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애인 자식에게도 공평한 관심을!
비장애인 자식에게도 공평한 관심을!
비장애인 자식에게도 공평한 관심을!
2017.06.13 15:00 by 류승연

딸에게 더 신경 써야겠다는 경각심이 든 것은 장애인 형제를 둔 비장애 형제자매의 고통, ‘나도 장애인으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걸’이란 글을 쓰고 난 이후부터다. 각계의 충고가 우수수 쏟아졌는데 “딸에게도 공평한 관심을!”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당시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한 건 장애인 형제를 둔 채 자라 이미 성인이 된 비장애 형제자매들의 의견이었다. “부모님이 나에게도 관심을 보였더라면…”.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은 이들이 아직도 부모를 원망하는 것을 보고 뜨끔했던 것이다. 주변에서도 때때로 보곤 한다. 장애인 가정이 아니더라도. “동생을 더 예뻐했어” “나한테 해 준 게 뭐야!”. 편애로 인한 상처는 성인이 되어도 아물지 않았다. 하물며 장애인 형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더 그래야했다면….

나는 마흔 살이 된 내 딸이 “엄마가 동환이만 신경 쓰느라 내 인생을 망쳤어!”라고 소리 지르는 광경을 상상하곤 아찔해졌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랬다간 아들도 딸도…. 모두의 인생이 엉망이 될 것 같았다.

마침 그 때쯤 아들의 특수반 선생님으로부터도 딸에게 더 많은 관심을 쏟으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런 말이 있어요. 장애가 있는 우리 아이들은 부모가 태산만큼 정성을 쏟아도 손톱만큼 자란다구요. 하지만 비장애인 자식은 장애인 자식에 쏟는 정성의 반만 들여도 태산만큼 자란다구요”

해야 할 일이 자명했다. 가야 할 길도 선명했다. 깨달음을 얻은 뒤 직접 실천에 옮겼다.

01

우선 딸과 함께 하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더 많이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주로 잠들기 전 잠자리에서 이뤄지던 딸과의 대화시간을 해가 떠 있는 시간대로 옮겼다. 학교와 학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책을 읽었는데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딸은 쉴 새 없이 쫑알쫑알.

1학년 때는 스스로 공부를 하게 했는데 이젠 매일은 아니라도 밤이면 수학익힘책도 풀고 연산 문제집도 보며 모르는 부분을 함께 고민한다. 엄마와는 눈을 맞추고 대화하는 시간을 늘렸다면 아빠와는 놀이시간을 늘렸다. 부녀만의 극장 데이트를 하기로 했으며, 주말이면 체스 게임도 정기적으로 하기로 했다.

잘 되고 있냐고 물어보면…. 노력하고 있다…고 대답하겠다. 딸과의 대화시간은 아무 문제없이 잘 늘어가고 있는데 공부를 봐주는 시간엔 나도 모르게 욱하며 혈압이 오를 때가 많아진 탓이다.

욱하는 나도 문제지만 철없는 아빠도 문제다. 저번에는 둘이 애니메이션을 보고오라 했더니 글쎄 딸만 극장 안에 넣어놓고 자기는 밖에서 영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단다. 애니메이션이 재미없다는 이유였다. 게다가 그 사실을 딸의 핸드폰을 보고나서야 알게 됐다.

“태림아~ 극장에 혼자 있는데 깜깜해서 무서워~”라고 딸이 친구에게 보낸 문자를 발견한 것이었다. 나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고 결국 얼마 뒤 아빠는 딸과의 극장 데이트를 다시 해야 했다. 이번에는 함께 극장 안에 들어갔다는 인증샷까지 찍어서 보냈다.

어쨌든 그렇게 아빠와 엄마가 딸에게 쏟는 관심을 의도적으로 늘려가면서 딸에게도 조금씩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일단 문제의 그 발언. “나도 장애인으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말이 쏙 들어갔다. 가끔 물어본다. “수인아~ 지금도 차라리 장애인으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것 같아?”라고 물으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아니”라고 대답한다.

팁도 하나 얻었다. 남동생에 대한 부담을 부모가 앞장서서 덜어주자 동생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더욱 솟아나게 된 것이었다. 가끔 딸이 동생의 장래에 대해 걱정을 하곤 한다.

“엄마, 동환이는 나중에 어떡해?”

그럴 때마다 나는 말한다. 수인이 너는 걱정하지 말라고. 너는 네 인생을 행복하게 살 것만 생각하라고. 나중에 수인이랑 수인이 남편이랑 수인이 자식들이랑 알콩달콩 재미있게 살 생각만 하라고. 무조건 너 스스로가 행복해지는 것만 생각하라고. 동환이 문제는 엄마아빠가 다 알아서 준비해 놓고 하늘나라로 갈 거라고.

