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시험으로 블랙리스트를 만든다?
대입시험으로 블랙리스트를 만든다?
대입시험으로 블랙리스트를 만든다?
2017.06.09 17:28 by 제인린(Jane lin)

우리에겐 ‘수능 한파’란 말이 익숙하지만, 중국은 ‘수능 혹서’가 더 어울릴 듯합니다. 매년 6월 이 시기 무렵, 일제히 대학 입학시험이 치러지기 때문이죠. 그런데 최근 온라인상에선 중국 대입 시험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고 합니다.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요?

(사진:Esin Deniz/shutterst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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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시선 

“차라리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게 낫겠어.”

양 교수님의 장녀는 최근 볼멘소리가 늘었습니다. 필자가 중국에 와서 처음 거주했던 아파트 주인이었던 양 교수님 댁의 장녀는 최근 ‘까오카오(高考)’를 앞두고 있죠. 까오카오는 중국의 수능과 같은 대입 시험으로, 매년 6월쯤 3일에 걸쳐 중국 23곳의 성에서 일제히 시행되죠.

양 교수님은 자신의 분야에서 손꼽히는 교수이자, 베이징에 다수의 부동산을 소유한 부호입니다. 하지만 처음 베이징에 거주할 당시엔 ‘막막했었다’고 합니다. 대도시 소재의 명문대 진학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절감했던 이유죠. 이를 통해야 부와 명성을 동시에 얻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서일까요? 자신의 자녀가 내뱉은 이 같은 불만을 ‘볼멘소리’로 치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서는 모양입니다. 중국에서 학벌은 곧 인생의 성공을 담보하는 가장 확실한 보증서가 되어 준다는 사실을 양 씨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올 해 까오카오 응시생의 수는 920만 명이나 됩니다. 그 가운데 베이징대학, 칭화대 등 일부 명문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학생의 수는 소수에 불과하죠.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이 낫다”는 양 씨 자녀의 발언은 일면 일리가 있습니다.

중국의 수능 까오카오. 도대체 무엇을 얻고 무엇을 보장받기에 매년 이다지도 많은 학생이 응시해오고 있는 것일까요.

까오카오 시험장에 들어선 응시생들의 모습. (사진:웨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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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시선

중국에서 까오카오 고득점을 취득했다는 사실은 곧장 성공적인 사회 진출을 의미합니다. 매년 각 지역 1등을 차지한 학생들에겐 ‘장원’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며, 사진과 이력, 부모의 학력과 하는 일, 거주지 등 상세한 내역이 해당 지역 언론을 통해 그대로 보도됩니다. 장원 급제한 학생이 선택, 진학하게 될 대학에 대한 추측성 기사가 쏟아지기도 하죠. 까오카오 수석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를 몰고 다니는 겁니다.

실제로 매년 유명 대학에서는 각 지역의 장원급제 학생이 자신의 학교를 선택한 비율을 공개해오고 있는데, 상당수 장원 급제 학생들은 일명 ‘중점대학’ 또는 ‘1본 대학’이라고 불리는 8곳의 대학으로 진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원급제 학생이 일부 대학에 몰리는 이유는 중국 교육부의 대학 구분 정책에 기인합니다. 중국 교육부는 전국에 소재한 대학을 크게 1본, 2본, 3본으로 구분지어 운영해오고 있는데, 이때 지칭하는 1~3본 구분은 1류, 2류, 3류 대학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지죠. 대학 서열이 국가에 의해 공공연하게 구분지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까오카오 시험 종료 후 채점을 통해 대략적인 자신의 점수를 확인한 학생들은 본인의 성적과 1~3본 대학의 커트라인을 확인해 대학 진학을 결정하게 됩니다.

까오카오를 응원하는 문구가 학교 기숙사 곳곳에 부착돼 있다. (사진:웨이보)

1본 대학에는 한국에도 잘 알려진 베이징대, 칭화대, 인민대, 푸단대, 난카이대, 샤먼대, 상해교통대, 난징대 등 8곳이 포함돼 있습니다. 1977년부터 지난해까지, 까오카오 장원을 차지한 학생 중 약 700여명이 베이징대로 진학했으며, 칭화대 520여명, 푸단대 50여명, 중국과학기술대학 50여명 등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정부가 직접 나서 1류 대학과 2류, 3류 대학을 구분 짓는 중국에서 장원 급제한 학생이 선택한 대학은 매우 중요한 통계 수치가 됩니다. 해당 대학의 명성뿐만 아니라, 그들이 선택한 대학 출신이 현재 중국 정치, 경제, 사회 리더로 다수 포진해 있기 때문이죠.

