(松林)과 달빛에 반짝이는 은빛 파랑(波浪)의 두자를 각각 따와 지어진 이름이다. 예로부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바다의 아름다움에 감동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해안가에 즐비한 건물이 눈길을 더욱 사로잡는 요즘의 바다가 아닌, 옛 선조들이 보았던 바다의 모습 그대로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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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랑 해수욕장 역시 상대적으로 교외에 있긴 하지만 그 번잡함을 피할 수는 없는 노릇. 여름이 아님에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캠핑과 해수욕, 서핑 등을 즐기고 있었다. 특히 줄줄이 늘어선 민박집들과 한쪽 구석에 있는 캠핑장에는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바다 근처에서 민박을 한 건 대학생 때가 마지막이었는데, 오랜만에 그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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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도와 인도가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아서 걷기에는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다. 솔직하게 평하자면 임랑 해변은 걷기에 좋은 바다는 아니다. 하지만 풍경과 하나 되어 아무 걱정 없이 시간을 보내기엔 안성맞춤인 곳 같았다. 주변에는 가재도구를 챙겨 가족과 함께 나와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떤 세련된 카페도, 근사한 이탈리안 레스토랑도 없었지만, 이곳에는 시골 바다와 같은 푸근함이 있다.

바다를 끼고 걷다 보면 편의점이 하나 나온다. 해수욕을 즐기다 보면 허기도 지고, 때로는 따뜻한 음식이 그리워진다. 그런 사람들을 배려해서인지 편의점엔 바다가 보이는 창가 쪽으로 기다란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다. 꼭 여기서 컵라면을 한 사발 하는 것을 추천한다.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라면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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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랑 해수욕장의 모래사장은 1km에 걸쳐 길게 형성되어 있다. 모래는 아주 고운 편에 속하는데, 덕분에 인도 대신 모래사장으로 걷는 감흥이 퍽 좋았다. 다만 이날 날씨가 쨍쨍한 편은 아니었고, 필자가 집으로 향하는 길에는 비가 내리기도 했다. 그 점이 조금 아쉬웠지만, 바다에는 주변의 어떠함을 뛰어넘는 한결같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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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핑을 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그러고 보니 서핑학교 간판도 주변에 여럿 있었다. 이제는 거의 모든 바닷가에서 이런 풍경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어느 순간부터 보편화되기 시작한 수상 레포츠의 현재를 만나고 있는 기분이었다. 부산 바다는 동해처럼 강하지도, 서해처럼 변화무쌍하지도 않지만, 그 ‘중간적 특성’ 때문에 오히려 바다를 즐기기에 적합한 것 같다. 사람을 잘 품어주는 것 같다고나 할까.

좀처럼 큰 건물을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유독 눈에 띄는 한 건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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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정훈희·김태화 부부가 운영하는 카페 ‘꽃밭에서’였다. 부산만큼 아름다운 도시를 보지 못했다며, 고향인 이곳에 다시 정착하기 위해 세운 건물이라고 했다. 이미 부산 내에서는 명소가 된 지 오래지만, 실제로 가까이서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매주 주말에는 부부가 직접 라이브 공연을 오후 3시에 열고 있단다. 아쉽게도 필자는 평일에 방문해 공연을 보지 못했다. 음료는 5,000~8,000원 선이며, 공연이 열릴 때는 1인당 15,000원을 지불하면 음료와 함께 두 사람의 음악을 즐길 수 있다.

이 카페까지 왔다는 건 임랑 해수욕장의 한쪽 끝에 다다랐다는 뜻이다. 한창 공사 중인 방파제를 따라 배 구경을 하며 걷다 보면 아주 작은 등대를 벗 삼아 낚시를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바다는 하난데, 그걸 즐기는 사람들의 방법은 참 제각각이다. 이렇게 규모가 작은 해수욕장에서도 그 사실 하나만큼은 여전한 것이 재미있다. 임랑의 잔잔한 파도는 그런 사람들을 모두 편안하게 끌어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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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들은 임랑의 맑은 물에서 고기를 잡으며 놀다가, 밤이 되어 달이 떠오르면 사랑하는 님과 함께 조각배를 타고 달구경 하면서 뱃놀이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은 바다와 함께 살아간다. 조용히 눈에 바다를 담으며 홀로 되고 싶을 때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바다를 즐기고 싶을 때도, 임랑 해수욕장은 충분히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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