댁의 젖소는 안녕하십니까_ 벨라루스의 이색 먹거리
댁의 젖소는 안녕하십니까_ 벨라루스의 이색 먹거리
2017.07.26 10:39 by 박경린

해외여행 하면 떠오르는 것 고민 중 하나는 ‘귀국할 때 무슨 선물 사오지?’이다. 세계 어디를 가도 그곳에선 반드시 사야 하는 특산품이 꼭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벨라루스는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앞선 회 차에서 언급했듯, 한국에는 벨라루스의 정보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여기에 뭐가 유명한지도 제대로 모르고 왔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한국에 돌아갈 때 기념품으로 뭘 사야 할지 걱정했던 이유다.

다행히도, 같은 기관 동료들이 내 고민을 해결해줬다. 현지의 특산품을 하나씩 소개해준 것. 그것도 모국에 대한 애정이 강한 사람들만이 알 것 같은 이색 특산품들을 말이다.

#유제품 자부심

현지 기관에서의 업무를 처음 시작할 무렵, 모든 게 낯설어 멀뚱히 있던 나에게 인턴 동료 한 명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문득 이런 질문을 받았다.

“한국에는 유제품이 많아?”

뜬금없이 유제품이라니. 그냥 손에 집히는 대로 사 먹는 것 아닌가? 유제품 종류가 많은지 적은지 따로 생각해본 적이 없어 대답을 못 하자, 그 친구가 기다렸다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유럽 여행도 많이 다녀보고 중국에서 교환학생도 해봤는데, 벨라루스만큼 유제품이 많은 나라는 본적이 없어. 나는 유제품을 정말 좋아하거든!”

그때부터 유제품에 대해서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됐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그 친구의 유제품 사랑이 느껴졌다. 얘기 도중 “제일 좋아하는 유제품”이라며 초콜릿 두 개를 건네기도 했다.

(사진: http://vkusnodoma.net/glazirovannyj-tvorozhnyj-syrok/)

그때 받은 초콜릿. 사진 속 초콜릿 코팅 속에 들어있는 건 응고된 치즈(Сырок)다. 러시아를 비롯하여 발트제국에서 유명한 간식이다. 티라미수, 바닐라, 딸기, 젤리 등 다양한 맛이 있다. 현지 사람들이 아침 출근길에 들고 다니며 먹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그 대화 이후 얼마가 지났을까, 이삿짐 정리가 마무리된 기념으로 인근 마트에 들렀다. “대형 마트에 가면 정말 많은 유제품을 만날 수 있다”던 친구의 추천도 있었던 터였다.

 

3-3

 

아니나 다를까, 무슨 유제품이 이렇게나 많은지… 복도의 양쪽 모두 유제품으로 꽉 차 있었고, 치즈 코너는 아예 따로 있었다.

장을 볼 때면 나는 늘 이 코너에서 오랜 시간 머무른다.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나 역시 유제품을 좋아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이 모든 유제품의 차이를 명확히 알고 싶어서다. 제품 이름을 번역기를 돌리며 일일이 확인하는데, 번역기에 검색해도 안 나오는 제품도 몇 개 있다.

첫 번째가 ‘케피르(Кефир)’다. 이 음료는 우유와 요거트의 중간이라고 보면 된다. 정확한 정의는 발효된 우유이고 일반 우유에 비해 걸쭉하다. 약간 시큼한 맛. 식당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대중적인 음료다.

두 번째는 ‘스메타나(сметана)’로 발효된 크림이다. 흔히 말하는 ‘사워크림(Sour Cream)’의 한 종류다. 하지만 소스라기보단, 요거트에 가깝기 때문에 식사 시간에 떠먹는 경우도 많다.

(사진: http://www.calorizator.ru/product/milk/cream-prostokvashino-3 , http://snim.net/2016-02-11/tvorog-i-smetana)

위의 사진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15%라는 수치가 눈에 띈다. 처음엔 그저 높은 수치가 좋을 거란 생각에 고함량 제품만 샀는데, 알고 보니 그 숫자는 함유된 유지방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 괜히 살찐 느낌이 드는 건 기분 탓이겠지.

