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 덕후 ‘스네페루’
피라미드 덕후 ‘스네페루’
2017.08.10 13:47 by 곽민수

제가 쓴 이집트 관련 이야기를 오래 보신 분이라면, ‘몇 왕조, 몇 왕조’라며 시대를 구분하는 걸 잘 아실 겁니다. 이는 기원전 3세기,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의 인물인 마네토(Manetho)가 사용한 왕조 분류법인데요. 그 기준은 이렇습니다. 왕가의 변동(선왕의 아들이 아닌 인물이 왕위에 오르거나)이 있거나 수도가 옮겨지는 경우, 분단되어 있던 이집트가 재통합되는 경우 등의 기준으로 분류됩니다.

하지만 종종 원칙에서 어긋나는 모순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 분류법은 여러 가지 유용한 점이 많기 때문에 현대 이집트학자들에 의해서 거의 그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스네페루(Sneferu)는 고왕국 제 4왕조의 창시자로 기원전 2613년에서 2589년경 왕위에 있던 인물입니다. 마네토(Manetho)에 의해서 그리스식으로 소리스(Soris)라 불리기도 하죠.

스네페루 석상. (사진: Wikimedia Commons)

스네페루는 지난 회 <인권 마법사 제디의 이야기> 속에 등장했던 파라오 쿠프(Khufu)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후대의 문헌들이 쿠프를 포악하고 독단적인 파라오로 묘사하는 것과는 달리 스네페루는 대체로 ‘자비심이 넘치는 친절한 왕’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후대의 기록자들은 그의 이름을 근거로 인격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스네페루(s-nfr.w)라는 이름은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가 실제로 자비로운 왕이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붉은 상자에 표시된 부분이 카르투쉬 안에 쓰인 스네페루의 이름입니다.

그가 살던 시대가 고대 이집트의 역사에서도 비교적 초창기임을 감안하면, 그에 대한 기록은 비교적 많이 남아 있는 편입니다. 그렇지만, 기록들이 대부분 단편적인 것들이라 그에 관한 구체적인 서사를 복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여러 개의 피라미드들을 건설한 것입니다(이 내용은 뒤에서 다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이외에도 그는 이집트 밖으로 원정대를 보내 레바논에서 삼나무를, 시나이 반도에서 터키석을, 푼트(Punt, 오늘날의 예멘이나 소말리아 정도로 여겨지는)라는 지역에서는 다양한 향료를 입수하기도 했습니다.

스네페루가 시나이 반도에서 터키석을 입수하기 위해서 지역 내의 유목민들을 물리쳤다는 내용이 담긴 기록입니다. 역시 스네페루의 이름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스네페루는 전임자이자 제 3왕조 마지막 파라오인 후니(Huni)의 딸인 헤테프헤레스(Hetepheres)와 결혼을 했습니다. 스네페루와 헤테프헤레스 둘 사이에서 대피라미드의 주인공인 쿠프가 태어납니다. 헤테프헤레스 왕비의 무덤(아마도 다슈르에서 이전된)은 기자(Gíza)에 있는 아들의 피라미드 옆에서 도굴되지 않은 채 발견되었습니다. 거기에서는 왕실에서도 아마도 실제 사용되었을 법한 화려하게 장식된 침대와 의자 등의 침실용 가구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가구들은 현재는 카이로의 이집트 박물관에 아주 훌륭하게 복원되어 있습니다. 이 유물들은 고왕국 시대 왕실의 생활상을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현대의 학자들에게 무척 중요하게 평가받습니다.

복원된 헤테프헤레스의 가구.
헤테프헤레스 무덤의 발굴 당시 사진. (사진: The Giza Archives)

일설에 따르면, 스네페루는 선왕인 후니와 후실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파라오의 서자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배다른 누이와 혼인한 셈이 됩니다. 이 설은 분명하게 증명된 것은 아니지만, 고대 이집트의 왕실에서는 종종 일어났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개연성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그렇다고 파라오들이 대부분 근친혼을 했던 것은 아닙니다).

