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나서야만 하는 사회
‘엄마’가 나서야만 하는 사회
‘엄마’가 나서야만 하는 사회
2017.08.01 16:16 by 류승연

아이들을 데리고 워터파크에 갔다. 물을 좋아하는 아들은 아드레날린이 치솟는다. 학교와 치료실에선 무기력하게 축 처진 눈빛을 하고 있는데, 물속에서 첨벙대는 아들은 눈이 초롱초롱 빛나는 똘똘이다. “너 평소엔 장애인 흉내 내고 있는 거지?”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구명조끼에 의지해 몸에 힘을 빼고 물 위에 누워 유영을 한다. 둥둥둥~ 흘러가는 물살을 느끼며 자유로움을 만끽한다. 깡충깡충 뛰며 거대한 유수 풀을 쉬지 않고 돈다. 그 뒤를 부지런히 쫓아다니는 나는 살이 다 빠질 지경이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아들의 행보가 멈췄다. 물을 휘젓고 아들 옆으로 갔더니 출렁이는 물 아래로 작은 꼬추가 발라당 나와 있다. 쉬를 하고 있는 것이다.(ㅠㅠ).

“안 돼~”라고 소리를 질러보지만 이미 일은 저질러졌다. 매시간별로 있는 10분의 휴식시간마다 화장실을 데려갔는데도 쉬가 마려웠나 보다. 몰래 쌀 거면 그냥 쌀 것이지 정직하게 꼬추만 딸랑 또 꺼내놓는 건 뭐래.(ㅠㅠ)

그래. 아이들이니 그럴 수도 있다. 비록 몸뚱이는 초등학교 2학년이지만 정신연령으로만 따지면 아직 유아기의 어린아이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자기가 오줌 싼 그 물을 5분 간격으로 마셔댄다는 것이다.

평소 물을 좋아하는 아들은 ‘노는 물’만이 아닌 ‘마시는 물’도 좋아한다. 그래서 집에선 언제나 컵을 높은 곳에 숨겨둔다. 컵이 손에 닿는 곳에 있으면 무조건 정수기로 간다. 물을 가득 채워 꿀꺽꿀꺽 마신다.

그런데 워터파크는 사방이 물이다. 게다가 먹어보니 이미 많은 아이들의 오줌이 섞여 간도 짭조름하게 잘 되어 있다. 자기 입맛에 맞았나 보다. 틈날 때마다 고개를 숙여 물을 마셔댄다. “안 돼~”라고 외치며 얼른 입을 오므리고 뱉게 하지만 영리한 이놈은 이미 엄마 손이 다가오기 전에 꿀꺽 삼켜버린다.

아들이 물을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수영을 시키지 않았던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물속에서 쉬해버리는 것과 틈나는 대로 수영장 물을 마셔대는 게 걱정됐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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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을 못 시킨 이유는 또 있다. 물을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에 한 번 워터파크에 가면 아들은 6~7시간을 쉬지도 않고 놀곤 한다. 그런데 겨우 50분 정도 물놀이하고 이제 나가자고 하면 말 그대로 난리가 날 게 뻔했다. 말로 어르고 달래면 알아듣는 보통 아이들의 난리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 난리를 매일 겪을 생각을 하니 암담해져서 조금 더 커서 어느 정도 말귀를 알아들을 때 보내자며 차일피일 미루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아들의 물놀이하는 모습을 본 주변의 장애 아이 엄마들이 지금부터 수영을 시키라고 권한다. 아이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데도 좋고, 무엇보다 감각통합의 문제가 있는 아이들한텐 좋은 놀이 겸 치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 더는 미루지 말자. 이런저런 이유로 기피하다가는 나중에 더 힘들어질 수도 있다. 집 근처에 있는 장애 아이들이 수영을 배우는 체육센터에 가서 문의했다. 엄마와 함께 하는 수영강습이 있긴 한데 담당 강사와 상의를 해봐야 한단다. 아이가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 강습을 받는 게 아니라 혼자서 물놀이하며 놀다 올 가능성이 큰데 그럴 경우 강습에 방해가 될 수 있어서 등록이 가능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에휴. 장애 아이들이 수영을 배우는 곳이지만 이곳에서조차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다. 그러면 개인 강습을 시켜야 하나? 사실 딸이 다닐 수영장을 알아보면서 다른 곳에 아들의 개인강습도 문의한 적이 있기는 하다. 개인교습을 받게 될 경우 50분씩 주 2회 일정으로 매달 최소 50만 원. 그나마도 담당 강사와 더 상의해봐야 한다며 다시 연락하자고 했는데 금액을 듣고는 정중히 거절했다.