그러면 딸이 묻는다. “엄마, 그래도 내가 일주일에 한 두 번씩은 회사에서 퇴근할 때 동환이 보러 가도 되지? 나도 보고 싶단 말이야. 그리고 내가 남편이랑 외국여행 갈 때 동환이 데리고 가도 되지? 동환이도 홍콩에 가서 만두(딤섬) 먹으면 좋아할 것 같아”.

그때서야 그러라고 하면 갑자기 딸이 아들에게 달려간다. 뽀로로를 보고 있던 아들을 뒤에서 꽉 껴안으며 “에구 귀여운 우리 동환이~ 자, 누나한테 뽀뽀해봐. 뽀뽀~”라고 한다. 물론 누나한테는 절대 뽀뽀를 안 하는 아들은 귀찮다는 듯 “잉잉~” 소리를 내며 벗어나려 안간힘을 쓴다. 그 모습을 보며 딸과 나는 까르르.

 

02

다른 가정에서는 당연한 일인 이런 일상이 장애인 가정에서는 큰 결단을 내린 상태에서 행해진다. 딸과 대화를 하고, 딸의 공부를 봐주고, 딸과 놀아줄 시간 동안 장애인 아들이 가만히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집안에서 칠 수 있는 사고들(옷을 벗거나, 창문을 죄다 열어놓거나, 옷을 적시며 물놀이를 하거나, TV를 앞뒤로 밀거나, 집안 곳곳에 실례를 해 놓거나 등등)을 치며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그 모든 걸 못 본 채 하고 누나에게 집중하려 하면 갑자기 달려와 내 손을 잡고 위아래로 흔든다. 노래를 불러달라는 뜻이다. 그러면 ‘악어떼’ ‘그대로 멈춰라’, ‘쥐가 백 마리’ 등을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불러야 한다. 방해를 하는 것이다.

“안 돼. 누나랑 얘기하니까 동환이는 잠깐 기다려”라고 말하면 이번엔 누나를 밀어내기 시작한다. 엄마는 내 거라고. 누나는 저리 가라고. 말은 못해도 행동으로 의사표현은 다 한다.

그래서 딸과의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잠시 동안이라도 엄마를 놓아 줄 강력한 보상재가 필요하다. 바로 핸드폰이다. 글씨도 못 읽는 아이가 눈도 쫓아가지 못할 정도의 빠른 손가락 놀림으로 뽀로로, 아이쿠, 코코몽의 영상을 찾아 휘리릭 넘기며 집중을 한다. 사실 장애 아이들에게 핸드폰을 주는 건 금기시되고 있다. 핸드폰의 화려한 자극에 중독되면 다른 자극에는 큰 반응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핸드폰을 꺼낸다. 현재까지는 핸드폰을 뛰어넘는 보상재를 찾지 못한 탓이다. 하루 종일 손이 가는 아들, 하루 종일 아들에게 꽂혀있는 시선.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니? 부모는 너 혼자만의 것이 아닌데…. 누나에게도 엄마가 관심을 가질 시간을 좀 다오.

비장애인 자식과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장애인 자식 손에 핸드폰을 쥐어주는 나는 나쁜 엄마인 걸까? 설령 나쁜 엄마라 해도…. 나는 선택했다. 이 길을. 장애인 자식에 올인하다가 정작 비장애인 자식의 마음에 장애를 남기는 오류를 저지르지는 않으리라.

 

03

그동안은 쌍둥이 부모가 아닌 장애 아이 부모로서의 정체성을 더 크게 갖고 살았다. 장애 아이를 키운다는 건 그런 거다. 가정의 모든 중심이 장애인 자식에게 쏠린다. 그러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매 순간마다 일어난다. 나뿐만이 아니다. 아마 많은 장애인 가정에서 비슷하게 겪는 문제일 거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러다보니 여기저기서 삐걱대는 비장애 형제자매의 소식이 전해진다. 마음의 문제를 안게 된 비장애 형제자매의 모습이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되었다. 보통의 가정에서라면 ‘자식을 편애하지 말자’ 정도로 끝날 일이지만 장애인 자식을 둔 가정에선 비장애인 자식에게도 공평한 관심을 갖는 게 여러 정황 상 어려운 일이다. 어떤 것을 우선순위에 둘 것인지 부모가 결단력을 갖고 방향성을 잡아야만 하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 부부는 비장애인 자식, 너만이라도 제대로 살리겠다(?)는 각오 아닌 각오를 다지고 있는 중이다. 어차피 장애아인 아들을 키우는 건 ‘낳은 죄’가 있는 우리 부부가 죽을 때까지 져야 할 몫이다. 아무 죄도 없는 딸은, 딸만이라도…. 온전한 자신의 삶을 사는 행복을 누리길 바란다.

비록 장애인 형제자매가 있지만 구김살 없이 마음이 맑은 어른으로 자라게 된다면, 그것이 아마 내가 세상에 태어나 가장 잘한 일이 될 게다. 그것이 나의, 우리 가족의 희망이기도 하다.

 /사진:류승연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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