스네페루는 적어도 3기의 피라미드를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 피라미드들은 모두 스네프루의 작품임이 거의 확실하게 증명됩니다. 피라미드에 인근에서 발견된 동시대의 비문이나 이 피라미드들에 관하여 언급한 후대의 기록 등을 근거로 말이지요. 그런데 이 파리미드들은 모두 1기도 짓기 어려울 만큼 거대한 규모를 갖고 있습니다. 피라미드 3기의 높이가 각각 92m, 105m, 105m 정도라면, 그 규모를 대략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처럼 거대한 피라미드를 3기나 지었다는 사실은 스네페루가 가진 피라미드에 대한 열정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물론 단일 피라미드의 규모로서는 스네페루의 아들, 쿠프가 만든 높이 146m의 대피라미드가 압도적이지만, 이들 스네페루의 세 피라미드들의 용적을 모두 합하면 쿠프의 대피라미드를 넉넉히 넘어섭니다. 물리량만으로는 스네페루 시대의 토목, 건축 사업이 쿠프 시대의 그것을 능가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대에 따라 지어진 피라미드의 총 용적을 비교한 표입니다. 스네페루 시대의 용적이 쿠푸 시대의 용적을 초과하고 있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무너진 피라미드, 굴절 피라미드, 붉은 피라미드…

이들 세 피라미드들 모두 개성이 넘칩니다. 이 3기의 피라미드는 거의 동시대에 지어졌고, 서로 상당히 다른 공학적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현대의 학자들이 피라미드 건축의 진화과정을 추론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렇게 추론된 피라미드의 진화과정에 대해서 이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은 정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3기의 피라미드들 가운데 가장 먼저 세워지기 시작한 것은 메이둠(Meidum)에 위치한 ‘무너진 피라미드’입니다. 이 피라미드는 후니 왕에 의해서 지어지기 시작한 것을 스네프루가 이어받았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무너진 피라미드’는 이름 그대로, 건설 과정 중에 피라미드 외벽이 무너져버렸습니다.

메이둠의 무너진 피라미드.

이와 동시에 다슈르(Dashur)에서는 스네페루 본인을 위한 피라미드가 한 기 지어지고 있었습니다. 메이둠에서 피라미드가 무너진 것에 대해 파라오의 건축가들은 피라미드의 외벽 경사각이 너무 컸기 때문이라는 판단을 내립니다. 그들은 이 붕괴를 교훈 삼아 이미 절반쯤 지어져 있던 피라미드의 경사각을 줄이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이 다슈르의 피라미드는 하단부는 54도의 경사각을, 상단부는 43도의 경사각을 가진 묘한 모습을 갖게 됩니다. 바로 ‘굴절 피라미드’입니다.

다슈르의 굴절 피라미드.

스네프루는 이렇게 해서 얻은 교훈을 토대로 ‘굴절 피라미드’ 인근에서 처음부터 외벽의 경사각을 43도로 설정한 피라미드를 짓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완성된 것이 바로 온전한 형태로 완성된 최초의 피라미드인 ‘붉은 피라미드’입니다. 이 피라미드의 이름이 ‘붉은 피라미드’인 것은 저녁놀 아래에서 이 피라미드가 붉게 빛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정설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의문점을 제기해볼 수는 있습니다. 전문가들의 이야기는 대체로 분명한 근거에 기반을 두어 비교적 논리정연하게 짜여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이야기가 언제나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전문가들이 들려주는 아주 그럴싸한 이야기에도 언제나 ‘독립적인 비판 정신’이 침투할 틈새는 있습니다. 물론 이 '독립적인 비판 정신'이 '반지성주의'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굴절 피라미드의 내부 구조.

피라미드 진화과정에 관한 정설이 가진 가장 큰 빈틈은 ‘굴절 피라미드’가 단순히 외부의 경사각만 굴절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 피라미드는 외부의 경사각뿐만 아니라, 내부 구조 역시도 모두 2중으로 되어 있습니다. 피라미드 내부에는 현실(玄室)이 2개가 있는 것은 물론, 이 각각의 현실로 이어지는 피라미드의 입구 역시도 북쪽과 서쪽에 각각 1개씩, 총 2개가 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오시리스(Osiris) 신앙과 관계가 있는 ‘별 신앙’과 라(Ra) 신앙과 관계가 있는 ‘태양 신앙’이 융합되어 물리적으로 나타난 모습으로 설명하지만, 여전히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스네페루는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고고학자들은 문제 풀이가 막히는 지점에서 항상 이렇게 고대인을 직접 만나 물어보고 싶다는 헛된 희망을 품게 됩니다. 하지만 아무리 큰 어려움에 봉착해도 연구자들의 노력은 멈추지 않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연구자들의 알고자 하는 이 끊임없는 열망 때문에 언젠가는 조금 더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여러분께 들려드릴 수 있게 될 것이라고요. 스네페루를 직접 만나지 않고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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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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