벨라루스에는 이처럼 맛있는 유제품이 많다. 정확한 이유를 설명하긴 어렵지만, 소가 처한 환경과 영향이 있을 것 같다. 벨라루스는 소고기보다 돼지고기를 더 고급으로 친다. 모르긴 몰라도 소의 마음은 한결 편해지고, 젖도 더 잘 나오지 않을까?

#사탕으로 시작해 크랜베리로 끝난 출근 첫날

첫 출근 날, 사무실에 멀뚱멀뚱 앉아있던 내게 상사가 선물 하나를 줬다. 벨라루스에서 유명한 먹거리라며 건넨 예쁜 상자 안에는 웬 박하사탕 같은 알맹이들이 가득 차 있었다.

‘люква в сахаре’ 설탕에 덮인 크랜베리라는 뜻이다. (사진: Meetngreetme, 벨라루스 관광 사이트)
초코가루에 덮인 크랜베리는 덤.(사진: http://irecommend.ru/content/lyubimye-naturalnye-konfety)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는데 알맹이가 톡 터지더니 과즙이 나왔다. 크랜베리였다.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하얀 가루의 정체는 바로 설탕. 매우 생소한 간식이었다. 한국에선 크랜베리 자체를 자주 접해 보지 못했다. 크랜베리는 벨라루스의 토양과 기후에서 잘 재배되는 작물이기 때문에 음식에 많이 활용된다고 한다. 실제로 벨라루스 사람들은 크랜베리 주스와 크랜베리 잼과 심지어는 크랜베리 잼이 들어간 만두도 많이 먹는다. 덕분에 러시아어가 서툰 나조차 크랜베리라는 단어만큼은 확실하게 읽을 줄 알게 됐다.

팬케이크와 크레페 중간인 벨라루스 음식 블린(блины), 사이에 들어간 것은 크랜베리 잼이다.(사진: https://www.emaze.com/@AQFRQOCL/BELARUS)

벨라루스에서 크랜베리의 존재감을 실감할 수 있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기관에서 현재 진행 중인 환경 프로젝트 브리핑을 받던 중이었다. 그런데 이 중요한 프로젝트에 크랜베리가 다시 등장하는 것이 아닌가.

 

008_500

 

UNDP 벨라루스가 진행하고 있는 습지개발프로젝트. 이곳에서 크랜베리 수확이 이루어진다. (사진: UNDP Belarus 홈페이지)

벨라루스에는 바다가 없는 대신, 숲과 습지가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러시아에서 습지 개발을 제한해 그동안 그저 버려진 땅에 불과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습지들을 개간하면서 그곳에 크랜베리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우리 기관에서도 그런 프로젝트를 지원해주고 있었다. 성과도 꽤 좋다. 벨라루스는 임금이 그리 높지 않은 나라고, 특히 지방에 거주민들은 더더욱 힘든 여건 속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부업으로 크랜베리 재배를 할 수 있으면, 생계에 큰 보탬이 된다. 여성들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 여성 노동력 향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World Atlas’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벨라루스는 전 세계 크랜베리 생산국 3위이다. 비록 크린베리 경작이 4차 산업혁명과 같이 혁신적인 건 아니지만, 이 나라에선 소박하지만 풍요롭게 삶을 개척하게 해주는 중요한 자원인 셈이다.


The First 추천 콘텐츠 더보기
  •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이제 헤어 케어도 브랜딩이다!

  •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1년 사이 가장 주목할만한 초기 스타트업을 꼽는 '혁신의숲 어워즈'가 17일 대장정을 시작했다. 어워즈의 1차 후보 스타트업 30개 사를 전격 공개한 것. ‘혁신의숲 어워즈’...

  •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초개인화의 기치를 내건 스타트업들이 존재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관광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틈새에 대한 혁신적인 시도 돋보였다!

  •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기업의 공간, 자산 관리를 디지털 전환시킬 창업팀!

  •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의 등장!

  •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유망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 맞춤형으로 지원한다!

  • 초록은 동색…“함께 할 때 혁신은 더욱 빨라진다.”
    초록은 동색…“함께 할 때 혁신은 더욱 빨라진다.”

    서로 경쟁하지 않을 때 더욱 경쟁력이 높아지는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