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모르는 조선족의 언어
당신은 모르는 조선족의 언어
당신은 모르는 조선족의 언어
2017.06.02 17:13 by 제인린(Jane lin)

‘조선족’하면 다소 거칠고, 투박하며, 어눌한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주로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만들어진 것들로, 왜곡된 부분도 많죠. 특히 북한 사투리처럼 들리는 말투가 인상적인데, 이제 그조차 듣지 못하게 될 것 같습니다. 조선족 2~3세 젊은이들이 점점 우리말을 잊어가는 추세라고 하니까요.

(사진:imtmphoto/shutterst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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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자치구인 연길시에서는 우리글과 중국어를 동시에 게재한 광고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사진:웨이보)

실례로 최근 필자는 평소 알고 지내던 중국 한족(漢族) 지인의 논문 마감을 도와준 적이 있습니다. 해당 논문을 작성한 이는 이미 중국의 한 외국어대학교 한국어과에서 십수 년째 한국어 강의를 해오고 있는 전임 강사로, 우리말에 능통한 전문가입니다. 그가 작성한 논문의 주요 내용에는 한국인이 중국 관광 사업에 미치는 영향성에 대한 검토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제와 내용 면에서 흠잡을 곳 없이 완벽한 그의 논문에서 유독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당최 이해하기 힘든 단어와 문장들의 조합이 많았다는 점입니다.

이에 대해 묻자, 그는 자신의 논문지도 교수님이 조선족 출신이라고 답했습니다. 조선족이 쓰는 언어가 상당수 포함된 까닭에 한국인인 필자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이었지요.

한국어를 전공한 중국인들 가운데 상당수는, 중국 내에서 우리말에 가장 능통한 조선족이 거주하는 동북 3성 일대의 대학에서 학위를 받는 이들이 많습니다. 주로 한국으로 유학을 갈 수 없는 처지의 현역 강사들이나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죠.

조선족 교수님이 지도한 작품에서 이렇게 큰 괴리감을 느끼다니… 그저 ‘같은 민족이며, 같은 문자를 쓰고, 같은 언어로 이야기하는 우리 동포’라고만 여겨왔던 상식이 깨지는 경험이었습니다.

조선족의 언어는 ‘조선어(연변말)’라고 불리는데, 주지하다시피 그 형태가 우리의 ‘표준어’보단 북한의 ‘문화어’에 더 많은 영향을 받으며 발전해왔습니다. 지리적으로도 동북 3성에 주로 거주하는 조선족과 북한 주민의 거리가 가깝고, 지난 20세기 동안 조선족 동포에 대한 교육 지원 사업을 대부분 북한 쪽에서 진행해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필자를 경악하게 한 점은 해당 논문의 일부 언어 형태가 북한어인 문화어가 아닌 중국어와 더욱 유사한 모습으로 변모했다는 점이었죠.

실제로 그들의 언어 속에는 문장 사이사이마다 중국어 단어가 등장하는 일이 잦았는데, 이를테면, ‘관광 가이드를 완전히 마치고’라고 표현해야 할 문장에서 ‘가이드를 완러한 뒤’라고 표현, ‘1조원 정도’라고 해야 할 것을 ‘1조원 좌우’로, ‘고려해볼 문제다’를 ‘까오려해볼 문제다’ 등으로 각각 중국어의 뜻과 발음을 차용해 사용한 흔적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조선족 스스로 우리말이 아닌 중국어를 차용한 문장으로 논문 감수를 도왔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서늘한 감정을 불러왔던 사례입니다. 더욱이 최근에는 조선족들이 모이는 공식 석상에서 한족 학교에서 교육받은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한족의 언어인 중국어로 공식 연설을 읽어 내려가는 이들의 수도 상당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중국 최대 포털 사이트 바이두(百度)에서 제공하는 지식인 기능과 같은 네티즌 문답 페이지에 ‘조선족은 중국인입니까?’라는 문의가 게재됐고, 이에 대해 자신을 조선족이라고 소개한 네티즌은 ‘우리의 모어는 조선어이지 한국어가 아니며, 한국어로 말하는 법은 알지만 음성적인 면에서 조선어와 한국어는 다른 점이 많다. 조선어는 오히려 중국어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좋아요’를 1021차례 눌렀다. (출처:바이두(百度))

