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365일이 방학이라면….
1년 365일이 방학이라면….
1년 365일이 방학이라면….
2017.07.25 17:58 by 류승연

이런 말이 있단다. 교사가 미쳐버릴 때쯤 방학을 하고, 엄마가 미쳐버릴 때쯤 개학을 한다는. 뜨겁고 끈적끈적한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나는 이제 집에 있는 걸 지루해하는 아이들과 샴쌍둥이라도 된 듯 엉겨 붙어 한 달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뭐?

“놓지 마! 정신줄!”

방학이 시작되었다며 투정을 부리고 있는데 앞서 장애 아이를 키운 선배맘이 조용히 한마디를 건넨다. “그래도 학교 다닐 때가 좋았다고 말할 때가 올 거예요.”

순간 소름이 쫙 돋는 이유는 이 말의 의미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어른들로부터 이 말을 듣고 자랐다. “학교 다닐 때가 제일 행복할 때야”. 그게 무슨 뜻인지 이제 어른이 된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장애 아이의 엄마에게서 이 말이 나온다면 그 의미는 또 달라진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부턴 1년 365일이 방학이 되는 장애 아이들의 현실을 꼬집는 말이기 때문이다.

유난히 이글대는 여름밤. 잠깐의 더위를 식혀줄 공포영화 한 편이 생각나는가? 그렇다면 굳이 극장에 가거나 유료결재를 하고 VOD를 감상할 필요가 없다. 눈을 감고 상상만 해보면 된다. 다 큰 장애인 자식이 갈 데가 없어 1년 365일 내 옆에 찰싹 붙어 있는 상상을. 내가 죽거나 자식이 죽기 전까진 끝나지 않는 기괴한 동거가 시작되는 것이다. 아이가 스무 살이 된 그 순간부터. 이보다 더한 공포는 없다. 더위도 싹 달아난다.

(사진:raphbottles/shutterstock.com)

문제는 이러한 공포가 우리나라에선 이미 현실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발달장애인의 취업 현실은 한숨을 넘어 암울할 지경에 이르러 있고, 그나마도 장애의 정도가 덜한 아이들에게 좁은 취업의 기회가 주어진다. 청년취업의 높은 벽에 가로막혀 백수로 지내는 일반인 자식들하고는 상황이 또 다른 게, 장애의 정도가 중한 발달장애인들은 갈 데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다는 점이다.

취업이 안 된 성인 발달장애인들이 낮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교육시설이나 쉼터 등이 있기는 하지만 많이 있지도 않은 데다 그나마도 수도권에 집중된 터라 지방으로 갈수록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신체는 건강한 20~30대 청년들이 하루 종일 집에서 방콕. 엄마 옆에서 찰싹. 당사자도 미치겠지만 그들을 돌보는 부모도 미칠 노릇이다.

얼마 전 SNS상에서 한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생활고를 못 이긴 가장이 어린 아들과 함께 한강 다리에 올라 투신하기 전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었다. 이미 몇 년 전에 일어난 사건. 초등학생인 아들이 다리 난간을 붙잡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게 화면을 넘어 그대로 느껴진다. 이날 부자는 끝내 투신을 했다고 한다. 아들을 먼저 뛰어 내리게 한 뒤 아빠도 뒤따라 뛰어내렸단다.

나는 화가 났다. 화면 속 아빠에게 화가 났다. 아직 어린 아이인 아들을 홀로 강물에 뛰어내리게 하다니. 어린 아들에게 ‘스스로 죽을 용기’를 내게 하다니. 최소한 투신을 할 거면 아들과 함께해야 했다. 어린 아들을 꼭 껴안고 아들의 마지막을 함께 해줬어야 했다.

이런 마음을 써 내려가자 곧바로 비난의 반응이 온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냐고. 이것은 부모에 의한 자녀 살해라며 신랄한 비난이 이어진다.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뿐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는다. 해당 동영상을 보고 ‘부모에 의한 자녀 살해’라고 신랄히 비난할 수 있는 사람들의 입장이 부럽다.

내가 신랄히 비난할 수 없는 이유는, 내 비난이 ‘마지막 순간을 아빠가 함께 해주지 않은 것’에 맞춰져 있는 이유는, 먼 미래를 생각하면 나도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2017년인 현재와 2047년인 미래의 대한민국 복지 현실이 똑같다면 나와 내 아들 역시 또 다른 동영상의 주인공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내 사후에 남겨질 자식을 걱정하는 장애인 부모들의 두려움은 ‘혼자서 고통받다 죽느니 차라리 내 손으로’라는 극단적인 결단을 내리게 만드는 것이다.

올해에만도 벌써 몇 건이더라. 장애인 부모의 자식 살해 뉴스. 그 모습을 보며 비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박수쳐줄 수도 없는 어정쩡한 영역에서 나는 살고 있다. 장애 아이를 둔 부모로서, 무표정하게 뉴스를 지켜보며.

(사진:Gintsuki/shutterstock.com)

얼마 전 발표한 현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장애인에 대한 언급은 단 한 줄도 없었다. 나라에서 시급히 해야 할 100가지 일을 정했는데, 장애인에 대한 복지는 100위 밖으로 밀려버린 것이다. 글쎄…. 아슬아슬하게 101위쯤에 있었을까? 아니면 187위쯤?

물론 마음은 안다. 이해한다. 장애인 복지 잘해주고 싶지 않은 정부가 어디 있겠는가! 국민도 마찬가지. “장애인 복지시설이 잘 갖춰진 우리나라가 싫어요”라고 할 사람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다들 마음으로는 잘해주고 싶겠지.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문제는 돈, 예산이겠지.