‘까오카오 찌아요우!’ 중국어로 ‘시험 화이팅’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문구. (사진:웨이보)

이 같은 현상은 비단 최근의 일이 아닙니다. 까오카오는 지난 1966년 문화대혁명으로 폐지된 적이 있었는데, 1977년 재개된 이후부터 현재까지는 까오카오 고득점자가 사회에서 안정적인 성공을 보장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시진핑 주석이 꼽힙니다. 시 주석은 마오쩌둥과 중국 혁명 세력의 리더로 꼽히는 시중쉰 전 국무원 부총리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실각으로 인해 약 7년간 량자허에 거했죠. 이후 칭화대학교 화학과 졸업 후 법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면서 지방 행정가이자 공산당원으로서 입지를 다져나갔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또 다른 인물은 국무원 총리인 리커창 중국공산당 중앙상임위원입니다. 그는 문화대혁명 시기 지식인 하방 정책의 여파로 1974년 무렵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나, 1977년 재도입된 까오카오 시험을 치루고 이듬해 베이징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합니다. 저우창(周强) 중국 최고법원장과 충칭시 보시라이(薄熙來) 전 서기 등 내로라하는 정치계 거물들 역시 각각 칭화대, 베이징대 출신들이죠.

정치성향과 당에 대한 사상 등을 묻는 내용을 골자로 한 ‘졸업등기표’의 모습. (사진:또우반(豆瓣))

명문 대학 출신이 리더가 되는 분야는 비단 정치계뿐만이 아닙니다. 세계 영화계의 거물로 꼽히는 천카이거(陈凯歌), 장이머우(張藝謀) 감독도 이 분야 최고 명문대학으로 꼽히는 베이징영화학원 출신자들이죠.

이 같은 현실이야말로 ‘자녀의 출세를 기대하기에 앞서 출신 대학을 먼저 관리해야 한다’는 말이 상식처럼 받아들여지는 이유일 것입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출세하는 게 뭐가 문제겠습니까. 문제는 까오까오가 정부의 입맛에 맞춰져 있다는 점이겠지요. 실제로 매년 까오카오에는 응시자의 정치적 성향을 묻는 문제가 단골로 출제됩니다.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는 응시자의 사회적 성공을 담보하기에 앞서 그의 정치성향이 민감한 부분이기 때문일 것이지만, 우리의 논술 시험과 유사한 형태의 ‘작문’ 과목에서 당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학생일수록 ‘정답’이라고 여기는 현상은 뭔가 이상해 보입니다. 정부의 입맛에 맞는 인재를 양성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것이죠.

올해 진행된 베이징 일대의 ‘까오카오’ 논술 시험에도 이 같은 정치 성향과 당의 충성도를 측정하는 문제가 출제됐습니다. 문제는 총 2가지였으며, 응시생은 두 가지 문제 중 하나를 선택해 서술하면 되는 형식입니다.

 문제 1)  ‘인간의 마음에는 유대가 필요하며, 중국의 현재 정치, 경제, 사회 상에서 지속적인 발전과 사회의 안녕을 위해서는 ‘인적 연결’이 중요하다. 인간의 마음과 마음이 유대와 응집을 통해 국가가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제목으로 한 편을 작문하십시오. 단, 작문의 내용에는 주장의 논거가 충분히 포함되어야 한다.‘

 문제 2)  오는 2049년은 공화국 설립 100년을 맞는 해다. 공화국의 100년 번영을 위해 당신이 어떠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작문하시오. 이때 작문의 내용에는 그림이 포함되거나, 언어 묘사를 통해 다양한 서술을 할 수 있다.

당의 충성도나 중국 고유의 사상에 대한 응시자의 사고 방향성을 측정하기에 적당한 질문들이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중국 정부는 명문 대학 입학 후 졸업을 앞둔 예비 졸업생을 대상으로도 당에 대한 충성도 등을 감독하고자 하는 속내를 감추지 않고 있습니다.

최고 명문대로 지칭하는 베이징대 졸업을 앞둔 학생들에게 매년 5~6월 즈음 당에 대한 충성심과 정치 성향성을 묻는 내용이 담긴 질의문을 발부하는데, 졸업을 위해서는 A4용지 4장에 해당하는 해당 ‘졸업등기표(毕业登记表)’를 작성해야 합니다.

질문의 대부분은 예비 졸업생의 정치성, 당에 대한 충성도, 간접 투표와 직접 투표 등 정치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문제는 해당 졸업 등기표가 대학 측이 배포, 관리하는 것이 아닌 학생회 소속 중 이미 공산당원으로 가입해 활동해오고 있는 당원들이 일괄적으로 맡고 있다는 것이죠. 졸업생이 사회에 진출할 시 인재에 대한 블랙리스트 작성용으로 활용해오고 있다는 지적도 곳곳에서 일고 있습니다.

까오카오 고득점을 통해 명문대학에 입학한 학생에게 사회적 출세를 보장하는 한편, 그들에게 당에 대한 충성심을 은밀히 강요, 당의 호위병으로 키우려 한다는 지적은 일견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최근 온라인 여론의 장을 통해선 ‘까오카오는 단순한 대학 입학시험에 그치는 것이 아니며 사회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보이지 않는 세력과 그들이 쥐여주는 작은 권력을 출세라 여기는 일부 호위병을 양성하기 위한 제도일 뿐’이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는 형국입니다.

이쯤 되니 까오카오란 시험에 중국의 모순과 한계가 농축돼 있다는 기분을 지워내기 어렵습니다.

필자소개
제인린(Jane lin)

여의도에서의 정치부 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무작정 중국행. 새삶을 시작한지 무려 5년 째다. 지금은 중국의 모 대학 캠퍼스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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