보통의 아이들은 수영이 배우고 싶으면 여러 개의 선택지 중에서 그냥 고르기만 하면 된다. 우리 딸도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꽤 있다. 센터 등을 이용하면 저렴한 가격에 매일 수영을 배울 수 있지만 이동이나 샤워 등을 엄마가 책임져야 한다. 반면 요즘 뜨고 있는 키즈 풀장에 보내면 이동도 알아서, 샤워도 알아서, 머리 말리기까지 알아서 다 해주고 집에 고이 모셔다 주기까지 한다. 대신 주 3회 다니는 가격만도 센터 강습비의 3배를 내야 한다.

다양한 선택지 속에서 고르기만 하면 되는 일반 아이들. 반면 고를 수 없는 선택지의 문턱조차 마음 놓고 넘을 수도 없는 장애 아이들. 이 아이들에겐 들어갈 수 있는 세상의 문이 너무나 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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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기준으로 전국에 등록된 장애인 수는 250만 명이 넘는다. 이 중 10% 정도를 발달장애인이 차지하고 있다. 점점 줄어가는 다른 유형의 장애와는 달리 발달장애인 인구수는 꾸준한 증가 추세에 있단다.

이유? 나도 모른다. 아마 며느리도 모르지 않을까? 전문가들도 추측만 할 뿐 정확한 분석은 시도된 적 없고, 아마 시도를 해도 원인은 밝혀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저 환경, 화학 등 어림잡아 짐작되는 무서운 것들만 떠오를 뿐이다.

이렇듯 발달장애인 인구수는 꾸준히 늘어 가는데 그에 따라 필요한 사회기반 시설의 공급은 따라와 주지 못하니 발달장애인 업계(?)는 언제나 사회적 기근 현상에 시달린다.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한 경쟁이 그 어느 분야보다 치열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장애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다. 사회에 기대할 게 없으니 스스로가 나서는 것이다. 내 아이를 위한 정책, 내 아이가 배울 특수교육, 내 아이가 일할 작업장이나 사회적 협동조합, 내 아이가 살아나갈 주거시설 등을 직접 나서서 시스템을 구축해 나간다.

발달장애인 업계(?)에 입문하고 나서 놀랐던 게 이 점이다. 이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장애 아이를 가진 부모들이란 점에 깜짝 놀란 것이다. 분명 각자의 일과 삶의 터전이 있었을 이들이 내 아이를 위해 자신의 인생 궤도를 바꿨기 때문.

이게 무슨 뜻이냐면 일반 아이들을 영어나 수학 학원에 보내고 싶은데 주변에 학원이 없으니 엄마나 아빠가 직접 영어나 수학을 배워 학원을 차린다는 뜻이다. 직접 수영을 배워 수영장을 차리고, 직접 회사를 세워 일자리를 만들고, 직접 건축을 배워 살 집을 짓는다는 얘기다. 단지 내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부모의 삶이, 가족의 삶이 바뀐다. 바뀌게 된다.

평범한 부모들은 아이 때문에 자신의 삶을 바꾸지 않아도 되는데 발달장애인을 키우는 부모들은 그렇지가 않다. 사회적 도움이 미비하기 때문이다. 사회에만 기대하고 있다간 나중에 큰일이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접 나서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사진:ChameleonsEye/shutterstock.com)

나는 묻고 싶다. 언제까지 부모들이 나서야 하는 것인지. 부모가 나서는 게 옳은 것인지. 그것이 사회적으로도 이익이 되는 현상인지…. 그리고 원인을 알 수 없는 무서운 것들로 인해 그 언젠가 당신들의 자식이나 손주가 발달장애인이 되면 그때는 당신들도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설 것인지…. 나는 그런 것들을 사회에 묻고 싶다. 모두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다.

아들의 수영강습에 빨간불이 켜지자 주변에서 도움이 손길이 온다. 센터 측에 ‘말귀 못 알아듣는’ 아들 같은 아이들을 위한 강습시간을 더 배치할 수 있는지 알아봐 주겠다는 연락이 온다. 연락을 해 준 고마운 이도, 고마운 이와 연결을 시켜준 중간자도 모두 장애 아이의 엄마들이다. 역시 아직까지는 엄마들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만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주변의 도움으로 인해 아들은 가을부터 수영을 배울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여전히 물을 마셔대겠지만 그건 그래도 괜찮다. 물속에서 꼬추 내놓고 쉬만 안 했으면 좋겠다.(ㅠㅠ). 그리고 아들이 수영하게 되면 나는 필살의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 부모 동반 입장이기 때문이다. 수영복 입은 내 모습을 보고 남편이 레슬링복 입은 줄 알았다며 화들짝 놀랐던 일이 떠오른다. 여러모로 가야 할 길이 멀다. 하지만 차근차근 가다보면 언젠간 좋은 날도 오겠지. 그러겠지? 그렇게 믿고 걸어가련다. 뚜벅뚜벅.

/사진:류승연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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