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기업 ‘SHE’ 대표 엘리자베스 샤프
르완다 키갈리 인근 마을에 사는 나디아는 학교에 가기 망설여진다. 어젯밤부터 생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작아져 못 입는 옷을 엄마 몰래 조각내어 생리대 대신 사용했지만, 생리혈이 샐까 못내 불안하다. 결국 나디아는 오늘도 학교에 가지 못한다. 나디아의 친구들도마찬가지다. 르완다 지역 여자아이들은 나무껍질, 진흙 등을 생리대로 사용한다. 시중에서 파는 생리대 가격이 비싸기 때문. 위생상의 문제와 불편함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매달 한 번씩 찾아오는 생리가 개발도상국 여성들이 교육받고, 일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더 정확하게는 생리 중에 사용할 적절한 생리대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르완다 지역 여성들에게 생리대를 보급하는 사회적기업이 있다. 2007년 뉴욕과 르완다에 설립된 사회적기업 ‘SHE(Sustainable Health Enterprises)’이다. SHE는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바나나 줄기에서 추출한 섬유질로 현지에서 직접 친환경 생리대를 만들어 보급하고 있다. 지난 7월 말, 개도국 여성 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는 ‘SHE’의 창립자 엘리자베스 샤프(Elizabeth Scharpf)를 서면 인터뷰했다.
그녀는 “친환경 생리대 제작은 내 인생을 바꿔놓았다”고 고백했다. 샤프는 하버드대학교 비즈니스스쿨과 케네디스쿨을 졸업한 수재다. 세계은행 인턴으로 아프리카 모잠비크에서 일하던 샤프는 현지 사장들의 ‘불평’을 통해 개도국 여성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됐다.
“같이 일하던 현지 사장이 ‘여자들은 결근을 너무 자주 한다’고 불평하더라고요. 일이 힘들거나, 집안 사정 때문일 거라고 지레짐작했는데 알고 보니 ‘생리’ 때문이었어요. 그것도 생리대를 구하기 어려워서인 거에요. 너무 비싸서요. 실제 이 문제 때문에 여성들의 생산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었어요. 큰 충격이었고 ‘왜 이 문제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을까?’ 생각했죠.”
샤프는 아프리카 출신의 대학 동기들에게 ‘이 문제를 알고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돌아오는 대답은 ‘당연하다’ 였다. 누구나 당연히 알고 있는 문제였지만 생리를 터부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그 누구도 해결책을 찾으려 하지 않은 것이다.
“그 순간 제가 할 일을 찾았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많은 사람이 어떻게 하면 한 국가가 저개발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그 해결책이 크고 대단한 것이라 생각해요.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사소해 보여도 무엇이 문제의 원인인지 발견하고,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문제는 적절한 생리대를 제공하는 것, 생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했어요.”
SHE에 따르면 실제 적절한 생리대를 구하지 못하는 여성들은 1년에 50일 동안 학교와 일터에 가지 못한다. 한 여학생에게 생리대를 지속적해서 제공할 경우 그렇지 못한 여학생과 비교하여 약 5년을 더 교육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SHE가 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르완다의 경우, 여학생들의 36%가 생리 때문에 그들의 학업을 끝까지 완수하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심각한데도 이에 대한 사회적인 논의가 전혀 없다는 것에 화가 났어요. 르완다의 한 여학생은 생리대를 구하기 어려운 같은 처지의 어머니에게조차 생리대를 사달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아버지들은 생리대가 왜 필요한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리대 살 돈을 달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한다더군요. 한국과 미국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죠. 이러한 현실에 화만 내고 있을 수 없어서 시장 조사에 들어갔어요. 시중에서 살 수 있는 가장 저렴한 생리대가 10개 묶음에 1달러가 조금 넘었어요. 그 돈이면 르완다에서는 식빵 한 봉지 살 수 있는 가격인데, 생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아서 ‘차라리 식빵을 사자’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생리대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생리 자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SHE는 생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기 위한 노력으로 보건・위생 교육과 옹호 활동을 하고 있다. 2010년에 시작한 “Break the silence on menstruation(생리에 대한 침묵을 깨자)” 캠페인을 통해 르완다 주요 학군에 SHE의 보건 교육 커리큘럼을 포함하겠다는 주요 의사결정자들의 약속을 받아냈다. 그리고 르완다 정부는 가난한 지역의 소녀들에게 생리대를 지원하는데 3만 5천 불의 예산을 배정했다.
2013년에는 자체적으로 생리대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완공했다. 앞으로 SHE의 생리대 생산 라인에서는 매일 1,200개의 바나나 섬유로 만든 친환경 생리대가 생산될 예정이며, 3,000명의 여학생이 학교에서 SHE에서 생산한 생리대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생리대가 필요한 여성들에게 생리대를 제공하겠다’는 작은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샤프의 도전은 전 세계의 여성들이 생리대 때문에 학교와 직장을 빠지지 않는 그 날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그녀는 작은 아이디어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고군분투하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간과되어 온 이슈들에 눈을 돌리세요. 그중에 진정 문제 해결의 단초가 되는 ‘보석’들이 있습니다. 정말 제대로 된 변화를 몰고 올 수 있는 것들 말이에요. 그리고 그 보석과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 전진하면 반드시 변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글/권미진 소셜에디터스쿨 청년세상을 담다 1기 취재하면서, 한 분야의 전문가에게 직접 현장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완성하는 과정을 통해 얼마나 많이 배울 수 있는지에 놀랐다. 그리고 그 배움을 많은 사람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짧게나마 기자로, 기사로 사람들과 소통할 이 기회가 없었다면 경험할 수 없었을 일이다.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국제개발 현장의 목소리를 담는 일을 계속 해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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