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사연: 죄책감에 관하여
열세 번째 사연: 죄책감에 관하여
2017.07.05 16:56 by 오휘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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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나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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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어느 무덥던 여름날이었습니다. 친모가 어떻게 내 번호를 알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내게 온 보고 싶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봤을 때, 저는 이미 십여 년 넘게 어머니가 없이 살고 있었고, 당연히 어머니라는 존재를 부정해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찾아오시기라도 하면 도망을 쳤고, 가슴 깊이 못 박는 말만 해댔습니다. 모든 것을 피해 먼 곳의 대학교로 갔습니다.

“잘 지내니? 엄마야, 보고 싶다.”

라는 문자에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엄마가 필요한 나이가 지났다고, 난 이제 다 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우습습니다.

제가 일주일간 술을 마시며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휴대폰 번호를 바꿔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십여 년이 더 흐른 지금, 나는 모든 것을 피해 한국이 아닌 외국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야 당시의 어머니가 내게 연락을 하기까지 얼마나 큰 결단이 필요했고 용기가 필요했을지 돌이켜보는 겁니다. 올해 봄, 잠시 한국에 들어갔을 때 어머니를 찾아보려 했지만, 방법이 없었습니다. 재혼하셨다는 사실밖에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이 모진 딸이 어느덧 자라, 어머니가 결혼하고 나를 낳으셨던 나이가 됐습니다. 그리고 이제 어머니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보고 싶어 하고 있습니다. 그때 어머니의 연락에 통화 버튼을 누를 용기가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봅니다.

무더운 한국 날씨에 몸 아픈 곳 없이 잘 지내고 계시기를 바랍니다. 보고 싶은 나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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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한국에서

사진: 영화 <굿 윌 헌팅>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저는 <굿 윌 헌팅>이라는 영화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극 중 인물인 ‘윌(맷 데이먼)’은 모든 분야에서 재능을 보이는 수재이지만, 어린 시절 겪은 학대 등으로 인한 상처로 어두운 나날을 살아가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그를 맡게 된 심리학 교수 ‘숀(로빈 윌리엄스)’은 그의 상처를 알아보곤, 그를 몇 번이고 껴안으며 한마디의 말을 반복합니다.

“It's not your fault(네 잘못이 아니란다).”

윌은 숀 교수의 그런 말을 태연한 척 받아들이다, 그의 진심 어린 위로를 깨닫곤 이내 울음을 터트립니다.

저는 이 장면을 특히 좋아합니다. 숀 교수가 위로하고, 괜찮다는 말을 건네는 사람은 분명 윌인데, 저는 이 장면을 볼 때마다 제 죄책감마저 씻겨 내려가는 기분을 느낍니다. 내가 어떤 상황에 놓였든, 이건 내 잘못이 아니라고, 어쩔 수 없는 사연이 있었을 것이라고요.

저는 ‘그럴 수도 있어.’라는 말 역시 종종 읊조려보곤 합니다. 모든 일이 일어나는 데엔 각각의 사정과 이유가 있어서, 어떤 힘들고 슬픈 일도 생길 수 있는 거라고요. 그리고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그럴 수 있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더군요.

어머니께서 어떤 사연과 심경 때문에 당신의 곁을 떠나 계셨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무턱대고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수는 없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몇 번이고 연락을 하시고 찾아오신 걸 보면, 딸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럴만한 ’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보자님께서 한때 어머니의 전화를 받지 못했던 것, 그리고 모든 것을 피해 외국으로 가셨던 것 역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 아닐까요? 그때의 마음이 괴로웠기 때문에, 피하거나 도망가지 않고선 버틸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하신 건 아닐까요?

세상 모든 사람은 각자의 아픔과 우울을 안고, 겪어가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들 각각에겐 자신의 우울과 아픔이 가장 무거운 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후회할 만한 말과 행동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다 덮어두고 숨거나 도망쳐버리기도 하는 겁니다. 그건 제보자님과 제보자님의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죠, 그럴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죄와 그로 인한 죄책감이 있습니다만, 큰 죄가 아님에도 큰 죄책감을 품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모든 게 당신의 잘못만은 아니라고요. ‘It's not your fault.’라고요.

계신 곳이 어떤 나라의 어떤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그곳이 몹시 더울지, 아니면 비교적 선선할지는 모르겠지만, 마음만큼은 가뿐하게 지내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어머님 역시 무더운 한국에서 몸 관리 잘하시기를 저도 함께 기원하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꼭 다시 만나게 되기를.

 

/사진: Tajborg / shutterst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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