며칠 뒤 추경예산을 통해 ‘부양의무제’에 대한 장애인 가족의 짊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활로를 열었다는 소식을 접했지만 아직은 생색내기에 불과한 수준이다. 하지만 내가 이 자리에서 “장애인 복지에 투입되는 예산을 추가로 확보하라! 확보하라!”고 부르짖을 수 없는 이유는 국가 예산이라는 게 마구 쓴다고 좋기만 한 것이 아니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벌써 8~9년 전 일이지만 한때 국가 예산에 관한 취재를 하며 알게 된 사실들이 있다. 우리나라는 결코 경제적으로 안전한 나라가 아니었다. 나라빚은 상상을 초월했고, 국가 창고에 돈이 많이 모여 있다고 자랑해도 그건 어디선가 끌어온 돈이었다. 마치 파산 직전에 이른 개인처럼 여기저기서 돌려막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문가들은 “언제 제2의 IMF가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을 구조”라고 진단했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고는 해도 구조적인 문제가 완전히 바뀌었을 거라고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 국가 예산은 달라는 자들에게 선심 쓰듯 다 준다고 해서 결코 좋은 게 아니었던 것이다.

(사진:Aksabir/shutterstock.com)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가진 돈 안에서 효율적으로 예산을 배분해야 한다. 예산 정책을 집행하는 데 철학이 있어야 한다. 우선순위가 있어야 한다. 이미 가진 자들의 ‘더 안락한 복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당장 없으면 안 될 ‘시급한 복지’에 예산이 먼저 투입될 수 있도록 집행자가 머리를 굴려야 한다.

작은 사례지만 우리 지역구의 예를 한 번 들어볼까 한다. 얼마 전 나는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에 ‘등굣길 인사하는 엄마’ 역할을 하고자 아침 일찍 등교했다. 아이들 교통지도를 하는 녹색 어머니회와는 별도로, 교문에 엄마들이 일렬로 서서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안녕~ 어서 와~”라는 인사를 하는 일이다.

학부모회 회장에게 물어보니 구청에 지정된 예산이 있어서 딸의 학교도 지원했단다. 지원받은 돈으로 교문에는 플래카드를 내걸었고, 엄마들 몸에는 미스코리아 띠가 한 줄씩 매어졌다. 나도 교문에 서서 “안녕~ 어서 와~”라며 아이들에게 인사를 했다.

아이들은 좋아했고 그 나름의 보람도 있었지만 마음 한 편에선 씁쓸함이 몰려 왔다. 3년 전 아들이 다니는 특수학교로 유치원 입학을 문의하고자 방문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운동장에 있는 미끄럼틀을 보고 놀라 마음을 접었는데, 그 미끄럼틀은 30년 전 내가 놀이터에서 ‘탈출’ 놀이를 하던 그 당시의 미끄럼틀이었다.

상황판단이 안 되는 우리 아들이 꼭대기에 올라가면 안전장치가 없어 곧바로 추락하고 말 그런 모습의 미끄럼틀. 교무실에 전화해서 요즘 동네 놀이터마다 있는 낮고 안전한 미끄럼틀로 바꿔줄 수 없냐고 하니 예산 확보가 안 돼서 힘들다고 토로한다.

전학 때문에 3년 만에 다시 가게 된 특수학교. 다행히 미끄럼틀이 자취를 감췄다. 위험성을 인지했는지 차라리 없애 버린 것이다. 하지만 새 미끄럼틀은 끝내 들어서지 않았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함께 있는 특수학교인데 나이 어린아이들을 위한 미끄럼틀 하나 설치돼 있지 않은 것이다. 아마 아직까지도 예산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겠지.

딸의 학교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엄마들 인사 부대’를 위해 예산을 받았고, 아들의 학교는 예산이 없어 당연히 있어야 할 미끄럼틀 하나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지역구의 작은 예를 벗어나 나라 전체로 확대해보면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에 낭비되는 ‘눈먼 예산’이 있는가 하면, 정말 필요한 곳에는 투입되지 않는 ‘시급한 예산’도 있을 것이다.

장애인 복지라고 해서 뭔가 거창하게 몇조를 당장 편성해 달라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가진 예산 안에서라도 꼼꼼하게 살피면 뭐가 우선되어야 하는지, 새는 곳은 없는지, 정말 필요한 데는 어디인지가 보이게 될 것이다.

한 번에 바뀔 순 없다는 건 알고 있다. 작은 것부터 천천히 바뀌어야겠지. 하지만 변화는 반드시 시작되어야 한다. 지금 이 순간부터. 당장. 그래야만 30년 후에 나와 아들이 또 다른 동영상의 주인공이 되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작더라도, 지금부터 변화가 시작되어야만.

한 번 지켜보겠다. 이번 정부는 이전 정부들과 어떻게 다른지. 전 국민의 10%에 이를 것으로 짐작되는 장애인 가족 및 관련 종사자들과 함께.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The First 추천 콘텐츠 더보기
  •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이제 헤어 케어도 브랜딩이다!

  •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1년 사이 가장 주목할만한 초기 스타트업을 꼽는 '혁신의숲 어워즈'가 17일 대장정을 시작했다. 어워즈의 1차 후보 스타트업 30개 사를 전격 공개한 것. ‘혁신의숲 어워즈’...

  •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초개인화의 기치를 내건 스타트업들이 존재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관광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틈새에 대한 혁신적인 시도 돋보였다!

  •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기업의 공간, 자산 관리를 디지털 전환시킬 창업팀!

  •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의 등장!

  •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유망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 맞춤형으로 지원한다!

  • 초록은 동색…“함께 할 때 혁신은 더욱 빨라진다.”
    초록은 동색…“함께 할 때 혁신은 더욱 빨라진다.”

    서로 경쟁하지 않을 때 더욱 경쟁력이 높아지는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