조선족 자치구에서 조선족을 대표하는 간부로 발탁된 이들 중에도 대부분은 이처럼 중국어로 대화나누길 좋아하고, 중국어와 우리말을 섞어 쓰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기까지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같은 간부들의 행태에 대해 일부 자각 있는 조선족들이 ‘우리 민족을 대표하겠다는 의지가 없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기도 하지만, 한족과 한족의 언어에 대한 충성심은 우리말인 한글을 등한시하는 만큼이나 더 강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물론 조선족들에게도 사정이 있습니다. 과거 이주의 아픈 역사를 가졌고, 현지에서 각종 차별의 대상이 되기도 했죠. 그런 부분들이 이들의 현재 모습을 만들었을 것이라는 분석은 일리가 있습니다. 그들이 가진 기억은 이주 2~3세대를 통해 전해 내려오며 중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륙의 기득권을 차지한 한족의 언어를 능숙하게 하도록 강요했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2000년 제5차 중국인구조사통계에 따르면 조선족 인구는 192만3842명으로 1990년 192만 3361명과 비교해 10년 동안 불과 481명 증가하는 데 그쳤습니다. 이는 중국 내에서 56개 민족의 인구 성장률과 비교했을 때 가장 낮은 수치죠. 같은 기간 조선족을 제외한 소수 민족은 평균 10만 명의 이상의 인구 증가율을 기록했습니다. 묘족, 토가족 등은 각각 150만 명, 230만 명이나 증가하기도 했죠.

지난 10년 동안 중국 내 조선족의 위치와 삶이 얼마만큼 고단했는지를 한 눈에 예측해볼 수 있는 수치입니다.(이 기간 동안 조선족을 포함한 소수 민족에게는 두 자녀 이상 출생할 수 있도록 장려‧지원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죠.) 중국 속에 남겨진 또 다른 우리인 조선족은 그들 스스로의 삶이 곤궁을 거듭하는 동안 모국어인 우리말을 잊는 실정에 이르렀을 것으로 예측할 수 있는 부분이죠.

우리 정부 역시 지난 10년 동안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그속의 또 다른 한국이자 우리 자신이기도 한 조선족에게만큼은 ‘무(無)’ 지원정책이라고 불릴 만큼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분석도 있죠.

문제 인식 자체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지난 1993년, 우리 정부는 조선족이 주로 거주하는 동북 3성 지역에서 사용 중인 우리말 교과서 내의 한글에 상당한 문제가 있는 것을 파악했습니다. 이를 시정하기 위해 교육 지원 사업을 실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고 전해지죠. 당시 우리 정부 쪽 관계자는 “교과서상의 문법 체계의 오류와 언어 순화 등을 위한 작업에 한국어 전문가를 투입하는 등의 방향을 잡았던 것으로 안다”면서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두세 차례 이야기가 오고 갔을 뿐 전면적인 지원 사업은 진척을 보이지 못했다”고 회상했습니다. 이에 대해 중국 정부의 방해나 개입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많았죠.

그로부터 25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난 현재, 우리의 모습을 하고는 있지만 우리말을 모르고 자란 조선족 이주 3세 젊은이들은 당시보다 더 심각한 수준의 언어 절단 현상을 몸소 겪어내고 있는 것이죠.

이 대목에서 다시 한번 자신 고유의 언어를 잊은 내몽고인의 사례를 떠올려봅니다. 중국 내 조선족에 대한 비전 있는 정책과 지원이 하루 속히 이뤄지지 않는 한, 머지않아 우리는 우리의 말과 글로는 더 이상 서로 소통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고 말 것 같습니다.

필자소개
제인린(Jane lin)

여의도에서의 정치부 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무작정 중국행. 새삶을 시작한지 무려 5년 째다. 지금은 중국의 모 대학 캠퍼스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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