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반복되는 삶이 지겹지 않냐고?
매일 반복되는 삶이 지겹지 않냐고?
2017.08.08 15:41 by 지혜

레오 리오니 쓰고 그린, <프레드릭>

일요일 밤, 텔레비전을 켰다. ‘퇴사한 삶’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나왔다. 나와 남편은 꽤 흥미롭게 보기 시작했다. 남편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빠짐없이 6시 40분에 일어나 출근을 하고, 정해진 퇴근 시간을 훌쩍 넘겨 집에 돌아온다. 나는 남편이 없는 시간 동안 혼자서 집과 아이를 돌본다. 그렇게 한 달을 일하면 월급이 나오고, 그 월급을 쪼개서 살림을 굴린다. 비슷한 하루 서른 개가 모이고 삼백 개가 모이고 나이 한 살을 먹고 또다시 서른 개, 삼백 개. 그러다 보면 좀 지겹기도 하다. 다른 삶을 살아볼까, 기웃거리다가도 그쪽 역시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재빨리 제자리로 돌아오길 여러 번이다.

퇴사한 삶은 어떨까, 호기심으로 흥미롭게 보기 시작한 다큐가 점점 시들해진다. “보통 이런 삶을 살지만 가끔 저런 삶도 있어. 난 저런 삶 좋은데, 네 생각은 어때?” 하고 묻기를 기다렸는데 도통 묻지를 않는다. 결론은 이미 나버렸다. 그 다큐 안에서 ‘보통 이런 삶’은 쓸모없어 보인다. 회사에 얽매여서 가족과 친구는 물론 스스로를 돌볼 시간도 잃어버린 사람과 퇴사한 이후에 여유롭고 자유로운 일상을 누리며 자기 자신의 삶을 비로소 되찾은 사람을 비교하는 방식이다. 영 재미가 없어 채널을 돌렸다. 우연일까 유행일까. 비슷한 다큐가 또 나온다. 그 다큐에서도 역시 회사와 회사원은 쳇바퀴와 다람쥐로 그려졌다. 내일은 월요일인데, 왠지 기운이 빠진다. 어떤 결론이 나올지 너무 뻔해서 다시 채널을 돌렸다.

(사진:alphaspirit/shutterstock.com)

나와 남편은 이 정도면 우리도 괜찮은 삶이라 하는데, 텔레비전은 자꾸만 우긴다. “봐봐, 니들이 얼마나 수동적이고 무기력하게 꾸역꾸역 하루를 살아내는 사람인지.” 왜 자꾸 제멋대로 기준을 세우고 묶어버리고 전형적인 이미지를 씌우는 걸까. 인생은 편의점 냉장고 속 우유가 아닌데, 딸기맛 바나나맛 초코맛 우유처럼 색깔을 입히고 분류를 한다. 아, 어쩌면 우유가 나을 수도 있겠다. 적어도 서로 ‘다른’ 맛으로 나누니까. 인생은 옳은 것 한 가지가 생기면 나머지는 ‘틀린’ 것으로 분류한다.

 

 

평범한 쥐들의 이름이 궁금해,

<프레드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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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리오니는 ‘나 다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작가다. <프레드릭>이란 책도 그렇다. 프레드릭은 특별한 들쥐의 이름이다. 평범한 들쥐들은 밤낮없이 일을 열심히 한다. 그 곁에서 프레드릭은 동그마니 앉아 풀밭을 내려다본다. 뭐하냐고 물으면 일을 하는 중이라 답한다. 들쥐들이 바쁘게 왔다 갔다 옥수수와 나무 열매와 밀과 짚을 모아 겨울을 대비할 때 프레드릭은 눈을 반만 뜨고 가만히 햇살과 색깔과 이야기를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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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되었다. 지난 계절 동안 열심히 일을 한 덕에 들쥐들은 넉넉하게 겨울을 시작한다. 먹이를 실컷 먹으며 얘기를 나누며 지낸다. 행복했다. 그렇지만 저장해둔 먹이는 점점 떨어지고 그들의 거처에는 찬바람이 스며든다. 기운 없는 침묵이 감돌 때, 프레드릭이 등장한다. 프레드릭은 들쥐들에게 금빛 햇살과 초록빛 딸기 덤불과 계절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느새 따뜻한 기운이 내린다. 박수와 감탄이 쏟아진다. “프레드릭, 넌 시인이야!”

프레드릭은 매력적이다. 모두가 옳다고 믿는 목표에 매달리지 않고 나답게, 자신만의 삶에 집중한다. 그렇지만 나는 평범한 들쥐들이 더 사랑스럽다. 나 같아서 그런다. 이들에게도 박수와 감탄이 쏟아졌으면 좋겠다. 들쥐들이 열심히 일한 덕에 프레드릭은 배부른 겨울을 보낼 수 있었으니까. 들쥐들이 나답게, 자신만의 삶에 집중한 결과다.

가수였나 배우였나, 아무튼 자유로운 영혼을 이미지로 삼고 있는 어떤 사람이 그랬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표정으로 같은 지하철을 타고 같은 일을 반복하는 삶을 어떻게 사냐고. 하지만 그렇게 사는 삶도 있는 법이다. 그뿐인가. 종종 행복이 깃들기도 한다. 우리는 평범하나 같지 않다. 일상의 껍데기를 들춰보면 모두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프레드릭 말고, 평범한 들쥐들의 이름이 그리고 그 이름 아래에서 맞춘 생의 조각들이 궁금하다. 내 몫으로 주어진 단 하나의 생을 살아냈으니 우리는 모두 시인이다. 그러니까 자기 이야기는 자기가 ‘직접’ 하는 거로. 함부로 우리를 분류하고 정의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Information

<프레드릭> 글·그림 : 레오 리오니 | 역자 : 최순희 | 출판사 : 시공주니어 | 발행 : 1999.11.25 | 가격 : 11,000원

 

/사진: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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